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가 심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면 결국에는 힘이 있는 사람들을 고용해서 자신의 평판을 관리해주는 서비스를 받을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혜택을 볼 것이다. 예를 들어, 박경신 교수가 조교를 학대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왔다고 치자. 실제 피해를 당한 사람이 익명으로 그런 글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저(박경신 교수)의 평판을 보호해주겠다고 심의를 신청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내부자 고발이나 은밀하게 숨겨져 있던 사회적 비리가 드러나는 통로를 차단하게 될 것이다.…(중략)…박효종 위원장은 공인에 대해서는 제3자 심의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공인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최경환 장관의 보좌관이 공공기관에 특혜를 받아 취직했다는 글이 있다고 보자. 그렇다면 그 보좌관은 공인인가 아닌가. 제3자가 심의를 요청할 수 있으면 정치인들이 방통심의위에 어떤 압력을 넣을지 상상이 간다”_박경신 교수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큰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에 따라 ‘그 분 비판 방지법’이라고 불리었던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안이 방통심의위 전체회의를 통해 ‘입안예고’됐다. 인터넷 상의 명예훼손성 게시글에 대한 제3자 및 위원회 직권 심의가 이대로라면 조만간 현실이 될 전망이다. 방통심의위는 공인에 대해서는 법원 판결이 내려진 것에 한정해서만 제3자 심의를 열어두겠다고 설명했지만 “양심과 소신에 따라”, “속기록에 남기는 게 가장 큰 보증”이라는 등의 불명확한 주장을 반복했다.

#1. “방통심의위, 본인 의사 확인 불가능…확인된 사람 안건만 처리하면 형평성 위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 이하 방통심의위)는 24일 전체회의를 열어 명예훼손 관련 게시글에 대해 제3자 및 위원회 직권으로 심의를 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안을 입안예고 했다. 시민사회는 방통심의위가 해당 개정안에 대한 입안예고안이 보고안건에 상정되자 반발했다. 연합뉴스가 <명예훼손글 제3자 신고 허용하되 공인 배제로 ‘가닥’> 기사(▷링크)를 통해 “논란이 돼 온 제3자 신고에 따른 명예훼손글 심의를 허용하기로 가닥을 잡았다”고 보도하자 논란은 더욱 커졌다. 방통심의위는 <개정안에 반대하는 네티즌 1000명 선언>을 박효종 위원장에 전달하려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위원장실이 위치한 19층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엘리베이터 작동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전체회의에서 야당추천 장낙인 상임위원은 현행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와 관련해 “그동안 명예훼손성 글에 대한 심의를 당사자 요청으로 둔 것은 명확성과 최소규제 원칙에 근거했던 것”이라며 “게시글을 삭제하는 것은 인터넷상 시정명령이기 때문에 (정부여당측이 주장하는)상위법과의 균형 차원(을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과 박재승 전 변협회장 등을 비롯한 전국 법학교수 및 변호사들 205명은 이미 해당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관련기사 : 박재승·조국 등 법률가 205명 “방심위, 명예훼손 개정 반대”)

장낙인 상임위원은 “방통심의위는 수사권한이 없기 때문에 신고자의 소명자료에 의존해서만 결정을 해야한다”며 “그러나 업무특성상 명예훼손의 경우, 본인의사를 확인해야하는데 제3자의 민원인 경우에는 연락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그렇다고 본인 특정이 가능한 사람의 안건만 처리해준다면 그것이야말로 특정인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만일, 제3자의 심의요청에 따라 위원회가 조사를 착수하게 돼 그것이 공개되고 이슈화된다면 오히려 당사자에 대한 불이익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장낙인 심의위원은 새정치민주연합 미방위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표명에 대해 “최소한 반대하는 사람들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불식시킬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효종 위원장은 공인에 대해서는 법원 판결이 나온 경우에만 제3자 심의를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공인과 그의 가족 및 보좌관에 대한 평가에 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무겁게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사)오픈넷의 김가연 변호사는 이날 앞선 기자회견에서 “김무성 씨의 사위는 공인인가 사인인가”라고 물으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사위는 공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장인의 영향력으로 인해 검찰 수사와 사법처리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그러한 사실 자체가 공인인 김 대표를 평가할 수 있는 근거이기 때문에 제3자 심의로 삭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2. “방청객에서 (반대)의견을 드리겠다”…“나가”

