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는 6회에 걸쳐 육룡을 소개했다. 그러나 소개에 그친 것은 아니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에 따라 육룡 다시 말해서 영웅들을 소개하는 것만큼이나 크게 고려 말엽의 난세, 말세를 치밀하게 그려냈다. 단지 그것을 고려말기라고 한정할 수 없는 것이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의 뼈아픈 고통이다.

그렇게 6회까지의 전개를 통해 작가는 이 고려말의 혁명을 상당히 순수하게 풀어가려는 의도를 보였다. 물론 현대와 달리 과거에 있어서 혁명은 민심을 등에 업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었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는 좀 더 깊은 역사의식이 반영됐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결국 육룡을 소개한다는 것은 혁명의 타당성을 시청자에게 설득하는 과정이었고, 그 핵심이 되는 대사는 분이와 땅새에 대사 몇 마디에 모두 담겨 있었다. 특히 5회 몰래 개간한 땅에서 추수한 곡식을 홍인방(전노민)의 가노들에게 모두 빼앗기고, 목숨까지 빼앗긴 채 도망치던 분이가 이방원(유아인)에게 눈물을 뿌리며 쏟아낸 긴 대사는 그대로 명대사였고, 명연기였다.

“원래 우리 땅에서는 한 해에 400섬의 곡식이 났어. (중략) 얼마 전엔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여덟 명의 귀족에게 자그마치 360석을 바쳤어. 남아 있는 40섬으로 일 년을 살아야 하는 사람은 이백 명이 넘어. 그게 어떤 숫자인지 모르겠지? 하루에 밥 두 숟가락씩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야. 그래도 우린 살아야 했고. 살아있으면 뭐라도 해야 되는 거니까”

“살아야 했고, 살아있으면 뭐라도 해야 되는 거니까”라는 대사는 문득 암살에서의 전지현의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가와구치와 강인국 두 사람을 죽이면 독립이 되냐고? 모르지. 하지만 알려 줘야지. 우리는 끝까지 싸우고 있다고”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혁명 혹은 독립운동은 아주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대사들이다. 살아서 볼 희망은 매우 희박하지만 그래도 이대로 주저앉아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당찬 의지가 담겨 있기도 하다. 그래서 장차 왕이 될 것도 아니고, 뛰어난 무술을 익혀 혁명의 최전선에 활약을 할 것도 아닌 분이가 육룡의 하나로 당당한 자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대륙의 고수 장삼봉에게 무술을 배워 최고의 경지에 오른 땅새(변요한)의 절규도 분이의 울분과 다른 듯하면서도 맥락은 같았다. 입신양명을 원한다면 검술을 익힌 자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겠지만 이미 고려는 땅새에게 출세하고픈 곳이 아니다. 철천지원수의 땅 고려에서 땅새는 울부짖었다. “고려를 끝장낼 겁니다. 할 게 없습니다. 이것 말고는”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분이가 아직은 몰라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마을사람들을 움직이고, 그 마을 사람들의 몇 년 노력과 목숨까지 귀족들에게 빼앗기고는 대범하게 그 곡식들을 불태워버리는 엄청난 일들은 사실은 땅새의 행동과 다를 것이 없다. 고려를 끝장내는 것. 혁명을 하는 것.

그래서 분이와 땅새를 볼 때마다 가슴이 요동치게 된다. 천 년 전의 대사라고 전혀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천 년째 제자리걸음일지도 모른다는 고통이 느껴진다. 그런 우리들에게 분이의 대사가 주는 의미는 크다. 살아야 하니까. 살아 있으면 뭐라도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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