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필자는 <미디어스>를 통해 <레바툰>과 <마음의 소리>가 당시 여성에 대한 편견을 여과 없이 투과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는 글을 쓴바 있다. 물론 그 문제가 비단 두 작품만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지면 관계상 다루지 못했던 작품들이 있었다. 바로 네이버 웹툰 <뷰티풀 군바리>(설이 글, 윤성원 그림)이다. <뷰티풀 군바리>는 인터넷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주장인 ‘여성 징병제’가 실현된 가상의 한국을 무대로 여성인 주인공의 훈련소와 의무경찰(의경) 생활은 그리는 작품이다. 얼핏 보기엔 이전부터 간간히 연재되었던 군대 소재의 만화와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작품은 연재 초기부터 논란의 대상이 됐다. 흔히 페미니즘 운동을 비판하는 소재로 쓰이는 여성 징병제 주장을 작중에서 실현시킨 것뿐만 아니라, 군대에서 벌어지는 가혹 행위 같은 병영 부조리를 미화했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 웹툰 '뷰티풀 군바리'의 시작
하지만 작품이 계속 연재되고 스토리 작가가 실제로 겪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의경 내부의 가혹 행위가 실감나게 묘사되면서 어느 순간 작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보다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늘어났었다. 만화 리뷰, 비평 웹진인 <에이코믹스>는 8월 10일 자사의 일일 리뷰 코너 ‘데일리 베스트’에서 <뷰티풀 군바리>를 1위로 선정하며 조직 내에서 개인의 갈등과 트라우마를 보여준다는 이유로 호평을 내리기도 했다. 반면, <에이코믹스>의 단평이 게재되기 약 한 달 전인 7월 13일, 만화 비평 웹진 <크리틱엠>에서 <데미지 오버 타임>의 선우훈 작가는 군대 내부의 폭력을 그리고는 있으나 추억 이상을 넘지 못하며, 오히려 그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의 구조가 여지없이 드러난다고 비판했다.

조금씩 쌓여가던 논란, ‘배빵’ 표현을 계기로 폭발하다

▲ 최근 게재된 <뷰티풀 군바리>의 최신 화는 선임이 주인공에게 가한 복부 가격 장면 묘사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렇게 옹호와 비판이 서로 얽히고설킨 가운데 최근 <뷰티풀 군바리>는 뜨거운 논쟁의 대상에 오르게 됐다. 문제가 된 부분은 지난 9월 20일에 게재된 31화 ‘집합 2’의 표현이다. 작중에서 주인공이 속한 의경 소대는 투입된 현장에서 자잘한 실수나 선임들이 보기에 거슬리는 행동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경찰서로 복귀한 뒤 경찰버스 뒤편으로 불려나가 선임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선임에게 소위 ‘배빵’이라는 은어로 불리는 복부를 가격하는 구타를 당한다. 그리고 이 마지막 장면은 그동안 쌓여왔던 작품에 대한 논란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해당 장면을 비판하는 이들은 ‘배빵’이 일본의 성인 대상 작품에서 가학적인 성 묘사를 나타내는 장면 중 하나이며, 또한 해당 장면을 그리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넋을 잃어 눈이 풀리고 눈물과 침을 줄줄 흘리는 묘사 역시 속칭 ‘아헤가오’(アヘ顔, 입을 ‘아’하고 벌리고 혀를 ‘헤’하고 벌린 얼굴이라는 뜻으로 성적인 쾌감을 느끼는 얼굴을 뜻하는 일본의 은어)를 나타내는 표현이므로 명백하게 성적 대상화가 담겨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편, 이러한 비판에 반론을 제기하며 작품을 옹호하는 이들은 최근 들어 작품이 군대 내부의 부조리를 지속적으로 그리고 있었으며 이번 화의 표현 역시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주장한다.

