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영 KBS 사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끝났다. <방송법> 개정으로 KBS 사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도입된 이래 첫 번째다. 다뤄야 할 수많은 쟁점이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청와대 개입설이다. 그동안 KBS 사장을 청와대가 낙점한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구조적으로 청와대 입맛에 맞는 인사가 KBS 사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청와대가 후보 결정 과정에 직접적인 개입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늘 증거가 부족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강동순 전 KBS 감사의 폭로 덕에 확실한 정황이 감지됐다. 인사청문회에서 반드시 규명했어야 하는 문제다. 그러나 국회 인사청문회는 이에 실패했다.

고대영 후보의 개인적 성향도 충분히 검증돼야 할 문제였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낙종’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방송 ‘부실보도’ 등 불공정 시비에 휩싸였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국정방송 KBS를 위한 맞춤형 사장’으로 고대영 후보가 가장 적절한 것으로 판단하지 않았겠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고대영 후보는 과거 'KBS 민주당 비공개 회의 도청의혹'을 무마시킨 당사자로 지목되기도 했고, 골프접대와 후배기자 폭행 등 사건으로 도덕성 문제까지 안고 있다. 어느 때보다 시끄러운 청문회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고대영 한국방송공사 사장 후보자가 16일 오전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고대영 후보의 자질을 검증해줄 증인과 참고인은 단 한 명도 채택되지 못했다. 여당은 숱한 의혹에 대한 ‘해명’의 자리를 만들어 주는 등 감싸기에 열중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쟁점에 깊이 파고들지 못하고 물방망이만 내리쳤다.

#1. 증인·참고인 한 명 없던 인사청문회

고대영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인사청문회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부실’하게 진행됐던 이유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증인과 참고인이 한 명도 채택되지 않을 때부터 '부실청문회'는 예고됐다. 야당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청와대 개입’ 사실이 폭로됨에 따라 관련자인 강동순 전 감사, 이인호 이사장,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 등의 참고인 채택이 요구됐으나 여당에 의해 묵살됐다

야당은 증인과 참고인 채택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KBS 이인호 이사장, △현대자동차 홍보담당 임원, △KBS 손병두 전 이사장, △KBS 김인규 전 사장, △영등포 경찰서장 등의 증인 채택 문제를 두고 새누리당과 협상을 벌였다. '청와대 개입설'에 더해 고대영 후보의 골프접대, KBS도청 의혹 등을 검증하려면 이들의 출석이 불가피하다는 거였다. 김인규 전 KBS 사장이 고대영 후보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에게 마치 KBS 사장이 다 된 것처럼 인사를 시켜줬다는 소문도 있었던 터라 이들의 청문회 출석은 불가피했다.

▲ 뉴스타파 보도 캡처

하지만 새누리당은 야당 요구를 거부했다. 과거 민주당 비공개회의 도청의혹에 대해서는 이미 검찰에서 증거불충분으로 결정된 사안이라며 피해갔고, 강동순 전 감사가 제기한 '청와대 개입설'에 대해서도 후보 선출 과정에서 탈락한 인사의 볼멘소리 정도로 취급하며 빠져나갔다. 간사를 맡은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증인 채택과 관련 야당과 협의 중이라는 입장을 계속 밝혔지만 새정치민주연합에 따르면 제대로 된 협상은 이뤄지지도 않았다.

문제는 야당에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에서 증인 채택을 강하게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증인 0명’의 인사청문회가 개최될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분명히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 개입 의혹’이 구체적으로 제기됐음에도 국회는 이와 관련해 어떤 것도 밝혀내지 못하는 무능한 모습을 보여줬다. 민주당 비공개 회의 도청 의혹이나 다른 도덕성에 문제가 되는 사안에 대해서도 증인이 없다보니 고대영 후보의 해명만 듣는 것으로 끝났다.

#2. 새누리당 의원들의 과도한 ‘고대영’ 감싸기

인사청문회에서 여당 국회의원들의 활약은 기대조차 하기 힘들다. 정부가 미는 인사가 도중 낙마하면 여당에는 유리할 게 없기 때문에 ‘검증’보다는 ‘감싸기’에 나서는 게 이미 관행이다. 고대영 KBS 사장 후보 인사청문회 역시 볼썽사나운 새누리당의 고대영 감싸기가 여러 차례 등장했다.

새누리당은 KBS의 민주당 비공개 회의 도청 의혹에 대한 해명 기회를 주는 과정에서 자기들이 질문해놓고 자기들이 그에 대한 답변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듯한 모습을 계속 보였다. 간사인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의 “당 회의는 대부분 비공개라고 하더라도 다 노출되는 것 아닌가, 도청할 필요가 있나?”라는 발언이 바로 그렇다.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지 못한 상황에서 ‘KBS는 도청을 할 이유가 없었다’는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는 질의였다. 박민식 의원은 KBS 수신료 인상을 막기 위해 야당이 도청의혹을 제기했다는 뉘앙스를 주는 주장도 제기했다.

고대영 후보는 박민식 의원 등의 발언을 바로 받아 도청 의혹은 검찰에서 무혐의로 처리됐고, 비공개회의라 하더라도 이후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에 도청을 할 이유가 없었다고 답변했다. 짜고 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사실관계가 왜곡됐다”며 반발했다. 도청 사실 자체는 확인이 됐지만 이를 누가 했는지에 대해 KBS 측이 증거를 소극적으로 제출해 수사 자체가 철저히 이뤄지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야당이 이런 주장을 내놓는 순간 새누리당 소속인 미방위 홍문종 위원장은 “대답하지 마세요”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검증을 받으러 출석한 인사청문 대상자에게 소관 상임위원장이 ‘대답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이 도청 의혹을 언급할 때마다 다른 의원의 질의에 문제제기 하지 말라는 등의 지엽적 문제를 들며 '물타기'로 일관했다. 당초 새정치민주연합에서 KBS 도청의혹과 관련해 영등포 경찰서장의 증인을 요청했지만 새누리당이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를 짐작케 한다.

