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메인 뉴스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보도가 나왔다. 11일 <뉴스9>가 단독으로 <동성애 사이트서 ‘마약 만남’…늑장 경찰 때문에>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배치한 것이다. 마약문제와 경찰의 부실 수사를 지적한 리포트에 동성애라는 성적지향을 굳이 문제 삼을 이유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이 리포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의 한 숙박업소에서 남성 2명이 마약을 투약하고 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그렇지만 경찰은 신고 30분 뒤에야 현장에 도착했고 2명 중 한 명을 현장에서 놓쳤다는 내용이다. 해당 리포트에서 ‘동성애’라는 단어는 “경찰은 해당 남성들이 동성애 만남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뒤 함께 모텔에 들어가 마약을 투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대목에서 등장한다. 굳이 필요가 없는 내용을 집어넣은 것이다.

▲ KBS '뉴스9' 11월 11일 보도. 동성애 사이트를 통해서 만났다는 사실이 그대로 뉴스에 포함됐다.
KBS와 JTBC 뉴스의 같은 점과 다른 점

지난 10일 주요 방송뉴스들은 마트보관함을 통해 마약이 거래되는 현장이 경찰에 의해 발각됐다고 보도했다. KBS 또한 10일 “충청과 영남일대에서 활약하던 마약사범들이 대거 경찰에 붙잡혔다”면서 “필로폰을 대형마트 물품 보관함에 넣어두고 판매하는가 하면, 환각효과를 높이려고 필로폰을 새로 정제해 투약하는 등 수법이 더욱 대담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법이 대담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JTBC의 리포트는 조금 달랐다. JTBC는 “마약류의 거래와 유통이 그만큼 손쉬워졌다. 대형마트의 물품보관함까지 마약 거래에 악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통의 편의 문제에 중점을 둔 것이다. 같은 소식을 두고 초점을 달리한 두 방송사였다.

두 방송사는 11일엔 ‘동성애’라는 같은 소재가 등장하는 각각 다른 사안을 보도했다. KBS는 앞서 언급한 마약 관련 리포트다. 이에 반해 JTBC가 선택한 것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성소수자를 위한 잡지의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는 뉴스였다.

▲ JTBC '뉴스룸' 11월 11일 보도
JTBC는 해당 리포트에서 5개월 전 미국 대법원이 동성결혼 합헌 결정에 따라 백악관에 무지개색 조명이 설치된 것부터 조명했다. 또, 미국인들이 성소수자의 보편적 인권을 옹호하는 오바마 대통령에 동지, 영웅, 우상이라는 평가를 내보이며 환영을 표하고 있다고도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성소수자 모임을 주최하고 주요 인사에 성소수자를 앉혔다는 내용도 소개됐다. 이런 소식은 KBS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KBS, 자사가 제정·공표한 ‘공정성가이드라인’ 보기는 하나

KBS와 JTBC의 뉴스는 이렇게 계속해서 '격'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굳이 앞서의 JTBC 뉴스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마약의 거래와 유통은 쉬워졌고 여러 계층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을 많지 않다. 최근에도 한 택시기사가 마약을 투약한 후 운전을 하는 장면이 TV뉴스를 통해 크게 보도될 정도였다. JTBC가 마약의 거래와 유통의 편의성에 주목한 것은 뉴스가치를 충분히 고려한 선택이다.

그러나 KBS는 무슨 이유에선지 언급할 필요가 없는 '동성애'를 언급함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성소수자와 마약의 관계를 연상할 수 있도록 해 편견을 강화했다. 해당 보도 전날인 10일 보도에서 KBS는 마약 투약자들을 ‘서울의 한 모텔에서 마약을 투약하다 경찰에 붙잡힌 사람들’이라고 지칭했다. 마찬가지로 11일 리포트에서도 ‘서울 종로의 한 숙박업소에서 마약을 투약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면 될 일이었다. 굳이 ‘동성애’라는 딱지를 붙일 이유가 없었다.

▲ KBS '뉴스9' 11월 10일 보도. 반면, 이날 보도에서는 단순히 '마약 투약자들이 검거됐다'고만 표현됐다.
한국기자협회는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2011년 9월 <인권보도준칙>을 제정해 발표했다. 이 준칙에는 보도에서 성소수자를 언급할 경우와 관련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경우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KBS가 최근 발표한 <KBS 공정성 가이드라인> 일반준칙 중 '다양성' 항목은 “KBS는 사회적 신분이나 계층, 성별, 나이, 종교, 출신지역, 정치적 입장, 국적, 인종 등에 따른 다양한 의견과 이익을 차별 없이 반영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를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고 적시하고 있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부당한 편견을 조장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한다”고 규정한 대목도 있다. 이에 따르면 KBS의 11일 보도는 가이드라인 위반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보도와 관련해 비판받는 KBS가 유독 정부 비판에만 약한게 아니라 보도 원칙 전반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동성애자=마약파티, 언론자정은 어디로

성소수자와 마약을 연관시킨 보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3월 성소수자들이 마약파티를 벌였다는 식의 자극적인 보도들이 쏟아진 바 있다. 당시 종로 경찰서가 사건에 대해 “도심 한복판 아파트서 마약파티 한 동성연대 피의자 10명 검거”, “피의자들은 모두 동성연애자이며 이 중에는 트랜스젠더 2명도 함께 있었다”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다수의 언론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 쓰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 사례에서는 JTBC도 <서울 한복판서 동성애자 마약파티>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굳이 '동성애'가 언급될 여지가 없는 사건이었다. 언론이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며 자정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던 대목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나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등이 당시 언론의 태도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대표적 성소수자 연예인인 홍석천씨는 "통계적으로 보면 이성애자들의 마약범죄율이 더 높은데 꼭 동성애자들이 뭘 하면 크게 이슈화되니 편견이 더 쌓여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1년 지난 지금 상황을 보면 언론에 과연 자정기능이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KBS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다. 이런 문제에 훨씬 더 예민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둔감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비판을 예상한 탓인지 KBS는 이 리포트의 인터넷상 제목을 <눈앞에 마약사범 놓친 어리숙한 경찰>로 바꿨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여기서 끝날 일은 아니다. KBS가 스스로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는 충분히 하고 있는지, 자신들이 작성한 <공정성 가이드라인>을 지키고 있는지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KBS의 <공정성 가이드라인>에는 “만약 한편을 조금이라도 더욱 배려해야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약자의 편이 되어야 한다”는 대목도 있다. 사회적 소수자들은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보도만이라도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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