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는 있었다. 지난해 10월 카카오톡 사찰 파문이 일던 당시 카카오는 감청영장 집행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가입자만 바라보고 감행한’ 도박은 아니었다. 전달인 9월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말하자마자 검찰은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꾸렸고 포털과 수사기관 사이 핫라인이 구축됐다. 이후 카카오는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하는 ‘여론 장악’에 적극 협조 중이다. 최상위 댓글 작성 권한을 정부와 기업에게 넘겼고, 검색제휴 언론사를 줄이려고 한다.

▲ 지난 9월17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이병선 다음카카오 이사(왼쪽)와 윤영찬 네이버 이사. (사진=연합뉴스)

그리고 6일 카카오(대표이사 임지훈)는 “수사기관의 통신제한조치(감청) 협조를 재개한다”고 선언했다. 이번 선언은 새누리당이 지난해부터 카카오와 이동통신사에 실시간 감청장비를 갖출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연이어 내놓고, 국세청이 수개월 동안 세무조사를 진행 중이고, 국정감사 자리까지 불러내는 등 정부여당이 카카오를 압박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불가피한 입장 변화’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카카오가 불과 1년 전 거부 선언을 스스로 뒤집었다는 점은 가입자에게 일종의 배신이다. 그새 카카오는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카카오톡은 포털을 대체했다. 지난해 카카오톡 사찰 파문 당시 사이버 망명 효과도 크지 않았다.

카카오는 지난 1년 동안 이용자 보호 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주장한다. 카카오 관계자는 7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 감청영장 협조를 거부했으나 지난 1년 동안 (비밀채팅 도입 등) 제도를 보완했고 검찰과 논의·협의를 통해 기관장 공문을 통해서만 감청을 진행하고, 단체채탕방에서 용의자 외 대화 참여자들을 익명 처리해서 제공하는 방식으로 프로세스를 개선했기 때문에 협조를 재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는 “단체대화방(단톡방)의 경우 수사 대상자를 제외한 나머지 대화 참여자들에 대해서는 익명으로 처리해서 자료를 제공하기로 했다”며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익명화 처리된 사람들 중 범죄 관련성이 있는 사람이 나올 경우에 한해, 대상자를 특정해서 추가로 전화번호를 요청하게 된다. 이때도 관할 수사기관장의 승인을 받은 공문으로만 요청하도록 엄격히 절차를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는 단체채탕방에서 용의자 외 대화참여자의 이름과 대화명을 가리고 대화내용을 제공하기로 했다. 카카오에 따르면, 비밀채팅은 대화내용을 암호화해 제공하기 때문에 감청 효과는 없다.

용의자가 아닌 대화참여자의 이름을 가리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게 카카오 설명이지만 대화내용을 통째로 수사기관에 넘기는 것은 대화참여자들의 신원을 넘기는 것과 같다. 카카오는 익명 처리한 대화참여자에 대한 정보를 공문으로 제공하겠다고도 했다. 또한 카카오는 수사기관이 원하는 대로 기간도 제한하지 않았다. 카카오 관계자는 “영장에 적시된 기간대로 최대 8개월(4개월+4개월 연장) 동안의 대화내용을 주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감청영장 거부 선언 전까지 카카오는 일주일 단위로 대화내용을 수사기관에 제공해왔고 이 같은 방식으로 협조를 재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일주일 단위의 상시적 압수수색’에 협조하겠다는 것이다.

사업의 근간인 가입자를 잃을 수도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카카오가 정확한 의미에서 ‘실시간 감청’에 협조할 가능성이다. 카카오에는 실시간으로 대화내용을 뽑아내는 감청장비가 없다. 카카오는 바닥에 바짝 엎드렸고, 이제 카카오 서버에는 실시간 감청장비가 설치될 가능성이 크다. 카카오톡은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검찰이 원하는 대로 실시간 사찰의 도구가 됐다. 카카오는 이용자를 수사기관에 팔아넘기는 대신 사업을 확장하는 정치적 선택을 했다. 권력을 위해 바짝 엎드린 카카오를 이용자가 계속 드나들지 의문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