논란이 불거진 지 곧 일주일이 되지만 만화를 그린 작가들은 물론 작품을 게재한 네이버 측에서도 문제가 된 표현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는 상황에서 논란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작품이 게재되고 나서 하루가 지난 21일에는 누군가 글로벌 서명 사이트 <아바즈>(Avaaz)에 <뷰티풀 군바리>의 연재 중단을 요구하는 서명을 게시했고 9월 25일 현재까지 약 4600명의 누리꾼들이 서명을 한 상황이다. 이러한 흐름에 맞서 작품을 옹호하는 이들은 작품을 비판하고 더 나아가서 연재 중단까지 요구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비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표현의 자유’ 만으로 논란을 넘어갈 수 있을까

▲ 9월 21일 <아바즈>에 올라온 <뷰티풀 군바리>의 연재 중단을 요구하는 서명에 9월 25일 현재까지 약 4600여명의 누리꾼들이 서명에 참여하였다.
물론 단순히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의 연재를 중단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다. 혐의의 유무를 논하기 이전에 표현은 분명 자유를 보장받아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무조건적으로 표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필연적으로 자신이 한 표현에 대한 책임을 질 의무를 동시에 가져온다. 즉, 표현에 대한 비판과 논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과연 <뷰티풀 군바리>의 해당 표현은 적절했을까. 분명 작품은 연재 초기보다 더 강도 높게 군대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혹 행위와 부조리를 묘사하고 있다. 특히 극중에서 주인공이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의경 생활을 시작하면서 묘사가 자세해지는데, 단순히 묘사된 가혹 행위의 현실성으로만 보자면 <뷰티풀 군바리>와 같이 의경 생활과 내부의 가혹 행위를 그려내 주목 받았던 기안84의 <노병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한 지점에서는 이전에 군대를 묘사한 만화였던 <빤빠라 선착순>이 군대 내부의 생활을 추억하면서 동시에 군대 내부에서 벌어지는 가혹 행위나 부조리마저도 추억으로 미화하는 작품들보다는 나아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장점은 작품의 또 다른 특성과 결합하며 미묘한 결과물을 낳고 만다. 바로 여성을 비롯한 실제 세계에서는 군이나 의경, 전경 외부에 있는 이들을 그리는 일관된 묘사이다.

단순히 작품의 기본 설정 중 하나가 여성 징병제인 것이 문제는 아니다. 비슷한 설정을 사용했던 윤필의 <낙오여군복귀기> 역시 이러한 설정이 근간에 있는 대표적인 만화이지만 이 작품은 여군인 주인공의 낙오 후 복귀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의 여러 단면을 전달하는 창구로써 해당 설정을 사용한다. 비록 군대에 대한 현실성을 보여주는 측면은 부족하지만 한국 사회상을 우화적으로 다루는 측면에서 여성 징병제라는 설정은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뷰티풀 군바리>의 경우, 연재 초반 1990년에 여성도 남성과 같이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한다고 법이 바뀌었다는 설정만 존재할 뿐 단순히 군대와 경찰의 사람들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표현을 바꾼 수준에서 머무르고 만다. 작중에서 여성이 군대에 간 것을 활용하는 설정은 장병들에게 지급하는 물품에 생리대 같은 여성 용품이 포함되어 있다는 설정 정도에 불과하다. 아니면 작품의 전개와 상관없이 여성의 신체 부위를 클로즈업하는 모습을 그려 논란이 되는 정도다.

▲ <뷰티풀 군바리>의 주요 설정인 여성 징병제는 단순히 성별을 바꾼 이상을 넘어가지 못한다. 오히려 군가산점의 불합리를 지적했던 사람들을 희화화하는 등 군대 외부의 사람들을 공격하며 군 내 부조리를 드러내는 부분마저 희석되고 만다
작중에 등장하는 군 내 여성의 모습 역시 단편화된 표상으로써의 여성만이 등장할 따름이다. 바로 ‘명예 남성’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남성적인 폭력이 일상화된 여성이거나 또는 성적으로 손쉽게 대상화되고 세상 물정도 몰라 고생을 겪는 여성이다. 군 밖의 여성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군 외부 여성은 이미 군대를 경험했거나, 아직 군대를 경험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분류 이상을 넘어가지 못한다.

