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와 CJ, 두 재벌 최상층 사이에서 비밀리에 이뤄진 거래였다. 지난 2일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이자 IPTV사업자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SK텔레콤이 케이블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을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CJ헬로비전을 인수하고 나서 SK브로드밴드와 합병하겠다는 게 SK 계획이다. SK의 목적은 분명하다. CJ 케이블 가입자를 IPTV로 전환하면서 SK텔레콤의 결합상품 영업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인가 절차를 통과하면, SK는 IPTV와 케이블을 동시에 서비스하는 사업자가 된다. 그리고 이동통신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1위 알뜰폰사업자까지 품게 된다. 이 때문에 지금 업계는 SK와 반(反)SK로 나뉘었다. 유료방송 1위 사업자이자 이동통신 2위 사업자인 KT는 SK를 견제할 목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규제까지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쟁사업자들은 갑자기 ‘공공성’을 외치고 있다. 경쟁사업자는 물론 언론운동진영, 시민단체에서는 ‘이번 거래로 SK의 여론독과점이 심해지고 케이블 지역성과 공공성은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원청과 하도급업체 단위에서 이루어질 ‘인력 감축’ 또한 우려된다.

그러나 정부, 국회, 시민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적이다. 점유율 규제 33%에도 걸리지 않고, KT가 2010년 국내 유일의 위성방송사업자인 스카이라이프를 계열편입해 복수의 유료방송플랫폼을 소유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부와 방통위가 ‘CJ헬로비전의 최대주주 변경 승인’ 및 ‘23개 SO에 대한 재허가’을 심사하면서 붙일 조건이 관건이다. 국회와 시민사회가 정부에 집중해야 할 것도 바로 ‘조건들’이다.

지역채널 투자 강화, SK가 못 받을 이유 없다

정부가 ‘지역사업자’ 케이블에만 허용한 지역채널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언론운동진영과 케이블 업계의 요구다. 이 문제는 정부가 ‘지역채널 강화’ 조건을 붙이면 된다. 사례 또한 있다. 미래부가 새정치민주연합 홍의락 의원실에 보고하고 미디어스가 확인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제공사업자(IPTV)‧위성방송사업자 각각에 대한 재허가 조건 및 최근 재허가 결정 당시 미래부가 붙인 조건’을 보면, 정부는 2013년 6월 이후 유료방송사업자 재허가 과정에서 지역채널 강화를 조건을 제시한 것은 세 차례 있다.

2013년 6월 미래부는 현대HCN 포항방송을 재허가하면서 ‘지역채널 자체제작에 대한 계획을 보완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미래부는 2014년 1월 개별SO인 하나방송을 재허가하면서 ‘지역채널 발전을 위해 투자계획을 충실히 이행하라’는 조건을 붙였다. 2015년 6월 씨앤앰 재허가 조건에는 ‘지역성 약화를 방지하기 위해 지역적 특색을 반영할 수 있는 지역채널 운영방안을 마련하고, 지역밀착형 방송 콘텐츠 제작 확대를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전국사업자인 SK가 지역사업자 CJ헬로비전을 인수하는 것을 두고 케이블의 ‘출범 목적’인 ‘지역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만큼 미래부와 방통위는 SK에 ‘보다 강화된 지역채널 투자계획’을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 SK 또한 IPTV보다 공적 책임이 많은 케이블을 인수하는 만큼 이 같은 요구를 거부할 명분은 없다.

▲ (사진=SK텔레콤)

벌써부터 ‘3년만 고용보장’ 이야기, 어떻게 막을까?

문제는 고용안정이다. CJ헬로비전 관계자는 최근 미디어스에 “(개별 직원들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사표를 쓸지 말지 뿐”이라며 “고용문제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했다. 하도급업체에서는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SK에서 3년 동안은 고용을 보장하겠다 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미래부는 2015년 6월 씨앤앰을 재허가하면서 ‘방송사업의 안정적 제공과 시청자 권익 보호를 위해 본 재허가 심사 시 제출한 협력업체와의 상생계획을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는 식으로 고용안정에 대한 간접적인 조건을 붙였다.

그러나 문제는 CJ에는 씨앤앰과 달리 이 같은 요구를 압박할 주체가 없다는 데 있다. CJ는 자신이 뿌리를 둔 삼성과 같이 ‘무노조 경영’ 중이다. CJ 원‧하청에는 현재 노동조합이 없다. SK브로드밴드에는 노동조합이 있지만 희망퇴직 같은 구조조정 분위기가 조성돼 노조가 ‘자기 조합원 지키기’에 나선다면 고용안정 요구는 규제기관이 스스로 판단할 내용이 된다.

물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SK의 경우, 지역센터를 외주화한 SK브로드밴드와 23개 SO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CJ헬로비전을 합병하면서 지역사업구조를 하나로 정리해야 한다. 미래부와 방통위는 SK브로드밴드 지역센터를 ‘더 나은 고용환경’을 갖춘 CJ헬로비전 SO에 합병하라는 조건을 붙일 수 있다. 이럴 경우, SK 간접고용 노동자의 직접고용 가능성이 생긴다. 이는 CJ헬로비전 간접고용 노동자의 직접고용 명분이기도 하다. SK그룹이 최태원 회장 사면 전후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SK가 ‘고용안정’과 ‘직접고용’을 거부할 명분은 없다.

