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같은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노동자의 10%만이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고, ‘강성노조가 휘두른 쇠파이프 때문에 국민소득이 3만불이 안 됐다’는 말이 설득력 있는 곳에서 이수인 과장이나 구고신 소장 같은 사람을 찾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웹툰 <송곳>과 드라마 <송곳>에서 재현하는 한국사회는 그래서 현실과 닮았다. 관리자는 철면피, 냉혈한, 공모자가 되고 다수의 아랫사람들은 무기력자가 된다. 사회를 디자인하겠다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능력이 중심이 되는 경쟁사회’라고 포장하고, 시민들은 분노를 머금었다가도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이것이 지금 한국의 ‘이치’다. 그래서 스스로 껍데기를 뚫고 나오는 송곳 같은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언론의 ‘이치’ 때문이기도 하다. 언론은 ‘대중은 월급 150만원짜리 마트노동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이 없다’고 한다. 웹툰 송곳을 그린 최규석 작가는 “세상과 만화를 잇는 중간다리가 없다”고 했는데, 대개 ‘언론’이 중간다리 역할을 자임하기 마련이다. 고객의 갑질에 무릎을 꿇은 백화점 직원의 수난사, 식대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받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같은 ‘극한사연’은 언론지상에 가끔 오르내리지만 가장 평범한 사실들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

노동과 관련된 뉴스의 대다수는 ‘화이트칼라의 연봉’이나 ‘블루칼라의 애환’이 대다수다. 기껏해야 ‘극한투쟁’ 정도만이 간혹 포털사이트 대문에 오른다. 2003년 까르푸노조(웹툰과 드라마에서는 푸르미노동조합)의 70일 파업이 있기 전까지 이 평범한 이야기는 뉴스가 되지 못했다.

최근 들어 독특한 추세는 ‘노동’과 ‘노동조합’을 소재로 한 만화와 드라마 그리고 영화가 제작되고 있는 일이다. <미생> 같이 평범한 직장인의 애환을 그린 드라마, <어셈블리>처럼 해고노동자가 국회의원이 돼 국회를 흔드는 드라마, <카트>와 <또 하나의 약속> 같이 거대자본과 싸우는 영화가 제작되고 대중이 노동과 노조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기해보자. 김대중-노무현 이른바 ‘민주정부’에서도 노동조합은 적대시됐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노동과 노조는 ‘선진화’나 ‘정상화’의 대상이 됐다. 노조는 ‘권리’로조차도 인식되지 못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IMF 당시 노동법 개악과 구조조정을 ‘불가피하다’고 옹호하고,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대규모 명예퇴직 바람을 ‘어쩔 수 없다’고 하던 사람들마저 노동과 노조 이야기에 빠지고 있다.

JTBC가 <송곳>을 드라마로 만든 소식이 반가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혹자는 ‘보수신문 중앙일보가 최대주주인 종합편성채널에서 이런 드라마를 하는 것은 이미지 세탁용’이라고 비난하지만, 정작 JTBC가 드라마화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쨌거나 진입장벽이 높은 주제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삼성가와 사돈관계인 사람이 총수로 있는 언론에서 “노조 하자”는 메시지를 던지는 드라마를 방영하는 일은 내부의 ‘투쟁’ 없이는 불가능하다. <송곳>을 구실로 ‘보수정권의 기획으로 탄생한 종합편성채널’로서 JTBC에 대한 찬반과 호불호, 그리고 종편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별도로 짚어야 할 문제다.

<송곳> 드라마화를 통해 중앙일보와 JTBC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그들의 영리함을 짚어야 한다. 중앙일보는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조선‧동아와 다른 스탠스를 취하고, ‘야당’에 가까운 칼럼도 비중 있게 내보내고 있다. 경제와 부동산 분야에서는 ‘실용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한겨레와 사설 교류를 한지도 오래됐다.

JTBC가 <송곳>을 제작한 것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철저히 전략적이다. 애초 JTBC는 올해 드라마 예산을 수백억원 줄였고 2017년까지 금토 드라마만 유지하기로 했다. <송곳>은 예능국을 통해 추가로 제작하는 드라마다. 상품성이 없다면 하지 않았을 기획이다. 실제 JTBC는 목표시청률을 <밀회> 수준인 5%로 잡고 있다. 중앙일보와 JTBC는 가장 실용적이고, 가장 진지하고, 가장 재미있는 언론사가 되고 있다.

드라마 외적인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정작 우리가 <송곳>에서 주목할 점은 따로 있다. 드라마와 원작 만화는 2003년 까르푸노조의 조직화 과정과 파업을 다루고 있다. 2003년 까르푸노조 파업은 2008년 이랜드투쟁의 전초전 격이다. 이 싸움은 여성노동의 주변화, 비정규직의 문제가 전면화된 싸움이었다. 이수인이 ‘타고난 송곳’이라면 까르푸‧이랜드 노동자들은 ‘송곳이 된 사람들’이다.

사실을 반영했다고 하지만 일부 남성노동자들이 싸움을 주도하고, 여성노동자들이 그들을 ‘영웅시’하고 그들에 감화되는 모습은 현실을 반만 보여주는 것이다. 오히려 캐셔, 판매직원의 모습에 집중한다면 2003~2008년 사건에 좀더 ‘현실적으로’ 다가설 수 있다. 가장 평범한 노동자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지점은 JTBC가 ‘톤 다운’을 할 것인지다. JTBC 내부에서는 벌써 “살살 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주제의 특성 상 간접광고가 잘 팔리지 않는 것은 분명하고 광고매출에 대한 압박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극에서 노동조합의 비중을 축소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호평 일색이던 언론이 언제 마타도어 기사를 써낼지도 주목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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