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가 르메이에르타운 16층에 위치한 <미디어스>의 사무실은 전망이 매우 좋다. 편집장의 지시를 받고 열나게 기사를 쓰다가 “좀 지겹다”는 생각이 들 때 왼쪽 창을 바라보면, 짙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북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청와대,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정부종합청사 등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여러 권력기관들도 보인다.

3일 점심 무렵, ‘속도 안 좋은데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창 너머로 종로구청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와 달리 그곳이 한눈에 띈 이유는 큼지막하게 걸린 현수막 때문이었다. 파란색 바탕 한쪽에 아기자기한 풍선까지 그려진 현수막에는 ‘2008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대상 수상’이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 오호라, 이번에 김충용 종로구청장이 문화행정부문에서 2008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대상을 받았었지.

▲ 서울 종로구청에 걸린 ‘2008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대상 수상’현수막 ⓒ곽상아
“경쟁력있고 살기좋은 도시로 종로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가겠다”는 희망찬 포부를 너무도 당당하게 밝힌 그 현수막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뭣도 모르고 좋~댄다”

‘2008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상’이 어떤 상인가. 어청수 경찰청장을 포함해 이 상에 선정된 26명은 홍보책자에 적힌대로 “기업과 국가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희망찬 미래를 창조하고,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공헌한 이들”이고, “경영이념과 우수한 경영성과를 국내외에 전파함으로써 타의 귀감이 되도록 한 사람들”인가.

액면 그대로 믿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5천만이 징글징글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이 땅에는, ‘국가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희망찬 미래를 창조하는’ 존경할 만한 CEO들이 26명이나 된다고. 글로벌경영, 신뢰경영, 문화행정, 선진복지경영, 지식경영, 시민중심경영 등 26개 부문(차이점이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다)에서 CEO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이들이 많다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러한가? 지난 여름, ‘건강주권’을 외치며 거리로 나온 시민들 수십만명에게 물대포를 쏘고, 중무장한 경찰병력을 동원해 시민들을 짓밟았던 어청수 경찰청장이 존경할 만한 대한민국 CEO라니. 이 상은 한국전문기자클럽과 <한국일보>가 주최했다. ‘도대체 한국일보는 왜 어 청장에게 상을 준 걸까?’라는 단순한 궁금증에서 취재를 해본 결과 <한국일보>는 광고비를 받고 이 상에 ‘주최’라는 이름으로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 상의 운영을 실질적으로 도맡은 한국전문기자클럽은 도대체 어떤 곳인가. 직접 찾아가보니 사무실도 없을 뿐더러 취재차 전화를 하면 “(같이) 신문밥 먹고 그러는 사람들끼리 이해 좀 해주라. 곤란하다”며 전화를 끊어버리기 일쑤다. 기자가 된 지 이제 막 1년이 지난 햇병아리에 불과한 나로선, 언론사·언론단체들의 ‘돈 받고 상 퍼주기’가 ‘관행’이었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울 뿐이었다.

미디어스 취재 결과, 이 상은 ‘돈 놓고 상 먹기’였다. 주최측이 발간한 ‘존경받는 대한민국CEO대상’ 홍보책자에 따르면, 이 상은 대기업의 경우 2천만원 지자체는 1500만원을 내게 돼있다. “최종 평가에서 선정된 기업에 한해 11월 7일까지 입금하라”는 노골적인 문구도 눈에 보인다.

한마디로 2천만원, 1500만원을 내면 ‘국가경제의 지속적 성장’이나 ‘희망찬 미래 창조’에 별다른 보탬이 되지 않는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도 순식간에 존경을 한몸에 받는 CEO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어야겠지만.

▲ ‘2008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상’홍보책자
이번에 상을 탄 단체들을 대상으로 일일이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직접 전화접촉을 해봤다. 단체장이 상을 받은 경기도 양평군, 서울 동대문구, 충남 홍성군는 홍보책자에 기재된 그대로 1500만원을 냈고, 충남 서천군은 ‘딜’을 잘 못한 것인지 규정보다 좀더 많은 1650만원을 냈다. 충북 옥천군은 1000만원(시상식 전 330만원을 냈고, 앞으로 700만원 더 지출할 예정이란다), 대구 수성구는 800만원이다. 단체장의 수상 사실을 마음껏 뽐낸 종로구의 경우에는 내가 요청한 정보공개 청구가 마무리 되지 않아서 광고비로 얼마를 지출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이름을 팔아 ‘장사’를 하는 언론과 돈으로 명예를 사는 작자들의 은밀한 거래는 아무리 업계의 ‘관행’이라 해도 굉장히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이름만 번지르르한, 그 알량한 상 하나를 타기 위해 시민들의 세금이 사용됐다는 사실도 분개할 만하다. 하지만 언론사·언론단체가 중간에 끼었기 때문인 걸까. ‘동업자’인 언론들은 이 사실을 좀처럼 다루지 않는다.

지난해 <경남도민일보>와 <수원시민신문>이 돈을 매개로 한 언론사·언론단체들의 ‘상 퍼주기’ 실태를 폭로했음에도 전국단위 언론들은 이를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이들의 폭로에는 ‘한국경제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 ‘헤럴드경제’ 등 전국 단위 일간지도 포함됐었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본지에 칼럼을 쓰고 있는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는 “전국 단위 일간지 중 한 곳이 자료를 달라고 해서 줬는데 보도하지 않더라. 자신들도 이런 관행의 당사자 중 하나이기 때문에 동업자로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 것 같다”고 쓴소리를 한다.

나 역시 KBS 청주방송총국과 KBS 시사360에서 연락 온 것을 제외하면, 자료를 요청한 언론사가 없다. 전국 단위 일간지들은 서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이나 한 건지 한 군데도 인용보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인용보도를 하는 곳은 매체비평지나 인터넷 언론 등 규모가 작은 곳에 불과하다. 이러한 침묵은 심각한 언론윤리 위반인 ‘돈 받고 상 주는’ 관행을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그대로 유지시켜 준다.

한국전문기자클럽 관계자의 말대로, 같이 신문밥을 먹는 사람들끼리 이해를 해줘야 하는 걸까. “우리는 땅 파서 장사하냐”라는 그들의 말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해주고 미디어스도 영특한 그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까. 지금 이 시간에도 연말을 맞이해 어떤 언론사 혹은 언론단체가 ‘수상장사’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2008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상’을 통해 본 2008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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