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9월12일자 1면

조선일보가 지난 12일부터 연일 지면을 통해 ‘홈쇼핑 채널 연번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조선일보 주장은 ‘20번대 이하에만 홈쇼핑 채널이 7~8개나 있고, 홈쇼핑이 채널 사이에 끼어 있어 유료방송가입자의 시청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 10여개에 달하는 홈쇼핑 채널을 한데 묶는 연번제를 도입해야 한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채널 연번제는 유료방송사업자와 홈쇼핑채널사업자가 모두 반대하는 정책이라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양희)가 수용할 가능성이 낮다. 이런 까닭에 조선일보의 홈쇼핑 관련 연속보도의 의도가 무엇인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일단 기사부터 직접 살펴보자. 조선일보는 지난 12일자 신문 1면에 <TV홈쇼핑 공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고, 6면에 홈쇼핑 허가와 난개발 문제를 지적하고 채널연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아예 홈쇼핑 문제를 국정감사 쟁점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14일자 신문 8면 기사 <국감 “TV홈쇼핑 공해” 질타… “채널별로 묶어야”>를 통해 새누리당 의원들이 미래창조과학부와 중소기업청 국정감사에서 홈쇼핑 문제를 집중 거론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국감 이튿날인 15일자 1면에는 <“홈쇼핑 채널끼리 묶는 방안 검토”>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TV조선 또한 14일 메인뉴스로 <우후죽순 TV 홈쇼핑 ‘공해 수준’…대안은 ‘채널 연번제’>라는 리포트를 내보내 보조를 맞췄다.

조선일보의 채널 연번제 도입 제안은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답변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14일 최양희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채널 연번제 도입 계획’을 묻는 새누리당 배덕광 의원 질의에 “(홈쇼핑으로 인한 시청권 침해와 관련해) 개선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래부 정재훈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팀장은 15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장관의 지시도 있고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폭넓게 개선방안을 고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래부가 관련 법 시행령과 고시를 통해 유료방송사업자의 채널 편성에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시청권을 확보할 수 있는 규제는 필요하다. 미래부가 창조경제와 스마트미디어 진흥을 명분으로 ‘규제 공백’을 방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각종 가상광고와 홈쇼핑 연동형 광고, 재핑광고가 생겼다. 또 7개 홈쇼핑 사업자와 10개 T커머스 사업자로 유료방송의 홈쇼핑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유료방송사업자, 홈쇼핑사업자, T커머스사업자는 물론 지상파마저도 규제 공백을 틈 타 다종다지한 기술로 ‘TV의 홈쇼핑화’를 시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역할을 해야 할 때다. 특히 변종광고에 대한 규제, 홈쇼핑채널 총량제 같은 시청권 확보 정책을 우선 논의해야 한다.

▲ 조선일보 9월14일자 8면

그러나 조선일보와 TV조선이 제안하는 연변제의 경우, 모든 유료방송사업자와 홈쇼핑사업자가 반대하고 있는 만큼 현실화되기 어렵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악어와 악어새 모두 연번제 도입을 반대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홈쇼핑 업계는 사업자가 늘어난 탓에 송출수수료가 폭등한 것은 문제고 이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나 채널 연번제 도입에는 반대한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사이에서 쫓겨나면 영업에 막대한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유료방송사업자도 마찬가지다. 케이블과 IPTV는 여전히 저가 결합상품으로 ‘가입자 뺏기’ 경쟁 중이다. 그리고 이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홈쇼핑 사업자로부터 받는 송출수수료 수입이다. 제7홈쇼핑 출범과 T커머스 사업자 등장으로 총 17개 홈쇼핑 사업자는 황금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수수료’를 지급하고, 유료방송사업자는 이 돈으로 저가경쟁을 하면서도 수백억,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수 있다. 홈쇼핑 채널을 지상파와 종편 뒤쪽으로 밀어내면 송출수수료 수입이 급감하기 때문에 유료방송사업자 또한 연번제 도입을 결사반대한다.

홈쇼핑채널이 종편 집단 뒤로 밀리면 종편은 더 좋은 번호를 차지할 수 있지만 유료방송사업자와 홈쇼핑업계가 모두 반발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미래부가 채널 연번제를 도입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제아무리 조선일보의 제안이라도 정부가 직접 나서 홈쇼핑사업자의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고, 유료방송사업자의 편성권에 개입하는 ‘초강수’를 두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 조선일보 9월15일자 1면

그렇기 때문에 조선일보와 TV조선의 부채질은 다른 방향에서 해석해볼 필요가 있다. 유료방송업계는“종편 집단에서 이탈하려는 JTBC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JTBC는 지난해부터 ‘경쟁력으로 승부해 더 좋은 채널을 차지하겠다’는 입장을 정부와 유료방송사업자에게 전달해왔다. JTBC가 TV조선과 채널A, 그리고 MBN을 따돌리고 종편 번호대에서 이탈해 지상파와 더 인접한 채널로 옮긴다면 다른 종편은 시청률과 정체성 측면에서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조선일보·TV조선은 중앙일보·JTBC에 “같이 가자”고 제안하고 있다. 채널 연번제가 도입되면 TV조선 포함 종편 집단은 앞자리로 이동할 수 있다. 실제로 연번제가 도입되지 않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논란을 일으키면 JTBC의 단독행보는 불가능해진다. 조선일보가 정부를 통해 유료방송사업자의 가장 소중한 ‘돈줄’을 압박하면 유료방송사업자가 JTBC에 ‘우호적 정책’을 펴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이 “홈쇼핑 공해에서 시청자를 구출하자”고 나선 것은 이 전략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자사의 이해관계와 깊이 관련돼 있다. 공익적인 구호를 외쳤다고 순수하게만 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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