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군인체육대회 개최도시인 경상북도 문경시가 선보인 캐러밴 선수촌이 화제다.

오는 10월 2일부터 11일까지 경북 문경시 등 8개 시군에서 세계 1200여 개국 7300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하는 2015경북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는 인구 7만 규모의 시가 치르는 행사 치고는 매우 큰 규모의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세계군인체육대회는 대부분 프로화 되어 있는 일반 스포츠 이벤트들에 비해 순수한 아마추어 스포츠 이벤트에 가까운 대회다. 하지만 아마추어대회라고 해서 돈이 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캐러밴 선수촌은 문경시가 스스로 가진 한계를 뚜렷하게 인식하고 내놓은 아이디어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돋보인다.

▲ 24일 오후 경북 문경에서 '2015 경북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선수촌 개촌식이 열렸다. 참가 선수들은 이동식 주택(캐러밴)에 머물게 된다. Ⓒ연합뉴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대형 국제대회를 치르는 개최도시들이 안게 되는 문제 가운데 가장 주된 부분은 역시 경기장, 선수촌과 같은 대회 관련 시설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문제다.

우리나의 경우도 2002 월드컵을 치렀던 전국 10개 도시의 경기장들이 대부분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작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치르기 위해 신축된 주경기장을 비롯한 여러 개의 경기장들은 사후 활용계획을 찾지 못해 ‘돈 먹는 하마’가 된 상황이다. 그리고 그 결과 인천시 대정에 만만치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8년에 동계올림픽을 치를 평창 역시 경기장 건설과 제반 인프라 구축 비용에 대한 재정 부담의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문경시 역시 다르지 않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문경시도 다른 대회처럼 아파트를 지어 선수촌으로 쓴 뒤 분양하는 방식을 검토했다. 검토해 보니 800억 원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파악이 됐다.

하지만 인구 7만의 소도시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고 선뜻 나서는 건설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회 후 일반에 분양을 한다고 해도 미분양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었다.

선수촌 건설비를 줄이기 위해 컨테이너를 활용하는 방식도 고려됐지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없던 일이 됐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캐러밴 선수촌이었다. 듣기에는 컨테이너와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막상 선보인 캐러밴 선수촌의 모습은 상당히 훌륭한 것이었다.

전례가 없었던 캐러밴 선수촌에 대한 국제군인체육연맹(CISM)의 반응도 걱정이 됐던 부분이었지만, 연맹의 반응은 예상 외로 호의적이었다. 선수 한 명에게 필요한 최소 면적만 확보하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그 결과 내부에 1인용 침대 4개와 화장실·샤워실에 냉난방 시설을 완비한 길이 12m에 36㎡(약 11평)짜리 4인1실 캐러밴이 탄생했다.

지난 4월 공모 결과 대당 제작비 2650만원에 ㈜두성특장차가 제작을 맡게 됐다. 조건은 문경시가 대회 기간 중 캐러밴 한 대당 1000만원에 캐러밴을 임대하는 조건이었다. 나머지 제작비는 행사 이후 일반에 분양해 충당하도록 했다.

캐러밴 선수촌을 실사한 연맹은 “매우 훌륭하다”며 합격 판정을 내렸다.

▲ 24일 오후 경북 문경에서 열린 '2015 경북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선수촌 개촌식에 참여한 문경시민이 선수촌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캐러밴의 일반 예약 판매도 3주 만에 모두 매진됐다. 국내에 캠핑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캐러밴을 활용한 캠핑, 즉 캐러배닝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캐러밴 선수촌 조성 계획은 대박을 치는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문경시가 선수촌 조성에 들인 예산은 캐러밴 350대 임차료로 캐러밴 제자업체에 지불할 35억 원이 전부다.

물론 캐러밴의 일반 판매 과정에서 우려도 없지 않았다.

문경시와 해당 업체에 따르면 이 캐러밴의 내부에 설치되는 침대와 냉난방 시설 등 대부분은 대회 후 조직위로 반납된다. 껍데기만 남는 중고 캐러밴을 1천650만원에 판매하는 셈이었다.

특히 계약자들 상당수는 캐러밴을 야외 캠핑 등을 위해 적당한 장소에 놓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들 캐러밴이 이동과 설치에 만만치 않은 제약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었다. 바퀴가 없어 차량이 아닌 특수장비로 이동해야 하는 캐러밴은 주거용 시설로 분류돼 건축법상 농지 및 산지의 경우, 전용허가를 받아야 한다. 전기 및 우`오수 설비도 반드시 갖춰야 설치허가를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캐러밴을 구입한 사람들에게는 구입 후 비용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이를 조기에 일반에 판매한 문경시는 캐러밴에 대한 자세한 정보 없이 제작업체의 수익을 확보해 주는 데 힘을 쏟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모든 우려나 비판들은 근거가 희박한 장밋빛 경제효과에 대한 거짓 선전에 기초한 대규모 아파트 건설에 따른 미분양 사태 등의 부작용에 비한다면 충분히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고 대비할 수 있는 우려와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문경시는 800억 원이 들어갈 선수촌 건설 문제를 단돈 35억 원에 해결했다. 기본적으로 문경시민의 혈세 765억 원을 절약한 상황에서 대회를 시작하는 셈이다. 이 사실 하나로 문경시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 24일 오후 경북 문경에서 열린 '2015 경북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선수촌 개촌식에서 대회기와 연맹기를 게양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문경시의 비용절감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경북 영천(2050명 수용)에 설치된 선수촌은 육군 3사관학교의 숙소인 4층짜리 아파트로 선수단을 맞이하기 위해 내부를 보수했다. 충북 괴산(4300명 수용)의 선수촌은 학생군사학교의 6개 생도관 시설을 그대로 사용한다. 선수촌 내부 집기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과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 사용했던 중고품과 재고품으로 충당했다.

대회 경기장도 대부분 기존 시설을 증축하거나 재활용했다. 국내에 없던 육군5종 장애물 경기장(영천의 3사관학교 교내)이 신설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회 기준에 맞추기 위해 1만 석이던 문경종합경기장 관람석을 1만2000석으로 증축하는 한편, 다른 경기장들은 시설 일부를 보수하는 것으로 준비를 마쳤다. 신설한 육군5종 장애물 경기장은 향후 일반 생도들의 훈련장으로 활용된다.

적어도 대회를 치르기 위해 운영할 시설적 준비 상황만을 놓고 본다면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는 앞으로 각종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하거나 유치할 계획인 지방자치단체들에게 하나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문경시의 이와 같은 노력들이 의미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대회의 모양새에 집착해 지자체장의 체면을 챙기기보다는 대회에 투입되는 예산이 기본적으로 시민의 혈세이며, 대회 이후 시민의 삶의 질이 중요하다는 고민이 이끌어낸 결과라는 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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