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옛날 경찰관이 되려던 꿈을 잊지 못한 나머지 생업을 이어가기보다는 경찰서를 기웃거리며 수사관에게 감 놓아라 배놓아라 하며 ‘추리 코스프레’를 해댄다면 당신은 이 남자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돈키호테처럼 보이는가, 아니면 먹고 사는 일이 절박하지 않아 형사 코스프레를 해대는 한심한 남자로밖에 보이지 않는가. 이 남자가 성동일과 콤비를 이루는 만화방 주인 강대만(권상우 분)이다.
일반인이 경찰서에서 형사 코스프레를 해댄다는 발상 자체는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라는 걸 잊지는 마시길. 강대만처럼 훈수 놓기 바쁘다가는 공무집행 방해죄로 바로 처벌받기 쉬우니 말이다. 그런데 강대만이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서 형사인 ‘척’하면 강대만 개인에게 국한되는 일이겠지만, 만일 그가 가정사는 등한시 한 채 형사 코스프레를 해댄다면 그건 문제가 심각해진다.
한데 영화는 강대만의 아내를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정머리 없는 아내’로 보이기 쉽게 묘사한다. 강대만이 진범을 찾는 동안, 강대만의 아내는 강대만이 부재한 만화방 운영도 신경 써야 하지만 아기도 키워야 하고 생활비도 마련하고 가사도 돌봐야 한다. 집안일에 불성실한 강대만을 탓하는 강대만의 아내를 볼 때 관객은 강대만의 속내를 모르고 강대만을 들볶아대는 몰인정한 아내로 보기 쉽다는 취약점이 영화 안에 내재되어 있다.
원인 제공은 엄연히 남편이 했음에도, 남편 쥐 잡듯 들볶는 ‘한국판 소크라테스의 아내’처럼 서영희를 묘사한다는 점이 이 영화의 문제점이다. 서영희가 남편에게 큰 소리 치기 이전에 큰 소리를 내게 만든 권상우에 대한 문제 제기는, 친구를 위해 아내와 가사를 잠시 소홀히 해야만 했다는 대의명분에 의해 잠식되기 쉽다는 이야기다. 원인보다는 결과론적으로 여자를 탓하기 쉽게 만든 게 ‘탐정: 더 비기닝’의 취약점이다.
아내를 화나게 만든 권상우의 원인 제공은 뒤로 한 채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서영희를 묘사하는 것은 문제다. 자칫 여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들 법한 ‘역하지각’이 영화 안에 도사린다는 말이다. 웃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에게 머리 쓰며 추리할 것을 종용하는 영화의 태도는 더 큰 문제다. 살기 위해 일상에서 머리 쓰는 것도 힘든데 추석 명절 영화를 보면서까지 머리 쓰라고 종용하는 건 관객에 대한 실례가 아닐 수 없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