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 소속 예인선이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 호를 들이받은 지 1년 됐다. 1년 전에 비해 태안의 환경이 좋아졌다곤 하나 여전히 주민들은 피폐한 일상에 신음하고 있다. 사고를 친 삼성은 한때 “1000억 기금을 내놓겠다”고 했으나 공염불이 됐으며, 실제 삼성이 지난 1년간 태안에 해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에 분노한 태안 주민 2000여명은 지난 7일 ‘삼성 및 대 정부 규탄 범군민대회’를 열고 △사고 책임자인 삼성중공업의 무한 배상 △조속한 배상을 위한 특별법 개정을 다시금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태안 주민들의 정서와 달리, 언론보도에서 ‘삼성’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최대광고주인 ‘삼성그룹’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으리라. 지난 1년간 삼성이 보인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행태에 대해 비판하기는 커녕 사고 당사자에서 ‘삼성’을 슬쩍 누락시킨다. 일부 언론의 이런 행태 덕분에 삼성은 다시금 면죄부를 얻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 중앙일보 6일자 1면
태안 1주년을 맞이해 보수신문들이 다시 ‘태안’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은 ‘일상에 돌아온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의 선행’을 집중 부각하는 등 태안의 ‘밝은 면’만을 소개할 뿐이다. 태안의 ‘어두운 면’인, 7일 대규모 집회와 삼성 측의 무책임한 행태에 대해서는 일절 다루지 않았다.

먼저 사고 당사자인 삼성과 ‘특수 관계’에 놓여있는 <중앙일보>는 역시나 8일자 지면에서 7일 열린 태안 주민들의 총궐기대회를 전혀 다루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일상으로 돌아온 주민들의 삶과 자원 봉사자들의 ‘미담’만을 다루며 “이제 태안은 괜찮다”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주려 할 뿐이다.

중앙일보는 6일 1면 어선 동승 르포 ‘그물 가득 멸치…바다에 희망이 보인다’에서 “요즘은 멸치가 많이 잡힌다. 1년전 기름띠로 뒤덮여 새까맣던 바다를 돌이켜보면 오늘같은 날이 올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는 어민 이씨를 내보냈다.

피해 보상 문제에 대해서는 9면 ‘재앙 걷힌 해안, 그래도 한겹만 파보면’에서 “주민들은 피해 보상금 지급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나 더디기만 하다. 5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접수된 피해신고 건수는 수산분야 5만4637건, 비수산분야 4만5670건 등 10만307건이지만 보상금이 지급된 것은 53건, 160억원에 불과하다”고만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사고를 유발한 ‘삼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중앙일보는 같은 면 ‘되살아난 바다 보니 고생한 보람 뿌듯’에서 “깨끗해진 바다를 보니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며 뿌듯해하는 자원봉사자들 다뤘다.

삼성가와 사돈지간인 <동아일보> 역시 “이제 태안은 괜찮다”며 태안의 ‘밝은 면’만 다룬다. 6일 1면 머릿기사 ‘그 아이들, 검은 눈물 닦고 다시 웃다’에서 “지난해 12월 7일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 지 1년만에 주민들은 생업에 복귀해 있었고 아이들은 예전의 밝은 웃음을 되찾았다”며 일상으로 되돌아온 주민들을 다뤘다. 피해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해 분노한 주민들의 궐기대회를 다루지 않긴 중앙일보와 마찬가지다.

▲ 동아일보 6일자 1면
그나마 조선일보는 주민궐기대회를 8일 12면에서 다루며 앞서 두 신문과 차별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비중이 크지 않는 1단 기사에 불과하다.

조선일보 역시 6일 10면을 ‘바지락 잘 잡혀 ‘웃음’…관광객 늘지 않아 ‘한숨’’에서 “어민들은 다시 힘찬 뱃고동을 울리며 조업에 나서고 있고, 주요 항·포구와 해안도 예전의 활력 넘치는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고 태안의 밝은 면만을 비춘다.

