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유심히 보지 않더라도, 이미 사람들은 알아챘다.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서 웃음과 공감을 유발하는 ‘채팅창’ 자막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난 7일 방송분부터 꿀잼(매우 재미있다), 꿀팁(아주 유용한 정보), 갓○○(○○이란 대상을 극찬할 때 신을 의미하는 god을 붙여 표현하는 말) 등 젊은 층이 활발하게 사용하는 신조어뿐 아니라 이미 고전이 된 웃는 표현(ㅋㅋㅋ)과 우는 모습 이모티콘(ㅠㅠ) 등도 자취를 감췄다. 이른바 '통신체'에 기반한 반말도 거의 사라졌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중징계 예고 후 달라진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채팅창 자막.지난 7일 방송에서는 ㅋㅋㅋㅋ, ㅎㅎㅎㅎ가 각각 크크크크, 흐흐흐흐로 바뀌었고 꿀잼예약각(재미있을 만한 상황이 예상된다)이라는 신조어는 '꿀 같은 재미가 예약된 각도네요'로 바뀌었다.

대신 ‘~요’체가 급증했다. 연속된 자음으로 표현됐던 웃음은 ‘크크크크크크’, ‘깔깔깔’, ‘흐흐흐흐흐흐’로 대체됐다. 꿀잼각은 ‘꿀 같은 재미가 예약된 각도네요’, 꿀정보는 ‘꿀 같이 유익한 정보’로 바뀌었다. 제작진이 채팅창에 등장하는 내용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눈에 띄었으나 역부족이었다. 각종 유머와 말장난을 섞어 실시간 소감을 남기는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반응은 그 의미가 크게 손상된 채 방송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 이하 방통심의위)의 ‘중징계 예고’ 탓이다.

방통심의위 산하 방송심의소위(위원장 김성묵)은 지난 4일, “통신용어들이 방송자막을 통해 그대로 방송되는 것은 문제”라는 민원에 따라 <마리텔> 8월 29일, 9월 12일, 9월 19일 방송분을 심의했다. 민원인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중 “방송은 바른말을 사용해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에 이바지해야 한다”, “방송은 바른 언어생활을 해치는 억양, 어조, 비속어, 은어, 저속한 조어 및 욕설 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 등을 <마리텔>이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대다수 심의위원들은 민원인 주장에 동조했다. 해명을 위해 출석한 박정규 MBC 기획특집부장이 젊은 세대들의 말장난이라는 특징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소용없었다. 대다수 심의위원들은 자막이 상스럽다거나 한글 파괴라는 이유 등을 들어 방송사 재허가 시 감점 요인이 되는 법정제재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일부 위원들이 자막에 욕설이 섞여있는 것도 아닌데 법정제재는 지나치다고 주장했으나 소수의견에 그쳤다.

시청자가 가장 중요한 <마리텔>, 위기에 처하다

<마리텔>은 방송 출연자와 방송을 지켜보는 시청자의 ‘가까운 거리’가 웃음을 만들어내는 주 요인으로 기능한다. 전문가들 역시 <마리텔>의 특징으로 인터넷 방송에 가까운 포맷으로 실시간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환경을 구현해 시청자의 적극적인 개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 점이 재미를 이끌어 낸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MBC 박진경 PD도 "시청자가 이렇게까지 (내용에) 개입하는 프로그램은 없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물론 부작용이 우려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의 특성상 채팅창에는 불특정다수가 접근할 수 있다. 때문에 제작진은 욕설이나 성적비하의 의미를 담은 단어를 철저히 필터링하고 이 중 재미있는 내용을 선택해 자막과 CG에 반영한다. 이게 가능한 것은 <마리텔>이 일요일 저녁 인터넷 생방송을 진행하고 이를 재가공해 매주 토요일 밤 내보내는 '투트랙'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마리텔>은 채팅창에 부적절한 용어가 등장하더라도 얼마든지 이를 통제할 수 있다. 즉, 자막과 CG는 이미 '한 번 걸러진' 결과물이다. 그러나 심의위원들은 이러한 점은 무시한 채 지상파이자 공영방송인 MBC에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만 무게를 둬 심의를 진행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프로그램 포맷의 변화를 심의가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더 문제인 것은 방통심의위가 다음달 '방송언어 중점심의'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기간 동안 방통심의위의 심의는 특히 언어와 관련해 더욱 엄격해진다. 인터넷 문화와 긴밀한 연결점을 갖고 있는 <마리텔>의 정체성을 고려하면, 지속적으로 '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 방통심의위 심의가 있기 전인 지난달 31일 <마리텔> 채팅창 자막

심의는 프로그램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을까

아직 징계가 확정된 것도 아닌데 심의 직후 채팅창 자막이 '얌전하게' 바뀐 것을 보면, 잦은 심의를 거칠 경우 프로그램이 어떻게 될지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방통심의위는 민원과 심의규정에 따라 절차에 맞춰 심의를 했을 뿐이라고 자평하겠지만, 프로그램 고유의 매력이 퇴색되는 결과가 나온다는 점에서 딜레마가 생긴다.

‘바른 방송언어’를 강조하는 방통심의위의 주장을 고려하더라도, 타인을 비방하고 모욕하는 발언도, 욕설도, 음란한 언어도 아닌 시청자들의 순수한 반응을 ‘심의규정’의 문구를 그대로 적용해 처벌하는 것이 옳은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ㅋㅋㅋㅋ과 같은 자음 웃음이나 젊은 세대가 자주 쓰는 신조어, 통신용어 일부는 타 프로그램에도 이따금 등장할 만큼 쓰임이 잦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 시대에 발맞춰 문화가 변했기 때문이다. 변화를 외면하고 과거의 규범만을 강제하는 것은 ‘언어의 사회성’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방통심의위원 9인이 변호사, 교수, PD, 기자 등 한국사회에서 비교적 높은 지위를 가진 평균나이 58.7세의 남성이다 보니, 다소 보수적인 방향으로 심의가 이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방통심의위는 '갑갑한' 징계는 형평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방통심의위는 타인을 모욕하고 사실과 관계없는 '카더라'가 난무하는 종편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해왔다. TV조선의 프로그램 진행자가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막말을 보도한 한국일보 기자를 두고 "쓰레기"라고 말해도, 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신부의 발언에 "북으로 가라"고 쏘아 붙여도, 출연자가 "엄창"이라는 괴이한 비속어를 남발할 때도 방통심의위는 '행정지도'라는 소극적 대응만을 반복해왔다. 이렇게 행동해 온 방통심의위가 <마리텔>의 자막에만 유독 '세게' 나오는 걸 누가 쉽게 납득할 수 있겠는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방통심의위는 상황을 더 보다 재미있고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시청자들의 표현들에 더 높은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직 방통심의위는 <마리텔>에 관한 최종 징계 수위를 내리지 않은 상태다. 오랫동안 ‘자의적 심의’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 온 방통심의위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오명을 더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결론에 도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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