▲ 지난해 7월, 시사주간지 <시사인>은 국회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도청 의혹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KBS의 해명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87.8%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특히, 7년차 이상 기자의 경우 52.4%가 KBS의 해명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표=시사인)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은 고대영 후보가 KBS기자협회와 KBS양대 노조로부터 각각 93.5%와 84.4%의 불신임을 받은 이력에 대한 해명 기회를 주는데 집중했다. 노조에서 마음먹고 불신임을 위해 진행한 투표에서 누군들 신임을 받겠느냐는 식의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불신임 투표와 사장으로서의 직무 수행능력은 별개라는 논리를 펴며 고대영 후보의 '리더십' 논란을 적극적으로 방어한 것으로 밖에는 해석할 수 없는 대목이다.

#3. 새정치민주연합의 ‘헛발질’…KBS 불공정 보도 중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무기력도 문제였다. 증인채택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나 설명도 없이 넘어간 것을 시작으로, 제기된 의혹을 어느 것 하나 해소하지 못해 고대영 후보자의 자질 검증에 실패했다 청와대 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연락이 있었나”라는 질문을 반복한 것 외의 전술이 사실상 없었다. 새로운 증거나 증인을 찾아내 검증에 노력을 기울인 야당 의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고대영 후보는 청와대와의 연락이 “없었다”라고 답했는데, 새롭게 조사된 것이 없으니 그 진의여부를 따져볼 수조차 없었다.

도덕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고대영 후보는 ‘후배기자 폭행’ 의혹과 관련해 “후배를 폭행했다고 표현할 정도의 일은 없었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이날 청문회 자리에는 ‘폭행을 당한 후배기자’가 취재차 회의장에 나와있는 상황이었다. 폭행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건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중계화면에 가해자의 주장만 나온 것은 문제다. 이 역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추가 조사 등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 2011년 4월 22일 KBS '불공정' 보도로 손꼽히는 재보궐 선거 리포트

고대영 후보자가 보도책임자이던 시절의 ‘보도 불공정’ 문제도 지적됐지만, 여야의 ‘기계적’ 중립만을 촉구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장병완 의원은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와 민주당 최문순 후보가 맞붙은 2011년 4월 강원도지사 재보궐선거에서 엄기영 후보 측이 운영한 불법선거사무소 관련 보도를 KBS가 축소보도했다고 지적했다. 고대영 후보가 사장이 될 경우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등에 대한 보도를 다 책임지게 될텐데 과거와 같은 태도가 달라지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게 질의의 요지였다.

그러나 야당이 지적해야 할 것은 선거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언론시민사회단체는 그간 ‘용산참사’, ‘이명박 전 대통령 내곡동 사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의 불공정 보도 사례를 꾸준히 거론해왔다. 이런 문제를 제쳐두고 선거에 대한 보도에 집중한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했다.

고대영 후보는 장병완 의원의 질의에 대해 왜 그렇게 보도됐는지 모르겠다, 보도본부장이 개별 아이템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향후 선거에서 BBC 수준의 공정성 중립성 객관성을 갖추겠다 는 등의 하나마나한 답변을 내놨다. 그렇게 답변하면 끝날 문제를 진지하게 제기한 야당의 의도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KBS사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이런 식이라면 안하느니만 못하다

<방송법> 개정 후 처음 이뤄진 KBS 사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이렇게 맥없이 끝났다. KBS 사장 청문회는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시기적으로 미묘한 시기에 진행됐다. 총선을 앞두고 한국사회 내 매체 영향력 1위를 자랑하는 KBS 사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서 누가 칼날을 빼들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KBS 사장은 다른 장관과 마찬가지로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 의견이 많더라도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임명할 수 있다. 강동순 전 감사에 의하면 고대영 KBS 사장 후보는 청와대가 직접 선택(?)한 이다. 그야말로 '따놓은 당상'이다.

야당 소속 의원이라도 이런 정도의 위상을 갖는 KBS 사장 후보를 '살살' 다루는 게 오히려 남는 장사다. “공정하게 선거보도하겠다”는 원하는 답도 들었다. 고대영 후보의 입장에서도 지금 이 시기가 국회의 검증 없이 쉽게 공영방송 사장 자리에 오를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 6월 14일 KBS '개콘' 민상토론 방송화면 캡처. 보수단체들로부터 '불공정' 보도로 민원이 제기되는 등 사회적 논란을 낳았다.

하지만 KBS의 진짜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시청자들에게도 과연 이 상황이 긍정적으로 작용할까? 입으로는 BBC 수준의 정치적 독립성을 이야기하지만 5·16이 쿠데타인지 혁명인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KBS 사장이 탄생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KBS <개그콘서트>의 정치풍자에 대해 ‘하등의 문제가 없다’면서도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장,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KBS 내 노동조합 및 직능단체들이 법과 원칙을 준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장, 편성규약 개정과 KBS공정성가이드라인 보완을 이야기하면서 “KBS 사장이 되면 최종책임자로 뉴스 최종 큐시트는 점검할 것”이라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해 불공정 편파보도 종결자라는 평가를 받는 사장의 탄생이 정치권의 무능 속에 이제 눈 앞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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