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가 개봉하는 경우가 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즐거운 인생>이 그랬던 것처럼, 최근엔 <특종: 량첸살인기>와 곧 개봉예정인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한국영화 두 편이 기자라는 공통된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두 영화가 비슷한 소재를 갖는다고 해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즐거운 인생>처럼 엇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갖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제로 깔고 싶다.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의 초반부만 보면, 기자라는 특정한 직업군으로 일반 직장을 묘사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졸업만 하면 취업은 따 놓은 당상인 줄로만 알았는데 입사시험에 합격했단 안도감은 잠시 뿐, 수습 초봉이 한 달에 백만 원도 되지 않는다는 영화 속 설정은 비단 수습기자뿐만 아니라 일반 직장에서 비정규직이 겪는 비애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기자들의 세계와 일반 직장인의 세계가 오버랩하는 지점은 이게 다가 아니다. 휴일도 없이 하재관 부장(정재영 분)의 잔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야 하는 우리의 여주인공 도라희(박보영 분)의 모습 역시, 취업난을 뚫고 수습으로 회사에 입문해야 하는 우리 시대 청춘들의 슬픈 자화상과 다를 것이 없다.

▲ 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스틸 이미지
그렇다고 하재관 부장이 잔소리만 해대는 마냥 피곤한 사람이기만 할까. 겉보기에는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를 부하 직원에서 풀어대는 인간 말종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연예부라는 자기 식구들을 구조조정이라는 칼날로부터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간미도 있다.

부서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이 보통 직장에서도 만연하는 풍토임을 감안할 때,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는 기자들의 세계를 통해 비정규직의 애환과 더불어 일반 직장생활의 구조조정이라는 비애를 묘사하는 영화로도 읽어볼 수 있다.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가 도라희의 데스크 적응기에만 머물렀다면 영화는 도라희가 하 부장 휘하에서 적응하며 성장해가는 개인적인 ‘성장담’에만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터 공기가 달라진다는 건 도라희의 성장담에만 머무르지 않겠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영화가 도라희의 성장담 이외에도 담고자 하는 또 하나의 함의는 무엇일까.

▲ 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스틸 이미지
이 지점부터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가 <내부자들>과 공유점을 갖기 시작한다. <내부자들>은 언론과 정계, 재계가 밀착한 삼각관계의 심연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평등한 관계가 아니다. 언론과 정계는 동등할지언정 재계 위에 자리하지 않는다. 재계가 정계와 언론 위에 올라타 자기 입맛대로 재단을 한다.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속 도라희가 몸담고 있는 스포츠동명이 광고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노심초사하는 건, 공정한 저널리즘을 추구하기에 앞서 광고를 제공하는 광고주의 물질적인 지원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극 중 대형기획사를 먹여 살리는 대표 아이돌 우지한(윤균상 분)이 대형기획사 장 대표(진경 분)의 취지에 따라 없던 사실을 뒤집어쓰기도 하는 시추에이션은 ‘팩트’가 중요한 게 아니라, 대형기획사가 어떻게 ‘재단’하느냐에 따라 사실의 인과관계가 얼마든지 조작되고 뒤집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 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스틸 이미지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에서 매체가 광고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장 대표라는 엔터테인먼트계의 재력을 대표하는 세력이 팩트를 얼마든지 뒤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내부자들>에서 재력이 언론이나 정계보다 큰 목소리를 낸다는 점과 공유점을 같이 한다.

재력이 모든 것을 좌우하고 심지어는 아이돌조차 파렴치한으로 내모는 영화 속 처사는, <내부자들>과 더불어 ‘금권만능주의의 전능한 위대하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때문에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는 박보영의 통통 튀는 코미디라는 달콤함 뒤에 숨겨진 금권만능주의의 비정함이 씁쓸하게 담겨진 영화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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