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할 때 (관계자에게)‘그거(<안산순례길>)는 빼고 다른 작품으로 2차(심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세월호였고, 연출가가 OOO이었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얘기가 위에서 나왔다’는 얘기였다. 몇몇 리스트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얘기도 하더라. 그 때 알았다. 리스트가 있구나…(중략)…최종심사 자리에서 <안산순례길>은 세월호와 연관돼 곤란하니 빼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의제기를 했지만 (끝까지 관철시킬 수는)없는 상황이었다. 식사자리에서 사적인 이야기가 오갔고 관계자는 ‘OOO의 작품들이 정치적이라고 위에서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네들도 중간에서 일하기가 힘들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금 지원 심사를 맡았던 L씨의 증언(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 보도자료)이다. 세월호 등 정치적 이유로 <안산순례길> 작품이 다원창작예술지원 분야에서 압력에 의해 탈락했다는 폭로였다. 문화예술기금에 대한 지원 심사가 이미 정해진 작품을 위해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이번 국감에서 이렇듯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문화기금 지원심사가 이슈가 됐다. 문예창작기금 분야 심사에서 1위를 했던 이윤택의 희곡 <꽃을 바치는 시간>과 창작산실지원 분야 또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역시 제외된 바 있다. 원로 문화예술인 30여명이 대학로에 위치한 ‘예술가의 집’ 앞에 항의를 위해 모인 까닭이다.

문화연대와 서울연극협회, 한국작가회의를 비롯해 예술에 참여하는 연극인들 30여명은 22일 오후2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예술가의 집’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화예술지원 과정·결과 공개, △파행적 사업운영의 책임자 문책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문화행정의 수장 문체부 장관의 사과 등을 촉구했다.

▲ 문화연대와 서울연극협회, 한국작가회의를 비롯해 예술에 참여하는 연극인들 30여명은 22일 오후2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예술가의 집’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줌의 권력을 위해 예술을 모욕하지 말라"고 촉구했다ⓒ미디어스
이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공기관으로서의 신뢰를 완전히 포기했다는 증거”라면서 “들통 난 게 3개의 작품일 뿐, 예술지원과정 전체에 정치적 검열이 작용했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 대통령과 그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언급, 대선 당시 반대편 후보를 지지한 예술가에 대한 배제, 심지어 세월호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하니 그 시대착오성과 후진성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꼬집었다. 또한 “다른 입장과 의견을 용인하지 않고, 예술적 풍자도 이해하지 못하며, 시대의 아픔과 함께 하려는 예술을 차단하는 기관이 예술행정을 주관하고 있는 상황은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국작가회의 정우영 사무총장은 “예술의 기본은 비판”이라며 “그 대상이 나라이든, 대통령이든, 예술가 자신이든 비판을 바탕으로 창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새로운 비판적 잣대를 권력과 정치적 검열의 잣대로 만든다면 이와 같은 시위를 광장에서 공공기관 앞에서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서울연극협회 박장열 회장 또한 “2015년은 한국연극 역사상 서울연극제의 극장폐관 및 검열사태가 일어난 참담한 해”라고 개탄했다. 그는 “연극인들이 35년 이상 일궈온 대학로의 문제는 자본이 선순환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라면서 “대학로 내 11개 극장을 아르코가 운영하면서 대학로 극장가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예술작품에 대한 검열을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연대 임정희 대표 또한 “예술적 상상력이 사회의 기초발전토대가 된다는 이 정권에서 이전보다 더한 탄압과 검열 이뤄지고 있다”고 쓴 소리를 던졌다.

현장에서 예술창작을 하고 있는 예술가들 또한 이번 사태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정희성 시인은 “정치적 기준으로 (정부에)비판적인 작품들에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참담함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오태영 작가는 “이명박 정부 들어가며 수상했지만 기다렸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들어 확실히 변하고 있다고 느낀다”며 “선배들이 투쟁해서 이제야 표현의 자유를 구가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옛날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담하다”고 개탄했다. 김태수 연출가 또한 “가슴이 미어지고 분통이 터진다. 민주와 자유의 뜻을 모르는 이들과 이 땅에 있는 것 자체가 곤혹스럽고 답답하다”고 일갈했다.

문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화행정 자체가 불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인소셜유니온 하장호 사무처장은 “문화예술기금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어떤 단체가 선정돼 지원을 받았는지 홈페이지를 통해 알 수 있었다”며 “그런데, 2015년부터 비공개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측 입장은 ‘민원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라면서 “그들이 예술창작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그들은 예술가들을 단순히 지원금을 받아가는 민원인 수준으로 본 것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한편, 기자회견 사회를 본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은 “문화예술을 관장하는 기관의 독립성을 위해 많은 이들이 싸움을 했었다. 그 결과, 10년 전 9월 29일 위원회 조직으로 출범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지만 현재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그 당시보다 더 참담한 수준”이라면서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며, 정치적 예술은 탄압받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향후, 이들은 문화예술위원회의 독립성과 관련한 토론회 등을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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