지난 18일 마감된 EBS 신임 사장 공모에 이명희 공주대 교수가 지원해 화제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 대표집필자인 뉴라이트 사학자 이명희 교수는 공모 초기만 해도 지원 생각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으나 결국 이름을 올렸다.

교육공영방송 EBS의 사장 선임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방송장악의 ‘마지막 퍼즐’로 지목돼 왔다. 박근혜 정부는 올해 KBS와 MBC의 최고의결기구인 KBS이사회, 방송문화진흥회에 이인호 전 교수, 조우석 문화평론가, 차기환 변호사, 고영주 변호사 등 극우 성향이 돋보이는 인물을 대거 '내리 꽂았다'.

EBS이사회도 이 같은 정부의 ‘기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방통위는 국민적 반감이 높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한국사 수능 필수 과목 지정’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 정책에 발맞추듯, EBS이사회에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 안양옥 교총 회장, 조형곤 미디어펜 논설위원 등 보수적인 교육계 인사와 뉴라이트 인사를 고루 투입했다. 이 중 조형곤 이사는 EBS 간판 프로그램 <지식채널 e>와 <다큐프라임>이 편향됐다고 주장한 이력이 있어 더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쓴 이명희 교수가 기존 입장을 번복하면서까지 EBS 사장에 지원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류석춘 연세대 교수,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 김대희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등은 이번 사장 공모에 아예 지원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이명희 내정설’이 나오는 이유다.

당장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지부장 홍정배, 이하 EBS지부)는 “이념편향 사장이 오면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BS지부는 오는 24일부터 사흘 간 찬반투표를 진행해, 문제인사가 선임될 경우 30일 첫 출근부터 출근저지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19일에는 조합원 총회 및 결의대회를 열었고, 광화문에서 동시다발적 1인 시위를 진행했다.

홍정배 지부장은 19일 미디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명희 교수는 누가 보더라도 한쪽으로 이념이 편향된 극우 역사학자인데, EBS 사장으로 오면 프로그램도 한국사 교재도 중립성을 갖기 쉽지 않을 것이다. EBS 설립 이념과 가치가 훼손될 우려도 있다”면서 “지부 입장은 좌든 우든 이념적으로 편향된 인사가 오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전화 인터뷰 전문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 홍정배 지부장

▲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 홍정배 지부장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1. EBS 사장 유력 후보로 거론된 ‘뉴라이트 인사’ 중 이명희 교수만 지원해 일찌감치 ‘이명희 내정설’이 나오고 있다.

충분히 신빙성이 있는 일이다. 고삼석 상임위원도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제보가 있다는 얘기를했고, 이명희 교수 스스로도 생각 없다고 하다가 1주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을 보면 분명 청와대 쪽하고 얘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19일) 미방위 전체회의에서도 최민희 의원이 ‘청와대 김성우 홍보수석이 류석춘 교수에게 전화를 했으나 고사를 했다. 그래서 이명희 교수에게 넘어간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 같은 정황이 전부 사실이라면 청와대가 EBS 사장을 내정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드러난 것이기 때문에 신빙성 있다고 본다.

2. EBS지부가 말하는 ‘이념편향-정치편향 사장’은 무엇인가. 이념편향 사장이 특히 EBS에 적합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헌법 제31조에는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어 있다. (* 헌법 제31조 4항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방송법 제4조, 제5조에도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명희 교수는 누가 보더라도 한쪽으로 이념이 편향된 극우 역사학자인데 그런 분이 EBS 사장으로 온다고 하면 한국사 교재도, 제작하는 프로그램도 중립성을 갖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EBS의 설립 이념,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에서도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고 있는 마당에 여기에 줄 대는 사장이 온다면… 우가 됐든 좌가 됐든 이념적으로 편향된 인사가 오면 반대한다는 게 저희 입장이다.

3. 이미 EBS이사회에도 조형곤 미디어펜 논설위원 등 뉴라이트 인사가 있다. 사장까지 뉴라이트 인사를 내정하려는 정부 움직임에는 어떤 배경이 있다고 보는지.

일단 지금 KBS를 국정화해서 정권 연장하는 것이 새누리당의 목표인 것 같다. 2017년이 되면 한국사 교과서, 즉 역사 과목이 수능필수과목이 된다. 모든 학생들이 수능을 치르기 위해서는 한국사 공부해야 한다는 의미다. EBS 교재는 수능과 70% 이상 연계되어 있는데, 그때 나올 국정교과서에 맞춘 EBS 교재로 공부하게 되면 학생들의 흰 도화지 같은 생각도 이념편향적으로 물들 가능성이 있다. EBS에도 우편향 인사를 앉히는 것은, 학생들 생각을 바꾸고 잠재적으인 새누리당 지지층도 확보해 결국 장기집권까지 염두에 둔 하나의 큰 계획으로 보인다.

4. 이명희 교수가 EBS 사장이 되면 ‘노조 깨기’가 제1의 목표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도는데.

(이명희 사장 입장에서) 노조를 깨겠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실상 EBS에서는 제작중립성과 편성자율성이 잘 보장되어 있지 않다. 각 본부장의 임명권을 사장이 갖고 있는 상황에서, 사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돼 제작과 편성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가 나올 때 지적할 수 있는 곳이 노조밖에 없다. 문제제기를 하면 당연히 노조가 좌편향됐다고 하면서 와해시키려고 할 것이다.

5. 방통위가 EBS 사장과 이사를 임명하는 구조가 예전부터 지적되어 왔는데, 방통위에 대한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그저 방통위가 방통위 스스로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해 달라는 것이다. 물론 EBS 사장과 이사 임명 권한을 방통위가 전부 가진 것 자체가 문제이지만, 이는 중장기적으로 풀어 가야 할 숙제다. 이명희 교수는 EBS 사장에 지원한 게 이번이 벌써 3번째다. 그동안 2번은 EBS 사장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방통위가 결정해 탈락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번에 방통위에서 (사장으로 임명해) 이율배반적인 결정을 한다면 청와대 입김이 들어갔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방통위 최성준 위원장은 EBS가 가진 사회적 공적 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사장으로)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저희도 그렇게 믿고 있지만, 이미 청와대 내정설 얘기가 나오고 있는 만큼 그 약속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방통위 스스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청와대가 내려보낸다고 그대로 임명한다면 거수기일 뿐이다. 그게 방통위의 역할이 아니지 않느냐. 인사권을 제대로 행사했으면 좋겠다.

6. 이념편향 인사가 사장이 되면 출근저지, 부분파업, 파업까지 보고 있다고 했는데 앞으로 대응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파업도 불사하겠지만, 노동조합 힘만으로는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모든 범시민사회단체와 교육계, 학생들과 학부모까지 아울러 현재 EBS가 처한 절박한 상황을 호소하려고 한다. 이게 사회적인 문제라는 점을 더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전선을 확대하고 연대해서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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