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부의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 의견이 53%로 찬성 의견(36%)보다 월등히 높았다. 교육계·역사학계뿐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 시민사회까지 교과서 국정화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정부는 반발 여론을 무시한 채 강행 중이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10일) 국무회의에서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라고 말하며 현재 흐름을 뒤바꿀 의지가 없음을 못 박았다.

‘국정화’의 손길은 언론에도 닿았다. 박근혜 정부는 공영방송 KBS, MBC, EBS의 이사회에 노골적으로 이념편향적 발언을 하는 극우인사들을 내려 보냈다. 곧 사장이 교체되는 KBS와 EBS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KBS에선 불신임률 90%를 넘어 이미 내부 평가가 끝난 고대영 전 KBS 보도본부장이 차기 사장 최종 후보로 뽑혀 16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EBS 사장으로는 역사왜곡 논란으로 채택률 1%도 미치지 못한 교학사 교과서 대표필진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와 이승만연구원 원장을 지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전국언론노동조합·민주언론시민연합·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소비자주권행동·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자유언론실천재단·새언론포럼·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대위·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언론위원회 등 11개 단체는 10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역사왜곡·언론통제 중단 촉구 공동 기자회견-역사의 진실과 국민 여론은 국정화할 수 없습니다!>를 열었다. ⓒ미디어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전국언론노동조합·민주언론시민연합·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소비자주권행동·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자유언론실천재단·새언론포럼·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대위·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언론위원회 등 11개 단체는 10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역사왜곡·언론통제 중단 촉구 공동 기자회견-역사의 진실과 국민 여론은 국정화할 수 없습니다!>를 열었다.

“버마는 민주화 승리 소식 들리는데, 한국은 시대 되돌려”

자유언론실천재단 김종철 이사장은 “버마에서는 역사적인 민주화 승리 소식이 들려왔다. 28년 동안 감금되고 탄압받던 아웅산 수치 여사의 민족민주동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며 “그런데 대한민국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나. 1961년 민주정부를 뒤엎고 권력을 탈취한 뒤 18년 동안 이 나라를 암흑 속으로 몰아넣었던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유신독재 시대로 역사를 되돌리고 있다. 지금 문제되는 교과서 국정화가 대표적”이라고 비판했다.

김종철 이사장은 “국가는 교과서를 국정화할 것이 아니라 조폐공사에서 찍어내는 돈만 국정화하면 된다. (다양한 교과서로) 학생들이 자유롭게 창으력과 판단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아베 극우정권조차 국정화하지 못하는데 박근혜 정권이 성공시킨다면 일본도 따라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김환균 위원장은 “지금 이 정부는 언론장악, 노동개악, 역사 국정화로 온 국민을 겁박하고 있다. 노동의 권리를 마비시키고 노동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언론을 장악한 후 교과서 국정화로 국민의 정신을 지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절대로 용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환균 위원장은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공영언론을 절대로 국가권력과 정치권력이 장악하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 KBS와 EBS를 국정화하려는 음모를 막아내야 한다”며 “시민 여러분들께서 함께 해 주실 때 거대한 음모와 말도 안 되는 공격을 막아내고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권오훈 본부장은 “2009년 보도국장 시절 KBS 기자 93%가 불신임했고, 2011년 보도본부장 시절 구성원 84%가 불신임했으며, 여당이사가 다수인 이사회에서조차 부사장 임명제청이 부결된 인물을 임명제청한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청와대 낙점이 아니고서는, 정권 연장 꿈꾸는 새누리당 낙점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희가 맨 앞에 서서 싸우겠지만 힘이 부족하다. 국민의 방송 KBS를 청와대 낙하산 사장으로부터 지켜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 홍정배 지부장은 “교육방송 EBS의 국정화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작년 8월 8일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은 EBS에 연락해 ‘좌편향된 내용이 많으니 한국사 교재를 즉각 수정하라’고 했고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모두 수정됐다. 또 교문위 한선교 의원은 국정감사 때 ‘공영방송은 KBS 하나면 되지 않나. EBS는 다시 교육부 산하로 들어가는 게 낫지 않느냐고 했다. 9월 14일에는 새로운 EBS 이사 9명을 임명했는데 교육부 추천 인사가 4명이나 된다. 마치 미션을 가지고 온 사람들처럼 입성했다”고 주장했다.

홍정배 지부장은 “KBS에는 고대영을 앉히고 EBS에는 역사학자를 앉혀 향후 5~10년 내에 선거권을 갖게 되는 학생들을 의식 개조해서 장기 집권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라며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버스를 무면허 운전수인 박근혜 씨가 운전하고 있다. 바로 가야 될 버스를 오른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려고 하고 있는데, 이 버스가 전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바로잡아 줘야 한다. EBS 구성원들도 대한민국이 바로 갈 수 있도록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국정화저지네트워크와 언론시민단체들은 ‘역사 국정화’와 ‘방송 국정화’를 저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공동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11일 오후 7시에는 국정화저지네트워크가 주최하고 언론시민단체가 주관하는 <방송도, 교과서도 국정화는 절대 안돼! 촛불문화제>가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빌딩 앞에서 진행된다.

▲ 이날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KBS 고대영 사장 후보 최종 임명 반대 피켓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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