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깎고, 곡기를 끊고, 천막을 치고,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오른다.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가입했다는 이유로 일하는 데 불이익을 받거나 인격적 모독을 당한다.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때때로 벌어진다. 그런데도 ‘불법파업을 벌이는 강성 노조의 쇠파이프 때문에 GDP 3만 달러를 못 넘어갔다’는 ‘틀린’ 주장이 집권여당 대표 입에서 나온다. 정부는 해고를 보다 손쉽게 하는 것을 ‘공정해고’라 이름 붙이고,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면 청년들의 일자리가 더 확보된다며 ‘노동개혁’이 시급하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2013년 기준, 노조 조직률 10.3%에 그친 한국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 엄중한(!) 시국에, 대중매체에서 국가 발전의 걸림돌이나 비리의 온상 정도로나 표현되는 ‘노조’를 중심 소재로 하는 드라마가 방송된다. 24일 시청자들에게 첫 선을 보이는 JTBC 특별기획 <송곳>(극본 이남규·김수진, 연출 김석윤)이다.

▲ 24일 오후 9시 40분 첫 방송되는 JTBC 특별기획 <송곳>

<송곳>은 판매 사원들을 대량 해고하려는 프랑스계 기업 푸르미 마트에 맞서 노조에 가입해 회사의 부당노동행위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2013년부터 네이버에 연재돼 9.96점의 높은 평점을 얻고, 리뷰만 150만 건이 넘은 동명의 웹툰 <송곳>(최규석 작)이 원작이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은 <미생>과 해고노동자 출신 국회의원의 성장기를 담은 <어셈블리>가 각각 tvN과 KBS에서 방송되긴 했지만, <송곳>은 ‘노조’를 빼면 설명하기 힘든 드라마이니만큼 방송 전부터 세간의 관심이 높았다.

21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에서 열린 <송곳> 제작발표회에서 김석윤 PD는 촬영 중 어려운 점을 묻는 질문에 “안팎으로 작품에 대한 필요 이상의 우려를 보여 곡해가 좀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내 “오히려 누구나 보아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기본적인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이상 현실적일 수 없다는 논지로 설득을 했다”고 말했다.

김석윤 PD는 “원작의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꼭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며 “워낙 훌륭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해서 좋은 작품을 선보여야 되겠다는 생각, 부담과 벅참이 공존한다”고 전했다.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운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군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육사를 나와 유통업체 푸르미에 들어갔으나, 회사의 정리해고 지침을 거부해 ‘회사원조차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강직한 성품의 이수인. 학생운동 등으로 모진 고문을 받아 하루 5번 복막 투석을 해야 하지만,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에 눈 뜰 수 있게 돕는 부진노동상담소 소장 구고신. 노조에는 관심도 없었으나 회사 폭력에 차분히 대응하는 수인을 보고 노조 활동을 시작한 싹싹한 신선식품부 주임 주강민.

형 동생 사이로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허 과장의 모함 때문에 징계위원회에 회부됐으나 동료들의 도움으로 해고 위기를 넘기는 수산 파트 주임 황준철. 강민과 준철을 믿고 따라 노조 활동에 힘을 보태는 남동협. 현장 출신 정육사원에서 마트 부장까지 올라간 입지전적 인물이지만 푸르미 인사상무의 수족으로 철저히 이용당하는, 푸르미 노조와는 대립각을 세우는 정민철 등 <송곳>에는 뚜렷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가 다수 등장한다.

이수인 역을 맡은 지현우는 캐릭터 표현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마트 매장 안 푸드코트에서 밥도 많이 먹고 실제로 광화문에서 노조하시는 분들 현장을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원작자인 최규석 작가에게는 궁금한 것을 많이 물어봤다고 한다. 그는 “이때 수인의 모습은 어떤 감정으로 쓰셨나 이런 것들과, 아직 웹툰에 실리지 않은 내용들에 대해서 물었다”고 설명했다.

구고신 역을 맡은 안내상은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이 어느 정도인 것 같은지 묻는 질문에 “저하고는 전혀 닮을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면서도 “싱크로율은 이미지나 아우라가 풍겨져 나오는 그 무엇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외형상으로는 헤어스타일을 바꿔봤다. 중학교 이후로 가장 짧게 머리를 잘라봤다”며 웃었다.

<송곳>은 수많은 명대사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특히 구고신 소장은 소위 ‘명대사 제조기’다. 회사도 프랑스 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지 모르겠다는 수인의 질문에 “여기서는 법을 어겨도 처벌 안 받고 욕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이득을 보는데 어느 성인군자가 굳이 안 지켜도 될 법을 지켜가면서 손해를 보겠소?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하거나 노조원들을 보고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것”이라고 한 말이 대표적이다.

안내상은 가장 기억에 남는 명대사를 꼽아 달라는 말에 “(웹툰에서)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것이라고 얘기를 하더라. 저는 그 대사를 읽으며 깜짝 놀랐다. 제가 청년 시절 때 풀지 못했던 과제가 그 대사 하나로… ‘아, 이거였는데 왜 그걸 몰랐지 그 시절엔?’ 그런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고 말했다.

▲ 드라마 <송곳>의 한 장면

“근로자가 알아야 될 조건들 습득하시면서 재밌게 봐 주셨으면”

웹툰 <송곳>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올해 8월부터 4부가 시작돼 아직도 연재 중이다. 김석윤 PD는 “3부까지 보고 대본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최규석 작가가 갖고 있는 시놉시스, 줄거리를 순차적으로 엔딩까지 받았다. 원작과 결말이 완전히 달라질 수는 없지만, 드라마에는 있으되 웹툰에는 없는 게 있고 웹툰에 있는 몇 가지가 드라마엔 없다”고 설명했다.

정민철 역할을 맡은 김희원은 “<송곳>이 어려운 소재를 다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어떻게 보면 살짝 코미디가 끼어 있다. 블랙코미디지만. 일단 재밌게 많이 봐 달라”고, 지현우는 “당연히 알아야 될 권리들을 모르고 넘어가는 부분들이 되게 많은 것 같다”며 “드라마 보면서 근로자가 알아야 될 조건들 습득하시면서 재미있게 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동협 역을 맡은 박시환은 “동협이 나이 때 실제로 저도 마트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제가 찾았으면 했던 당연한 권리, 당연히 화낼 수도 있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더라. 지금 마트를 다니고 있거나 비슷한 직종을 하시는 분들이 이 드라마를 보시면 그 권리들을 조금 더 용기 있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제 캐릭터가 시원한 사이다 같은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황준철 역으로 드라마에 처음 도전하는 슈퍼주니어의 예성은 “(<송곳> 출연은) 후회 없는 선택이라고 지금까지 믿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송곳>을 보시면) 후회하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했다.

12부작으로 기획된 JTBC 토일 드라마 <송곳>은 24일 오후 9시 40분에 첫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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