대신 군 장병을 ‘공격’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들에겐 매우 날카로운 시선을 보낸다. 군가산점 제도의 불합리를 지적했던 여성들은 실제 그녀들이 겪었던 것처럼 작중에서도 손쉽게 조롱을 받는 존재로 그려지며, 시위대들 역시 경찰을 공격한다는 이유로 나쁘거나 철이 없는 존재로 이미지화된다. 이렇게 여성 징병제라는 설정이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하거나 눈요기 거리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게 그려지는 마당에서 병영 부조리에 대한 현실적인 표현은 제대로 섞이지 못한 채 붕 뜨고 만다. 도리어 한국 사회에서 군대가 위치한 구조를 지적한 이들을 공격하며 병영 부조리에 대한 묘사는 부조리에 대한 심각성을 이끌어내기 보다는 자신들이 이만큼이나 당해왔다는 것을 강변하는 식으로 전달된다.

비슷하게 군대 내부의 부조리를 묘사했던 최규석의 <창>, 김보통의 <D.P-개의 날> 등은 해당 문제를 리얼리즘적으로 다루는 것은 물론 주제를 독자들에게 더 강하게 인식시키기 위해 서사와 표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였고, 또한 해당 문제에 철저하게 초점을 맞춰 접근하였기에 시사점 역시 낳을 수 있었다. 그러나 <뷰티풀 군바리>는 군대의 가혹 행위와 여성 징병제라는 설정, 그리고 여성에 대한 묘사가 서로 유기적으로 얽히지 못하면서 이미 한계를 안고 있었다. 아무리 31화의 표현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할 목적이 없었다고 해도 그 표현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으로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이렇게 작품에 문제가 될 부분이 이전부터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작품의 연재 중단을 요구하는 운동은 물론 작품의 표현을 지적하는 주장까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동이라 바라본다. 또한 누군가는 작품의 접근 연령을 성인 대상으로 제한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마냥 작품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옹호하는 것보다는 나은 주장이지만, 결국 이러한 주장 또한 논쟁을 우회하는 미봉책에 불과할 따름이다.

▲ 2012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온라인 만화 컨텐츠 심의에 항의하는 ‘노컷 캠페인’의 마크
<뷰티풀 군바리> 논란을 바라보는 이러한 반응들은 한편으로는 한국 만화가 놓여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분명 서브컬처를 비롯한 한국의 문화는 오랜 세월 동안 권위주의 독재 정권 아래에서 많은 핍박을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1996년까지 존재했던 사전 검열 제도는 창작자의 자유를 통제하는 악법이었고, 오랜 탄압의 경험은 많은 서브컬처 창작자와 팬들에게 상흔을 남기고 말았다. 이제 그들은 조금이라도 정부 기관이 심의나 규제를 강화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발 빠르게 적극적으로 뭉쳐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 노력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는 것에만 신경을 기울였던 탓일까. 한국의 서브컬처는 표현의 자유 이외의 사안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작품이 필연적으로 질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책임 역시 신경 쓰지 못한 사안 중 하나이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자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정작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대상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 어떠한 지점을 고려하고 유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가 벌어지지 않았다. 작품을 연재하는 플랫폼도 상황은 비슷하다.

<레진코믹스>나 <탑툰> 같이 처음부터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삼는 매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폭넓은 연령층의 독자가 방문하는 포털 사이트에도 작품의 표현에 대한 공개적인 가이드라인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규정 정도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분명 한계가 존재하는 규정이지만, 정작 그 외에는 이렇다 할 논의나 합의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2012년 아마추어 작가를 위한 공간인 ‘네이버 도전만화’에서 아동을 강간하는 묘사가 담긴 만화가 올라와 파문이 벌어진 사건처럼 이따금씩 도저히 표현의 자유로 방어하기 어려운 논란이 발생하면, 작가 개인의 문제로 치환해 이들을 비난하거나 아니면 한국 사회나 심의기관을 비난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반응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물론 표현의 자유는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자신의 표현에 대한 책임을 고민하지 않으면 결국 표현의 자유 역시 위협을 받을 수밖엔 없다.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가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혐오적 발언)에 대한 문제의식이 증가하는 가운데 2015년 한국의 만화는 이렇다 할 논의나 가이드라인에 대한 고민은커녕 강한 혐오적인 표현에도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팬도, 작가들도, 작품을 게재하는 플랫폼은 물론 만화에 대한 정책을 연구 개발하는 정부 지원기관도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뷰티풀 군바리>에 대한 연재 중단 서명에서 드러나듯 도화선은 조금씩 불타고 있다. 과연 진정으로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 많이 늦었지만, 표현의 사회적인 책임과 가이드라인에 대한 깊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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