방송통신융합 시대 걸맞은 ‘더 큰 책임’ 지워야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이자 IPTV 사업자를 계열사로 둔 SK가 케이블 업계 1위 CJ헬로비전을 인수한 것은 한편으로 케이블의 위기를 드러내고 추가적인 인수합병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번 거래는 방송산업이 플랫폼과 네트워크를 동시에 소유한 KT와 SK의 양강구도로 재편될 것이라는 사실을 가리키기도 한다. 두 재벌이 방송산업 전체를 지배하면 콘텐츠생산자들은 ‘하청기지’로 전락하게 된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이번 거래도 지상파의 협상력은 사라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전망을 거꾸로 보면 정부가 방송-통신 융합시대 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새로운 규제와 책임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라는 이야기다. 이동통신과 유료방송을 동시에 서비스하는 두 재벌의 지배력이 커질수록 방송은 통신의 부가상품이 된다.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생존 또한 두 거대 플랫폼사업자가 결정하게 된다. 김동원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은 17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플랫폼이 비대화되면 KBS와 EBS는 수신료 인상에만 집중할 것이고, 방송사는 생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방송을 만들게 된다. 지금 ‘방송의 위기’를 정권의 통제와 탄압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시청자들의 이용행태가 VOD 같은 비실시간 방송 시청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콘텐츠 단위는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시장의 주도권이 플랫폼사업자에 넘어가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경향’이라면 이는 플랫폼의 공적 책무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플랫폼 비대화는 정부와 국회가 플랫폼사업자, 특히 방송통신 결합상품을 판매하는 사업자들에게 방송산업을 위한 ‘공적 재원’을 더 많이 부담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명분이다. 그래야만 정부도 플랫폼 비대화와 콘텐츠 선순환이라는 정책목표를 동시에 이룰 수 있고, 방송생태계를 망가지지 않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방송통신 융합 시대에 맞게 SK와 KT 같은 플랫폼사업자에게 결합상품 매출액의 일부를 방송통신발전기금으로 납부하도록 하고 기금 징수율을 상향조정한 뒤, 이 재원을 EBS 같은 의무전송채널을 위해 사용한다면 방송의 공익성과 사업자의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이 지난 9월 대표발의한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도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법 개정 권한이 있는 국회의 의지는 물론, 유료방송사업자의 징수율을 결정하는 미래부의 의지가 필요한 부분이다.

▲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216호에서 열린 긴급 현안 토론회의 모습. 정의당 언론개혁기획단(단장 추혜선),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 언론개혁시민연대(대표 전규찬) 미디어오늘(대표 신학림), 참여연대가 공동주최했다. (사진=미디어스.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SK, 미래부-방통위 포획 이번에도 성공?

이날 토론회에서 KT스카이라이프 김선우 정책협력실장은 “이동통신 1위 사업자가 케이블 1위를 인수하는 것은 보통 사업자들의 인수합병보다 2~3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SK의 이동통신시장 지배력이 방송에 전이되지 않도록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IPTV법)에 ‘권역별 점유율 33% 제한’을 두는 법제도 개선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 박형일 상무는 “IPTV사업자가 아무런 규제 없이 지역성을 갖고 있는 케이블을 인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채수현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주주들은 주식수만큼 손해나 이익을 보지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노동조건이 악화되거나 해고될 노동자”라며 “정부는 인수합병을 심사하면서 고용이 안정되고 노동조건이 향상될 수 있는 조건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나눔연대국장은 “이번 인수합병은 SK와 CJ 자본만을 위한 전략적 제휴”라며 “방송의 공공성과 다양성, 케이블의 지역성,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전제돼야 한다. 이 같은 장치 없는 인수합병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이통 1위 SK는 그 동안 알뜰폰에 진출하는 등 시장에서 지배력을 강화해왔다”며 “이제는 알뜰폰 1위 CJ헬로비전까지 인수하려 한다. SK의 절대독주, 이익독점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영섭 언론학 박사는 “성장동력을 잃고 있는 케이블이 인수합병을 토해 출구를 모색하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라면서도 “(정부가 이를) 허가하더라도 지역적 다양성과 공공성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별도로 모색해야 한다. 이번 인수합병 심사는 추후 다른 케이블의 인수합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다양한 조건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SK의 (지역채널) 방송진입은 방송법과 IPTV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며 “방송법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 정부가 위법 여부와 시장에 미칠 파급력을 고려해 (최대주주 변경 인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혜선 언론개혁기획단 단장은 “(SK라는) 광고주의 영향력 때문인지 SK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는 거의 나오지 않다. 규제기관은 ‘아직 심사 전’이라며 침묵하고 있다”며 “이런 모습이 어떻게 이어질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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