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태평로’ 코너에 쓴 <늙는다는 건 벌이 아니다>란 제목 글에 대한 패러디입니다.

▲ 조선일보 22일자 칼럼

님, 제 편지를 보세요. 은퇴는 한참 남았는데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어느 날 임금피크제란 말이 들리더군요. 임금님 얘긴가 했습니다. 대기업은 쳐다보지도 못하는 제 얘긴 아니더군요. 저임금에 시키는 일은 다 하는 우리 아버지 얘기도 아닙디다. 대통령이 말하는 4대 개혁의 본질은 ‘세대 전쟁’에 있다고들 했습니다. 불현듯 그게 님과 나 사이의 전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와 우리 아버지 사이가 아니구요.

노사정이 합의한 노동 개혁의 첫머리에 ‘취업 규칙 변경’이란 게 있습니다. 점잖은 말로 포장돼 있지만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았습니다. 사람을 막 자르고 싶고 돈 먹는 하마인 호봉제도 없애고 싶으니 노조를 무력화하고 모든 걸 회사 마음대로 하자는 얘기더군요. 님 같은 사람의 봉급을 빼앗아 우리에게 직접 주는 것도 아니고, ‘여력이 생기면’ 일터를 만들어 준다는데, 우리가 바보입니까? 참, 조선일보사의 임금피크제는 경험하니 좋던가요? 이런 글을 쓰신 걸 보니 힘든가봅니다.

그래도 한 발짝만 더 따져봅시다. 님은 제 동생 둘과 결혼자금을 걱정하지만, 그거 다 포기한 지 오랩니다. 등록금 낼 돈 없어서 학자금 대출 받았습니다. 나중에 취업하고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취업이 안 됩니다. 고졸 신입 채용이 반짝 유행할 때, 이놈의 졸업장 없느니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은 포기했습니다. 돈도 없는 놈이 무슨 결혼입니까? 어차피 부부의 연을 맺지도 못할 거, 그냥 일베에 접속해서 여자들 욕이나 하면서 살렵니다. 임금피크제 그거 하면 저 같은 애들 중 몇 놈이나 구원받을까요? 당신들 말이 다 맞다 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외국에서는 ‘잡 셰어링’이라고 부르더군요. 우리나라는 고통 밖에 ‘셰어’하는 게 없습니다. 칼럼니스트 박권일씨는 우리나라의 경우 ‘잡 셰어링(job sharing)’이 ‘잡 스플리팅(job splitting)’으로 변질됐다고 하더군요.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일자리를 늘린다는 핑계로 정규직 신입사원의 임금을 깎고, 그 돈으로 한 번 쓰고 버리는 인턴 채용을 일반화시킨 게 이미 2009년입니다. 무슨 낯으로 또 임금피크제를 얘기합니까? 말 나온 김에 조선일보 논설위원직을 저랑 공유하는 건 어떨까요? 그래도 좋은 집에 사는 건 어려울 것 같네요. 전세대란 때문에 북쪽 모퉁이 방에 철제 계단 타고 올라가는 전세는 이제 없고, 헛간 같은 지하 단칸도 관리비 포함 한 달에 50만원은 감당해야 할 테니까요. 물론 보증금은 별도고요.

님은 없어도 열심히 일해서 살림도 차리고 손주도 안겨드릴 수 있는 세상에 살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님은 열심히 살면 뭔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이라도 갖고 살았지만 우리 앞에는 절망뿐입니다. 님은 ‘포기’가 무슨 선택쯤 되는 줄 아는데, 연애·결혼·출산을 그냥 포기하고 싶어서 포기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우리는 포기를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말장난 하지 마세요. 그러고 보면 님 같은 사람에게 배우는 건 말장난 뿐입니다.

힘은 합하고 고통은 나눠야겠지요. 저도 압니다. 그러나 젋은 사람들을 건방지게 눈만 높아서 힘든 일은 하지 않는 게으른 세대라고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습니다. 젊음이 결코 상이 되지 못하듯 늙음도 결코 벌이 아닙니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요. 평생 열심히 산 우리 아버지들이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님처럼 문제가 뭔지 알면서 모른척하고 자기 살 길 찾아 이리저리 붓을 구부리는 거야말로 천벌 받을 일입니다. 지금 노동시장이 왜곡돼 있는 건 님 세대의 잘못이 아니라, 그냥 님 같은 사람들 잘못입니다. 조선일보 다니면서 나름 ‘오피니언 리더’입네 하며 갑질하기 바쁜, 언제 나도 기득권에 잘 보여서 청와대로 국회로 진출해볼까 배부른 고민하느라 머리가 빠지는 님 같은 사람들이 이런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징징대지 마십시오. 무거운 것도 잘 들고 뜀뛰기도 오래 하고 밤도 잘 샌다면서 왜 솔선수범을 하지 않습니까? 컴퓨터의 작동 원리니 실전 영어니 하면서 왜 안전한 곳에 틀어박혀 이런 못난 글이나 쓰고 있습니까? 인생에 새로운 도전이 필요할 땝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이라는 안락한 자리를, 이제는 버립시다. 그 자리를 불행한 빈민들에게 양보합시다. 님이 받는 연봉이면 한 세 사람 정도는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겁니다.

▲ GS25의 '진수성찬 도시락' (사진=연합뉴스 / GS25 제공)

님은 벽돌도 나르고 리어카도 끌고 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불어터진 라면을 먹을 필요는 없고요.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 그거 맛있습디다. 전자렌지에 2, 3분만 돌리면 됩니다. 종류도 많고요. CU는 좀 ‘애들 취향’이고 세븐일레븐은 질보단 양으로 승부하는 분위기니, 좀 진중한 GS25 도시락이 좋겠습니다. 스테디셀러인 ‘김혜자 진수성찬 도시락’을 선택하는 게 좋을 겁니다. 물론 그것도 자주 먹으면 지겨우니 날마다 다른 메뉴에 도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옛날 차명진 전 의원 얘길 빌자면 황제와 같은 삶이 되겠지요.

거듭 말하지만 “우리에게 양보하라면 양보하겠다”고 하지 말고 “내가 양보하겠다”고 하십시오. 윗세대들의 희생이 아니라 님처럼 부유한 분들의 양보가 필요합니다. 세금도 제때 좀 잘 내시고 주변 분들에게도 없는 사람들 등쳐먹지 말고 착하게 살라고 전해주십시오. 우리를 죄인이나 짐짝 취급 하면 섭섭합니다. 정말 화산처럼 분노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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