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 이용하지 않고 살아보기라는 ‘실험’을 기억한다. 결론은 도시생활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중국산 표시가 돼있지 않더라도, 입고 있는 옷의 일부 섬유나 전자제품 깊숙이 숨겨져 있는 조그만 부품까지 생각한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이에겐 포털사이트 다음과 네이버는 이미 ‘메이드 인 차이나’와 같은 존재다.

메일 확인하러 갔다가 ‘이런 야식 어때요’라는 제목으로 계란 얹어 놓은 라면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충동을 이기지 못해 클릭해 본 경험들은 있을 것이다. 그런 무의식적인 ‘클릭질’은 ‘아슬아슬 뒤태 섹시 여가수의 화보 촬영’, ‘비 공연 중 웃통 벗어’,‘서태지 SBS 편집권 침해 논란’… 등,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매일매일 이어진다.

▲ 2004년 초창기 다음 아고라 화면 캡처ⓒ트람의 ITAgorA / itagora.tistory.com
우리나라 전체 사이트 순위 1등과 2등인 네이버와 다음은 요즘 주간 각 30억 페이지뷰(PageView) 정도가 발생한다. 다음 검색에서 제공하는 웹사이트 지표 추정치가 그렇다는 것이다. 하루동안 ‘최소’ 4억4천만번의 ‘클릭질’이 양대 포털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는 중국산을 쓰고 싶지 않아도 쓰고 있듯 인터넷 사용자가 “난 그런 거 안 봐~”라고 생각하는 게 무의미해져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말초적이고 형이하학적 콘텐츠만을 위해 포털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야릇한 콘텐츠가 넘쳐나는 웹사이트는 많다. 멀리서 찾지 않더라도 국내 1등 일간지 조선일보사의 자매회사인 <스포츠조선> 사이트에만 가더라도 “탁구를 잘하면 ‘그짓’도 최고??”라는 알듯말듯한 화끈한 콘텐츠는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클릭질’ 수치에서 네이버 다음과 비교하기에는 그 격차가 민망하다.

신문과 방송 등 주류미디어에서 배급한 뉴스가 포털 콘텐츠의 ‘대들보’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전 주류미디어와 포털간의 관계에 지각변동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다음 아고라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조중동 광고주압박 소비자운동’은 다음과 ‘조중동’을 결별시킨 사건이다. 주류미디어와 포털이라는 관계 틀에서 다음과 네이버를 구분짓게 된 사건이기도 하다. 계약파기를 두고 다양한 명분과 배경은 존재할 수 있지만 주류미디어 ‘조중동’이 아고라로 인해 ‘화’가 났고 계약파기 후 수익 감소도 감수하고 팽하니 떠났다. 이후 조선일보는 다음에 지적재산권 침해로 소송을 걸기도 했지만 최소한 ‘돈’으로 이루어진 계약이 ‘돈’ 때문만에 깨진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2008 아고라’는 한 포털 사업자의 서비스 마케팅 차원으로 묶어둘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미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촛불’, 6·10 광화문 촛불시위에 50만명이 넘는 사람이 참가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실질적인 지도부 없이 시작된 촛불시위는 내부 논란이 일었고 이에 ‘아고리언’들은 독자 깃발을 들고 나타났다. 또한 세계경제위기 그리고 한국의 경제위기 정국에서 현 정부의 무능력한 대응은 ‘미네르바’를 경제 아이콘으로 떠오르게도 했다. 한국을 마음 속에서 버리겠다던 ‘미네르바’의 ‘국적’은 아고라다. 이처럼 2008년을 관통한 ‘촛불’ 그리고 ‘미네르바’와 아고라는 불가분 관계였다.

▲ 다음 블로그뉴스 화면 캡처
‘2008 아고라’는 갑자기 탄생한 게 아니다. 1995년 창립한 다음은 2003년 3월에 “우리가 움직이는 세상, 미디어 다음”이라는 모토로 미디어다음 섹션을 열었다. 초기에는 자체 기사를 생산하는 등 인터넷신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2004년이 되어서야 토론을 중심에 둔 현재 모습의 아고라가 시작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아고라’는 사실 미디어다음 섹션 전체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뉴스/스포츠/아고라/블로그뉴스/텔레비존/세계엔/만화속세상/문학속세상으로 구성된 미디어다음 각각의 하위 서비스들의 화학적 결합을 ‘아고라’라고 통칭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 집회장인 아고라(agora)에 대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호메로스의 작품에 처음 나오는 이 이름은 물리적 장소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 자체도 의미하고 있다… 일상적인 종교활동·정치행사·재판·사교·상업활동을 모두 아고라라고 불렀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시민들을 만나 문답법을 통해 쉽게 진리를 깨우치도록 한 장소도 아고라다. 시민들이 토론하고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론이 형성되는 공간을 함의하고 있는 아고라가 미디어다음을 대표하는 단어가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미디어다음의 한쪽 날개가 아고라라면 다른 한쪽은 블로거뉴스라고 볼 수 있다. 짧은 호흡의 글쓰기와 빠른 피드백에 적합한 게시판이 아고라 토론방의 툴이라면 블로거뉴스는 비교적 긴 호흡의 글쓰기와 오랜 기간 동안 피드백을 형성할 수 있는 블로그라는 툴이다. 물론 텍스트가 전부는 아니다. 이미지와 음성 동영상 등 각종 멀티미디어를 동원한 UCC가 중요한 메시지 전달 도구가 되고 있다.

서비스 오픈 4년째인 현재 ‘아고라’는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열흘동안 붉은 꽃은 없다’. 며칠 전 한나라당이 공표한 사이버모욕죄 도입과 신문법 개정을 통한 ‘포털 규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르면 연내에 늦어도 내년 봄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여당은 반대여론을 막기 위해 KBS나 YTN 사태처럼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낙화의 시기가 빨라질 수도 있다.

‘2009 아고라’는 어떤 모습일까? 변하지 않을 사실은 아고라의 주인은 시민이었고, 시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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