이날 방통심의위 전체회의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에 반대해 방청하고 있던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방통심의위원)가 발언권을 요청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방통심의위 통신심의국 조광휘 국장과 운영지원팀 권혁성 차장 등은 박효종 위원장의 퇴장명령을 내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박경신 교수에 “나가”, “퇴장해”라고 반말과 고성을 지르며 잡아 끌어내려는 동작을 취해 소란이 벌어졌다. 이로 인한 정회 시간에도 운영지원팀 차장은 박경신 교수에 “업무방해죄로 퇴장시킬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회의 말미 조광휘 국장은 “허락을 받지 않고 (퇴장하라고)한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장낙인 심의위원의 ‘위압적으로 느꼈을 박경신 교수에 사과를 해야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박경신 교수의 행동은)여기 계신 9명에 대한 무시하는 행위였다”고 사과를 거부하기도 했다.

▲ 정회 시간에 방통심의위 직원이 박경신 교수의 퇴정 여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모습.(사진=NCCK 언론위원회)
박경신 교수는 “박효종 위원장이 약속했던 공인에 대한 적용 배체 등에 대한 재차 입장이 필요하다”면서 “위원장에게 방청객으로 하여금 발언권을 주지 말라는 규정은 없다. 논란이 된 개정안에 대해 한 자도 수정하지 않고 그에 대한 어떠한 발언도 없이 넘어가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한 일”이라고 발언기회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박효종 위원장은 “방통심의위는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질서유지 또한 매우 중요하다”며 “회의에 방해라고 판단된다면 위원회 권위를 위해 퇴정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반대’ 목소리가 차단된 뒤, 방통심의위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안에 대한 입안예고까지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정부여당 추천 함귀용 심의위원은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에 반대하는 의견 또한 일고의 가치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성하는 이유는 <정보통신망법>과의 조화 때문”이라며 그 동안의 논리를 재차 펼쳤다.

#3. “법원 판결 받았다면 ‘불법정보’…소신과 양심을 걸고 운영”, 속전속결

함귀용 심의위원은 “박효종 위원장이 얼마 전 토론회에서 (개정의 필요성을 담은)장문의 글을 잘 읽었다. 와닿는 말이 많았다”며 “정치인과 공인에 대한 부분 뿐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보호를 위한 것이라는 위원장의 깊은 통찰과 애정을 느낄 만한 이야기였다”고 칭송을 보냈다. 이어, “공인들에 대해 법적 판단 전에 심의위가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저 스스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법원 판결까지 받았다면 그것은 불법정보이다. 방통심의위는 그동안 음란, 성매매 알선과 같은 유해정보 뿐 아니라 불법정보에 대해 조치를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수수방관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반대편 진영에서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 불법정보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합리적인 의심을 통해 충분히 비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막을 것이라는 우려다.

또 다른 정부여당 추천 하남신 심의위원은 ‘공인의 범위’와 관련해 “여기 계신분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고 얼버무리면서 “박효종 위원장이 누차례 공인에 대해서는 (제3자 심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설명을 드렸다. 그보다 확실한 보증이 어디 있는가”라고 발언했다. 또 ‘공인에 대한 제3자 심의 제외’를 규정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공인이 법률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법(규정에)에 넣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여기 앉아 계신 아홉분이 소신과 양심을 걸고 운영의 묘를 살려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뜻을 속기록에 남긴다면 보다 명확한 안전장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효종 위원장 또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왔고 바람직한 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며 “심의규정 개정은 상위법과의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박효종 위원장은 “사법제도를 활용하기 어려운 분들에게 손쉽게 심의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장애인과 노인, 성행위 장면 동영상이 유포된 여성들 또한 (혜택을 볼 수 있는)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입안예고를 통과시켰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사)오픈넷,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 NCCK 언론위원회는 24일 방통심의위 전체회의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명예훼손 제3자 신고·직권 심의 개정안’ 당장 폐기하라!"고 촉구했다ⓒ미디어스
한편,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사)오픈넷, 참여연대,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시민사회는 방통심의위 전체회의에 앞서 기자회견을 통해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안을 폐기하리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김환균 위원장은 “다른 누군가가 ‘당신이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배려할 수 있다고 본다”며 “하지만 이는 지나친 배려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고 촉구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규찬 대표는 “박효종 방통심의위원장은 ‘사회적 합의’를 약속했었지만 결과적으로 사기를 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완기 공동대표는 “심의규정 개정은 권력의 도발”이라고 주장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통신심의위원회지부 김영수 지부장 또한 “개정해야한다면 현재의 피해가 무엇이고 개정으로 인해 나타날 이점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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