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MBN 정규직PD의 독립PD 폭행사건으로 방송사 갑을문제가 공론화됐다. MBN은 9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일단락 지으려 했으나,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와 법안 발의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는 실태조사에 나섰고,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는 권익 보호를 위한 중장기 대책을 논의 중이다. 국회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우상호 의원실을 중심으로 독립PD 등 방송사 간접고용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명 MBN법을 준비 중이다.

독립PD 대다수는 방송사에서 ‘소속 외 근로자’도 아니다. 왜냐면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웬만한 방송사에서는 ‘계약서’를 쓰지 않을뿐더러, 이들은 파일럿 한 편 제작하다 갑자기 “같이 일할 수 없게 됐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도 화를 눌러 담아야 한다. 방송사와 독립PD는 철저한 갑을관계다. 지난 17일 ‘방송사 외주제작 프리랜서 노동인권보장을 위한 제도개선TF’가 발표한 ‘2015년도 독립PD 노동인권 긴급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독립PD가 놓인 갑을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국독립PD협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꾸린 TF는 지난 8월26일부터 9월1일까지 독립PD협회 정회원 281명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중 176명(2문항만 응답한 1명 제외)이 응답했다.

결과를 보자. ‘소속회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한 173명 중 82명(47.4%)은 ‘없다’고 답했다. 175명 중 83명은 ‘구두계약’을 맺으며 일하고, ‘계약이 없다’는 응답자 또한 51명이나 됐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정한 표준계약서에 대한 실효성을 묻는 질문에는 174명 중 단 3명만이 실효성이 있다고 답했다. 정부가 자율규제 방안으로 내놓은 표준계약서가 현장에서는 전혀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절반 정도가 소속된 회사가 있는데도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 직장가입자는 10%를 갓 넘기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제작환경은 열악하다. 독립PD 셋 중 둘 이상이 체불을 경험했고, 제작이 중단된 경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방송사와 제작사 관리자 및 직원에게 욕설을 들었다는 독립PD는 무려 84.6%(123명 중 104명)에 이르고, 61%(100명 중 61명)는 욕설을 들었다고 답했다. 성희롱 성추행을 포함해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14명(87명 중 16.1%),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밝힌 응답자도 17명(96명 중 17.7%)나 됐다.

독립PD협회와 새정치민주연합이 국정감사에 독립PD 문제를 올리고 가칭 MBN법을 발의하기로 나선 것도 이 같은 문제 때문이다. MBN법은 갑인 방송사가 간접고용 제작환경과 인권실태 등을 조사하고 개선하도록 규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상호 의원실 관계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독립PD협회, 방송사, 국회가 논의 테이블을 만들기로 이야기를 했다”며 “국정감사가 끝나면 법안 내용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MBN 폭행 사태로 방송사의 갑질이 논란이 되자, 정부 또한 법제도 개선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9월부터 12월까지 석 달 동안 독립PD 등 방송사 간접고용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최성준 위원장은 10일 국정감사 자리에서 “독립PD들이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 크게 기여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방송사, 제작사와 함께 제작환경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독립PD 지위 문제를 포함한 좋은 정책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방통위에서 ‘외주제작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편성평가정책과 관계자는 22일 미디어스와 만나 “독립PD 대다수가 프리랜스 형태로 일하고 있어 법적 지위가 불투명하지만 정부, 방송사, 외주제작사, 드라마제작사로 구성된 외주정책협의체에서 중장기적인 제도개선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현재 협의체 내 사업자테이블, 정책자문테이블, 정부협의테이블 등을 통해 아이디어를 찾는 중”이라고 전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이어 “국정감사 이후 최성준 위원장에게 독립PD협회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고했고, 위원장은 ‘실질적인 방안을 찾아 보고하라’고 했다”며 “국회에서는 MBN법을 만들고, 정부는 방송사와 제작사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밖에도 방통위는 방송법 규제대상에 제작사를 포함하는 방송법 개정안(현재 국회 법사위원회 계류)이 본회의를 통과하길 기대하고 있다. 제작사가 ‘분쟁 조정 대상’이 되면 제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영상 제공=한국독립PD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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