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의 핵심은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 허용, △노사 합의 없는 취업규칙의 변경 허용, △임금피크제의 확대 등이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는 이러한 것들이 ‘개악’이라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고용노동부는 방송·인쇄 등의 광고를 통해 “28만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선전중이다. 공영방송 KBS는 정부의 주장만을 받아들여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청년 ‘고용절벽’ 우려를 풀기 위해 필요하다”며 “노동개혁이 차질 없이 진행되면 2017년까지 공공부문 4만개, 민간부문 16만개 새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노동개혁의 칼날은 방송사도 피해가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 KBS '뉴스9' 14일자 리포트

‘저성과자’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방송사업장은 MBC다. 한겨레21은 제1039호(2014.12.8)에서 <치밀하고 교묘한 MBC ‘해고 프로젝트’>를 통해 “MBC가 ‘성과가 낮다’는 이유로 인사평가 뒤 짧게는 1년 만에 사원을 해고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그 합법성을 따지기 위해 대형 법무법인으로부터 유료자문까지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관련기사 : MBC, 기자·PD 해고하는 시나리오 세우고 ‘법률 자문’ 받아)

▲ '한겨레21' 제1039호 표지

MBC, ‘저성과자 해고 할 수 있나’ 법률자문 받았는데

당시 언론계에는 ‘MBC가 비판적인 인사들을 해고하기 위해 법률자문을 받았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는데, 한겨레21을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MBC가 대형로펌에 ‘3R을 두 번 받으면 징계해고를 할 수 있는지’, ‘R등급을 통한 해고가 가능한지’, ‘개인평가규정에 규정을 추가할 때 노사 합의를 거쳐야 하는지’ 등을 문의했다는 것이다.

MBC는 1년에 3차례 업적·역량 평가를 시행하고 70점 이하를 받은 직원에게 최하 등급인 R등급을 매겨왔다. 김재철 전 사장은 기존의 절대평가를 상대평가 ‘강제할당’ 방식으로 바꿨고 2012년 170일 파업에 참여했던 사원들에 일괄적으로 R등급을 매겨 논란을 야기했다. 즉 MBC가 위와 같은 내용을 로펌 측에 의뢰한 것은 사실상 비판적인 인사들을 해고할 수 있는지를 문의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는 ‘저성과자’, ‘개인평가규정 추가 시 노사 합의’ 등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노동개혁 관련 법안들이 통과되면 MBC 내 비판적 인사들이 타깃이 될 것이라는 해석은 틀리지 않아 보인다.

언론은 임금피크제에 대해서도 청년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지역 방송사들의 상황을 보면 그렇게만 볼 수 없다. (사)지역방송협의회 관계자는 “대부분의 지역MBC들은 임금피크제와 안식년을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며 “그렇지만 신규일자리는 거의 창출되지 않았다. 채용이 되더라도 계약직 비율이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2011년부터 2015년(8월 기준)까지 17개 지역MBC에서 퇴직자는 정년퇴직자 317명, 명예퇴직 73명(총 1300명 근무인원의 30%)에 달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신규인력은 정규직 81명, 계약직 89명으로 총 170명에 불과했다. 최근 2년 간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지역MBC가 채용한 인원은 총 3명에 불과하다. 임금피크제로 ‘나쁜 일자리’만 늘어난다는 노동계의 우려가 그대로 드러난 사례로 볼 수 있다.

‘임금피크제’의 문제에서는 공영방송 KBS도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6월 KBS는 노조의 합의 없이 직원들에게 임금피크제 관련 개별 동의서를 받았다. 노사가 단체협약에서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공공기관으로 확대하겠다는 발표를 내놓자 사측이 노사협상과 별개로 개별 동의서를 받으려 한 것이다. KBS노조 관계자는 “(임금피크제는) 교섭대표노조와 협의해야 시행할 수 있는 문제이고, 사측이 일방적으로 동의서를 받는 것은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며 “조대현 사장도 노조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해 놓고 열흘 정도 지나 태도가 돌변한 것은 최근 발표한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 때문이 아닌가 판단된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 효력 없는 일하는 KBS, ‘임금피크제 개별 동의서’ 받아) KBS와는 달리 SBS는 지난해 말 노사합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관련기사 :언론계 전반 선례 될까? SBS 임금피크제 합의의 의미는)

‘쉬운해고’의 희생양…기자·PD들도 무관치 않을 텐데 보도는?

이렇듯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은 언론 노동자들 역시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보도는 ‘정부편향’에 가까운 상황이다. 노동개혁에 대한 비판 없는 보도가 이어지고 ‘반대’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민주노총 9·23총파업 결의대회에 대한 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일 1만1600여명의 경찰병력이 동원돼 과잉진압이라는 논란이 불거졌고 이에 항의하던 권영국 변호사를 포함한 54명이 연행되는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언론은 침묵을 지켰다.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경찰이 한겨레, 민중의소리 등 일부 기자들을 연행하려 한 것에 대해서도 언론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 23일 오후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 당시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민주언론시민연합(공동대표 이완기·박석운)은 민주노총 9·23 총파업 집회와 관련해 “5개 주요 일간지(경향·동아·조선·중앙·한겨레)의 경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1건씩, 한겨레가 2건 보도했고 6개 주요 방송사(KBS·MBC·SBS·JTBC·채널A·TV조선)에서는 채널A가 1건, JTBC가 1.5건, KBS가 0.5건 보도했을 뿐”이라며 “심지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박근혜 정권의 노동자 죽이기로 생존의 위협에 처한 노동자들의 입장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불법시위’, ‘강경좌파’ 등으로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민언련은 “언론은 민주노총의 총파업 결의대회를 보도하지 않거나 조선·중앙처럼 왜곡하면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무관심과 반노동적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며 “노동권과 언론 자유를 중시하지 않는 언론이 과연 존재 가치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민언련의 논평의 제목은 “언론은 노동자와 시민, 동료 기자까지 철저하게 외면했다”였다.

▲ 중앙일보 25일자 <민주노총의 ‘적반하장’ 사과문>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은 여러 수사를 통해 비판받고 있다. ‘쉬운해고’, 박근혜 정부가 재벌에 주는 합법적 ‘살인면허’, ‘현대판 노예제도’ 등이 대표적이다.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저성과자라는 표현은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자본이 원하지 않는 사람을 표현한 것일 뿐”이라며 “그 1차적 대상은 노동조합 활동 간부들이 될 것이며 거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본 중심의 수익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활용될 것이다. 그 결과는 산업 현장의 민주화는 원천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도 우려했다. 이 산업현장에는 언론사들도 포함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도입된 ‘타임오프제’로 인해 신문사들을 중심으로 노조전임자가 크게 줄었던 경험을 되새겨야 한다. 노동자들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들의 힘은 계속 빠져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으로 이러한 현상이 절정에 달할 전망이지만 기자·PD들은 눈을 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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