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을 ‘인큐베이터 속 갓난아기’에 비유하면서 상상도 못할 특혜를 베푼 것처럼, 이것도 선의일지 모른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국면에서 언론은 잇따른 오보와 정부 옹호 기사로 ‘기레기’라는 오명을 얻은 언론의 명예회복을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일지 모른다. 일부 종편의 막말·편파·왜곡·혐오 발언을 줄이고, 시민들이 좀 더 공정하고 객관적인 뉴스를 보고 듣게끔 하려는 정부의 사명감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가 23일 행정예고한 ‘방송평가 규칙 개정안’ 이야기다.

방통위 사무처가 설계한 방송평가 규칙 개정안의 내용은 이렇다. 방통위는 방송평가 항목 중 운영에 대한 배점을 축소하고 내용·편성 항목 비중을 늘렸다. 그리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가 심의한 결과를 감점에 반영하던 것을 1.5배로 강화했다. 특히 공정성과 객관성, 재난, 선거방송 심의규정을 위반할 경우의 감점을 2배로 높였다. 방통위가 2012~2014년 심의위의 제재건수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지상파의 방송평가 점수는 최저 1.8점, 최대 7.2점이 낮아진다. 종편의 경우 하락 폭은 최저 7.7점, 최대 14.3점이다.

방통위는 방송사 재승인·재허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심사를 ‘턱걸이’로 통과하는 방송에게 있어 개정 추진이 현실적 압박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까닭에 9월 하순에 있던 사업자 의견수렴 자리에서 대다수 방송사업자는 개정안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심의위 단골손님인 종합편성채널은 더욱 민감하다. 조선일보는 ‘언론 자유 침해하는 규제강화’라고 비판했고, ‘지상파에만 적용해야 하는 잣대’라고 주문했다. 또한 ‘정권이 바뀌면 규제강화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1면에, 조선일보는 사설로까지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보수신문의 반대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국가가 언론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심의하고, 지금보다 더 벌점을 높이겠다는 것은 비판언론에게 자기검열 기제로 작동한다. 박근혜 정부의 ‘여론장악’ 맥락에서 보면 ‘언론통제’로 수렴한다. 박근혜 정부의 언론 정책은 과거 정부와 강도에서부터 남다르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극우인사들을 공영방송 이사로 포진시켜 ‘이념전쟁’을 본격화한 것을 보라. 정부부처 내에서도 ‘청와대가 너무 강하게 밀어 붙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언론통제는 방송에서 포털까지 전방위로 이루어지고 있다. 고삼석 상임위원이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심의위는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심의의 범위를 넓히고 강도를 높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인터넷신문 등록요건을 강화하는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중재 대상에 ‘댓글’을 포함하려고 한다. 팟캐스트에 대한 규제도 기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털은 정부와 기업에게 최상위 댓글 작성 권한을 줬고, 검색제휴 언론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정부여당의 포털 압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다시 방통위로 넘어가보자. 3기 방통위는 출범 초기부터 방송사업자에 대한 공정성 평가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아왔다. 그러나 표적심의와 제재가 가능한 구조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을 통한 규제 강화에는 여야 상임위원 간 이견이 있었고, 그 결과 공정성 평가지수를 개발할 목적으로 한국방송학회에 3000만원을 주고 연구용역을 맡겼다. 이런 와중에 방통위 사무처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규칙 개정안을 만들었고, 최성준 위원장은 방통위 소속 법정위원회인 방송평가위원회(위원장 김재홍 방통위 부위원장) 내 다수의 위원이 반대 의견을 밝혔는데도 보고를 강행했다. 최성준 위원장을 포함한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들이 여당 추천 상임위원들의 ‘퇴장’에도 행정예고를 강행했다. 혐의는 충분하다.

그러나 방송평가 개정을 추진한 최성준 위원장은 ‘선의’를 강조한다. 그는 ‘정부의 언론통제 흐름에 방통위도 궤를 같이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불쾌하다”고 말했다. 불쾌해할 만하다. 방통위의 규제강화는 ‘일부 종합편성채널을 탈락시키려고 했던’ 정치권의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 요컨대 방통위는 비판자들에게 ‘종편에 대한 공정성 평가를 강화하라고 하더니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느냐’고 반문한다. 선거를 앞두고 불공정방송에 대한 비판여론은 거세질 것이고, 방통위 입장에서 규제강화를 추진할 명분은 충분하다.

방통위 바람대로 공정성 심의-감점 강화가 이루어진다면 현실적으로 가장 불리한 것은 TV조선과 채널A 같은 일부 종편이다. 이들은 막말·혐오 발언을 자주 내보내고 있고, 종편으로서 균형편성에 미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상파도 예외는 아니다. 대다수 방송이 권력의 주구를 자처하고 있는 상황에서 혹여나 정권이 바뀐다면 탈락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역으로 방통위의 공정성 심의-감점 강화는 정권 연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선거를 앞두고 방송을 재차 흔들고 있다. 청와대는 여론장악-이념전쟁 신호등을 켰고, 방통위는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달리는 차 앞에 있는 것은 일부 종편이 아니라 방송 전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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