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의 전달과 해석을 비판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그러나 오늘날 언론에는 '전달'과 '해석'은 있지만 비판이 실종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인은 '남의 말'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차도살인'을 일삼는 비겁한 존재로나 묘사된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비판은 실종된다. 제대로 된 비판을 위해 가끔은 언론이 직접 자신의 의견을 공격적으로 드러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래도 진보'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우리의 말로 표현하고자 한다.

너무 뻔한 얘기라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한 마디 안 할 수 없게 됐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꼴사나운 힘겨루기가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있으니 그렇다. 내년 총선 공천권을 둘러싸고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일진일퇴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

추석 연휴 동안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실시에 합의한 김무성 대표는 청와대의 강한 반발이 불거지자 한 발짝 물러서는 듯 했으나 ‘아웃복싱’으로 다시 전술을 바꾸며 스텝을 밟고 있다. 김무성 대표의 전략적(?) 후퇴에 의해 국민공천제 실시는 당 기구가 논의할 수 있는 수많은 안 중 하나로 그 지위가 격하됐다. 이제 쟁점은 내년 총선에 대한 구체적인 공천 방식을 다룰 그 ‘당 기구’를 어떻게 구성할 것이냐의 문제로 옮겨갔다. 여기서도 김무성 대표는 순순히 물러날 태세가 아니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가 수차례 공언한 대로 지금 시점에 대통령을 이길 수는 없다. 더군다나 김무성 대표는 약점도 많지 않은가. 살아있는 권력이 어찌됐든 마음만 먹으면 소위 ‘마약사위’ 사건 정도는 사전행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뭐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러니 최대한 목숨을 부지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자기 입맛에 맞는 차기 대권주자 옹립을 포기할 때 쯤 평화적으로(?) 권력 이양을 받는 게 차라리 낫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노인의 날 기념식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렇게 보면 김무성 대표가 적당한 수준에서 꺾어질 가능성이 높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의 기예를 두고 ‘기브 앤 테이크’라고들 하는데, 대통령에게 준만큼 받을 생각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거다. 문제는 김무성 대표의 일부 측근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기브 앤 테이크’가 가능한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거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에게 그랬듯, 대통령이 끝까지 ‘김무성 찍어내기’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전임 정권의 시대에 박근혜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를 갖고 그랬듯, 들이 받아야 할 때 들이 받고 끝까지 버텨야 그나마의 가능성이라도 생긴다, 그런 얘기다. 정치란 게 생물이라고 했으니 누구의 말이 옳을지는 그때 가봐야 안다. 당장 5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뭐라고 발언하는지에 따라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 논란이 오픈프라이머리니 전략공천이니의 제도의 문제로 번지면서 정치가 코미디의 수준까지 격하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그간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드리겠다”며 오픈프라이머리 또는 국민공천제 도입의 당위를 선전해왔다. 김무성 대표는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주장을 통해 이를 ‘기득권 포기’로 포장했다.

그러나 국민 입장에서는 정당이 공천을 하는 방식이 이렇든 저렇든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 선거에서 정당의 임무는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자신의 정강과 정책을 따르는 사람 중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후보를 공직에 출마하도록 하는 것이다. 누가 그 ‘공직 후보’의 처지에 적절하게 어울리는지 검증하는 일까지 국민들에게 하라는 것은 한 마디로 책임을 내던져버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국민들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에게 임기 중에 할 일에 대한 법적 효력을 가진 ‘계약서’를 받지 않는다. 후보는 공약을 제시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도의의 차원에서 이뤄지는 일이다. 공약을 지키지 않은 국회의원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되지만 법적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정치가 이렇게 굴러갈 수 있는 이유는 국민이 정당에 그만큼 많은 정치적 책임을 지우기 때문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믿어줄 테니, 해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픈프라이머리 등의 제도는 정당이 국민에게 “우리를 믿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물론 제도는 늘 그것 자체로만 평가할 수 없다. 무조건 선한 성격을 가진 제도는 없고 언제나 악한 결과를 불러오는 제도도 없다. 정치에서 제도에 대한 판단 기준은 언제나 그 제도가 국민의 이익을 얼마나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맞춰져야 한다. 단기간에는 국민의 이익을 확대하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 그렇지 않은 제도가 있고, 당장은 해가 되는 것 같아도 길게 보면 유리한 것이 있다. 선한 의지를 가진 정치인이 어느 제도를 어떤 방식으로 취해서 국민의 동의를 등에 업고 개혁을 추진할 것인가는 정치의 기예에 속하는 문제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오픈프라이머리나 국민공천제의 도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줄 수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국민들의 정치 참여를 정력적으로 유도하고 이를 통해 현실에 안주하는 정치에 활력을 되찾아 결과적으로 국민의 이익 증진을 위한 정치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용하고자 하는 경우가 그렇다. 영국 노동당의 당수 제레미 코빈의 사례나 아니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경우와 같은 게 그렇다. 우리나라의 사례에서 찾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일 테다. 이들은 당직과 대선후보라는 특별한 경우에서 작동한 오픈프라이머리의 사례에 가까운 걸로 볼 수 있는데, 이처럼 기획의 앞뒤가 명확하다면 정당정치와 대의제의 원칙을 거스르는 제도라도 도입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오픈프라이머리 또는 국민공천제 도입 논의가 과연 그런 지반 위에서 행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치세력이 이러한 ‘극약처방’을 써서라도 국민들의 정치 참여 기회를 확대해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야 하는데, 이걸 누구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오픈프라이머리 등의 도입을 가장 정력적으로 주장한 김무성 대표는 국민통합을 위해서라면 정치적 반대자로부터 물세례를 맞는 일을 피할 것이 아니라면서 연일 국민을 분열시키는 극우적 주장을 내놓길 서슴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주장하는 오픈프라이머리 또는 국민공천제 도입을 당내 영향력 확대와 차기 대권주자의 입지 강화를 위한 기회주의로 평가하지 않을 국민이 어디에 있는가.

▲ 2일 서울 관악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악청사에서 열린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친 김금옥 위원(오른쪽)과 조성대 위원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 참여 확대를 말하면서 뒤로는 현실을 왜곡하는 선거제도의 유지를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도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주장의 진의를 의심하게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선거구별 인구격차를 현행 3대 1에서 2대 1로 줄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특별히 어느 정파에 유리한 결론을 내리고자 했기 때문이 아니다. 누가 봐도 현행 선거 제도가 국민의 의사를 의회의 구성에 반영하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게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농어촌의 지역대표성을 주장하며 어떻게든 민의를 왜곡하는 현재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수를 쓰고 있다. 이 문제를 책임지고 나서서 어떻게 풀어보겠다는 사람도 없다. 농어촌의 유권자들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는 문제를 넘어서서 ‘동료 의원’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어촌의 지역대표성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이 농어촌의 생존과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사람들이 농어촌을 떠나 사람 미어터지는 서울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그 체제를 유지하고 확대해온 것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 2011년 구제역이 기승을 부리던 때에 축산업을 사실상 버리자는 것이나 다름없는 얘기도 했다. 이런 판국에 무슨 국민공천인가? 도대체 국민이 언제 공천권을 ‘돌려’ 달라고 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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