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주로 향하는 용들의 움직임. 이성계가 지키고 있는 함주에서 모두 그의 백성이 되라는 정도전의 지시는 곧 그곳에서 혁명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밀의 방에서 '신조선'을 준비하는 그 누군가가 바로 정도전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안 방원의 반응 역시 흥미롭다.

9할 세금을 거두는 부패한 권력들, 분노는 곧 혁명으로 이어진다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세운 인물 이성계. 그런 이성계보다 더 중요한 인물은 바로 그 모든 것을 설계한 정도전이다. 그런 두 역사적 존재들이 마침내 함주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최고의 무장과 지략가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곧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기본은 갖췄다는 의미가 된다.

암어를 풀어낸 분이와 방원은 정도전이 함주로 향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을 알게 된다. 분이는 그 분이 정도전임을 이미 알고 있었고, 방원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동굴 속 비밀의 방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방원은 이미 그의 사상에 매료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암어를 풀고 나서 함주가 아닌 개경으로 돌아가 동굴에서 여러 문서들을 살피던 방원은 '진채계'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새로운 세상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정도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성계였다. 이성계를 잘 알지 못하는 정도전에게 그를 알아가는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도전은 함주에서 이성계가 과연 혁명에 주축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들을 해왔다.

이성계가 현재에 분노하고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의지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중요했다. 그렇지 않다면 혁명을 하기도 전에 이성계에 의해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장과 가까운 함주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분명했다.

고려 땅에서 그나마 입에 풀칠 정도는 해주는 곳이 바로 함주였다. 백성들이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곳이 함주라는 점에서 정도전의 선택은 당연했다. 이성계가 최소한 백성을 위한 군주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도전이 모든 이들을 함주로 모이도록 암어를 통해 전한 것은 이성계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함주에 들어서기 위해 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개간을 하고 배부르게 한 끼라도 먹고 싶었던 마을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어간 이야기. 그리고 빼앗긴 곡식을 태워 죽어간 그들을 위해 불태워버린 이야기까지 분이의 눈물은 이성계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9할의 세금을 거두는 고려 귀족들의 행패를 분이를 통해 듣게 된 이성계는 고려가 '이인겸 길태미 홍인방'에 의해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태어나 지금까지 변방에서 적들과 싸우기만 했는데 백성들은 더 배고프고 힘들기만 한 현실이 분노를 키웠다. 아무리 분노하고 분개해도 그 방법을 제대로 찾기 어려운 이성계에게 정도전은 그래서 중요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변방에서 외적과 싸워 고려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몇몇 귀족을 위함이 아니었다. 온 백성을 지키고 그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우선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런 상황에서 분이의 눈물은 당연하게 이성계의 마음 속 분노를 극대화시키는 이유가 되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정도전이 만나고 그들에게 길을 알려준 인물들은 바로 이런 강직함과 분노를 품고 있는 이들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전략은 광범위하면서도 지독할 정도로 계획적이다.

정도전의 이런 전략은 상당히 오랜 시간 견고하게 이어져왔다. 정도전의 제자인 허강이 이성계의 가별초에서 이신적이라는 이름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무사들과 백성들까지 그들은 그렇게 이성계의 백성이 되어 그의 의지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데 집중했다.

"나라이되 나라가 아닌 지역을 혁명의 진채로 삼는다"

의문의 글(안변책)이 이성계에게 전달이 되었고 그 범인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방원은 그 인물이 누구인지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 문서를 통해 동굴 속에서 자신이 발견했던 수많은 문서 내용이 곧 이곳 함주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힘을 가진 이성계를 중심으로 거점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오랜 시간 준비해온 전략을 통해 부패한 고려를 멸하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겠다는 정도전의 지략을 알아차린 방원은 흥분할 수밖에 없다. 안변책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은 그렇게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안변책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는 다르다. 정도전이 쓴 게, 아닌 이성계가 함주 군막을 찾기 전에 이미 고려 조정에 상소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픽션으로 다가온다. '안변책'은 그렇게 새롭게 구성되어 이야기의 힘을 키우는 이유가 되었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이성계와 정도전이 만나야만 하는 이유는 분명해졌다. 이성계 역시 정도전처럼 개혁을 꿈꾸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만나 혁명을 도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방원은 계략을 통해 신적에게 만남을 주선했다. 그분이 누구인지 너무나 궁금했던 방원의 노력은 오히려 위기를 만든다. 하지만 이런 위기가 곧 정도전이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성계를 만나는 이유가 되었다.

방원과 신적을 납치하던 비국사 무리들을 제압한 무휼. 그리고 세적으로 몰린 분이. 극적인 순간 정도전은 이성계 앞에 등장했고, 그렇게 두 용은 마침내 만나게 되었다. 땅새만 함주에 오지 않은 채 다섯용이 한 곳에 모인 함주 군막 이야기는 그 한 편만으로도 매력적인 내용으로 이어졌다.

고려 최고의 지재 상인인 초영은 비국사 적룡과 달리 부패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욕망이 컸다. 그리고 초영은 연희를 화사단의 흑첩으로 만들어냈다. 갈 곳 없어 하는 연희를 이끌어 흑첩으로 만든 초영. 연희는 그렇게 이인겸 앞에 등장해 이성계가 아니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주지시킨다. 모든 것은 정도전의 계획대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모든 기운은 그렇게 부패한 권력에 맞서기 시작했다.

역사를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느냐는 작가의 힘이다. 그런 점에서 <육룡이 나르샤>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힘은 강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정은 몰입도를 높여준다. 인과관계가 명확한 과정은 힘 있게 다가오고, 그렇게 드라마의 완성도는 결정된다.

고려 말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이성계와 뛰어난 지략을 가진 정도전의 만남은 흥겹다. 언젠가는 만날 수밖에 없는 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만나야만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육룡이 나르샤>는 이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셈이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게 하는 사극의 힘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상황을 일깨운다. 그 혁명의 기운이 과연 어떤 세상을 만들어낼지(알면서도) 기대된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