피해보상 문제에 대해서는 “피해 지역이 워낙 광범위한 데다 피해 유형이 다양해 조사가 지연되고 있고, 검증 절차가 까다로워 실제 배상을 받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이 사고는 홍콩선적 사고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가 가입한 선주상호책임보험인 중국P&I와 SKULD P&I에 1차 배상책임이,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Fund)에 2차 배상책임이 있다”며 배상 책임에서 사고 당사자인 ‘삼성’을 슬쩍 누락시킨다.

보수신문과 대조적으로 한겨레·경향은 주민들의 힘겨운 일상을 전하며 사설에서 공통적으로 “대규모 해양 오염 사고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의 선지원과 오염자의 부담원칙”이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한겨레는 5일 12면 ‘정부는 ‘선지급’ 주민은 ‘해양보전’’에서 프레스티지호 기름유출 사고의 피해지역인 스페인을 다루며 “스페인 정부는 프레스티지호 사고로 발생한 대규모 피해를 3년여만에 모두 먼저 지급하며 발빠르게 움직였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6일 사설 ‘정부는 ‘태안참극’ 잊으려 하는가’에서 “대규모 해양오염 사고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의 선지원과 오염자의 부담원칙이다. 오염자가 주민의 피해보상은 물론 파괴된 생태계 복원까지 책임지는 건 국제적으로 공인된 원칙이다. 액슨발데스호 사고 때 미국정부, 프레스티지호 사고 때 스페인 정부가 취한 것처럼 정부는 삼성중공업이 무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며 “이 경우 문제는 국제유류오염 보상기금이나 가해자로부터 보상을 받는 데 너무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는 보상이 이뤄지기 전 최대한의 지원을 통해 주민이 이전에 해왔던 일상생활을 영위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경향신문 8일자 14면
경향신문은 7일 열린 태안 주민들 대규모 집회에 대해 가장 상세하게 다뤘다. 경향신문은 8일 14면 ‘“생색만 내고 배상은 없다” 분노의 태안’에서 “피해 주민들은 7일 대규모 집회를 열고 ‘삼성은 무한책임을 인정하고, 국회는 피해조사 종료 전에 선 배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특별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해당 기사에서 경향은 “주민들은 삼성중공업 측이 사고 후 피해배상 등 실질적 대책보다는 생색내기용 이벤트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과 자매결연한 마을의 경우 가구당 고작 이불 한두 채 지원받았으면서도 다른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눈총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경향은 8일 사설 ‘태안 참사 1년, 기약 없는 배상’에서 “가뜩이나 생계가 막막한 주민들을 더 힘겹게 만드는 것이 기약 없는 배상과 정부의 무성의”라며 “정부는 배상이 이뤄지기 전에 지원을 서둘러야만 한다. 해양오염 사고 때는 각국 정부가 우선 피해주민을 지원하고, 나중에 IOPC와 가해자의 배상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국제관행”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년간 태안에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곤 하나 환경 오염이 정화되려면 수십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시민들은 태안 1주년을 맞이해 “태안으로 자원봉사 떠나자”는 자발적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보수신문들은 이들의 선행을 악용해 삼성에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될 것이다.

<후기>

기사가 나간 뒤 삼성중공업 홍보팀 관계자가 <미디어스>에 전화를 걸어 “1천억 기금은 삼성 1/4분기 경영실적에 포함했으며 언제라도 집행될 수가 있는데 지자체 쪽에서 받아가지 않는 것이므로 삼성의 의도로 공염불이 된 것이 아니다”며 “삼성은 지역사회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달 말까지 태안지역에서 소외계층 지원, 방제활동 지원 등에 180억원을 썼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억울한 측면이 있다. 사실관계가 틀렸으니 (기사의 해당 부분을) 접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미디어스는 서해안유류사고대책지원본부에 문의해, 관계자로부터 “삼성이 (1천억 기금을) 발표하고 나서 주민여론을 수렴해보니 ‘삼성이 피해규모에 턱없이 못미치는 이 돈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라는 등 격앙된 분위기여서 지난 4월 경 ‘지금은 때가 아니니 연기하자’고 국토해양부에 보고했다”며 “이후 국토해양부의 후속조치가 없었다. 지금도 주민들은 삼성에 대해 격앙된 분위기다”는 답변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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