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저녁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명진)는 지상파방송심의팀의 오락성 토크프로그램 ‘막말 방송’ 중점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0월13일부터 2주간 지상파3사 KBS <해피투게더3>, <신동엽 신봉선의 샴페인>, <상상플러스2>와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명랑히어로>, <황금어장>,SBS <야심만만2-예능선수촌> 등 7개 프로그램이 그 대상이었다.

그 결과 MBC <황금어장>이 매회당 평균 100회 이상의 반말, 비속어 등을 사용하여 ‘주의’ 조치를 받았고, 나머지 6개 프로그램은 ‘권고’ 조치를 받았다. ‘주의·경고·사과’는 법정 조치에 해당되어 방송평가에서 각각 -1점·-2점·-4점을 받고, 행정지도 성격의 ‘권고’ 조치는 감점이 없다.

▲ 개그맨 김구라씨 ⓒ김구라 공식 BLOG 구/라/로/그
그런데 진행자별로 프로그램 1회당 평균 위반현황이 눈에 띈다. 해당 기간동안 개그맨 김구라씨가 회당 48.3회 위반으로 1위를, 가수 윤종신씨는 회당 26.1회 위반으로 2위, 가수 전진씨는 예능선수촌 출연에서 회당 19회로 3위를 차지했다. 개그맨 김제동씨는 0회, 유재석씨는 1회 위반이란다.

결국 방통심의위가 발표한 보도자료는 많은 언론들에 의해 ‘김구라 막말 방송 1위’ 등의 제목으로 널리 기사화됐다.

그런데 대체 이 횟수는 어떻게 체크한 것일까. ‘막말’이라면, 비속어 한 마디? 혹은 금지 단어가 있는 것인지. 방통심의위 지상파방송심의팀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초점은 반말 쪽에 맞췄고 문장 단위로 카운트했다”면서 “자연스러운 양념 정도로 쓰는 반말 문장은 제외했다”고 답했다. 그러니까 김구라씨의 경우는 MBC <황금어장>, <명랑히어로> 등에 2주간 출연하면서 프로그램 1회당 48.3번의 ‘자연스럽지 않은 반말 문장’을 사용한 셈이다. ‘자연스러운 반말은 제외’라는 얘긴데, 상당히 난해한 기준이다.

방통심의위는 방송심의규정에 의거해 방송사에 대해서만 제재할 수 있다. 따라서 진행자는 제재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진행자별 위반횟수와 순위를 공개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에 대해 지상파방송심의팀 관계자는 “언론들은 순위를 좋아한다”면서 “잘하는 사람도 발표하고 하다 보면, 방송사가 진행자를 선택할 때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며 “김제동, 유재석은 반말 안 써도 김구라, 윤종신보다 인기가 떨어지느냐, 영향력이 떨어지느냐. 그렇게 안 하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구라는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좋은데, 지상파에서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면서 “예를 들어 김구라씨 같은 경우는 본명도 아닌 예명으로 일본식 용어 ‘구라’를 쓰는데, 예명 자체가 많이 회자되었고 이제는 본명을 써도 사람들이 알 것 같으니 본명을 썼으면 한다”는 사견(?)도 덧붙였다.

김구라씨는 최근 또다른 평가에서도 1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인터넷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www.dcinside.com)는 지난달 18일부터 25일까지 ‘활발한 방송 활동 이후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바뀐 연예인은?’이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김구라씨가 총 1526표 중 405표(26.5%)로 1위를 차지했다. 인터넷방송에서 독설 개그로 인기를 얻은 김구라씨는 지상파 진출 이후 오히려 솔직한 화법과 대담함으로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호감형 독설가’로 자리를 굳혔다는 이유다. 이 조사의 2위는 역시 독설 개그로 유명한 ‘왕비호 윤형빈’이다.

▲ 서울 목동 방통심의위 ⓒ미디어스
‘바른말 고운말 김현동씨(김구라씨의 본명)’를 권하는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막말로 대표되는 ‘독설 개그’ 트랜드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그는 “중복체크될 수도 있고, 디씨인사이드의 설문 결과는 신뢰하기 어렵다”면서 “그 조사는 인터넷을 주로 사용하는 젊은 층에 한정되어 있지만, 지상파는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이어 “ 독설 개그는 트랜드라기보다는 구 방송위 시절 심의와 제재가 느슨한 틈을 타서 확산된 것이라 본다”면서 “방송사 쪽에 ‘모든 걸 다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고 여러번 얘기했고, 자연스러운 것까지 문제삼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뿔싸! 이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한 나라의 문화 현상을, 한 기관의 ‘심의’와 이에 따른 제재, 나아가 언론 입맛에 맞는 보도자료로 통제해, 그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독설 개그맨’ 김구라씨는 어떤 생각일까. 이번 방통심의위의 ‘막말 방송’ 심의 결과에 대해 묻자, 그는 말을 아끼면서 “바른말 사용하면서 웃기면 좋겠지만 내가 맡은 캐릭터와 역할이 그렇지 않다”며 “앞으로의 방송활동에서 나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는 ‘지상파 진출 제도권 연예인의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그동안 ‘일단 쓰고 보는’ 기자들에게 너무 당한 탓일까. 김구라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뜸 “기자들 질문에 답하면 늘 손해보는 기분”이라면서 기자에게 ‘객관적 보도’ 등 훈계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방통심의위의 발표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는 한사코 말을 아꼈다.

요즘 예전에 독설을 날렸던 이들에게 사과하러 다니느라 바쁘다는 김구라씨에게 ‘손해보지 않을 만한 좋은 정보’ 하나 알려드려야겠다. 방통심의위는 최근 오락성 토크프로그램에서 진행자와 출연자들의 반말과 비속어 남용이 지상파방송에서 용인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고,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러한 행위에 대해 향후에도 지속적인 중점심의를 실시해 바로잡아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앞으로 김구라씨는 되도록 ‘존댓말’을 쓰거나, 아니면 ‘자연스러운 반말’로 독설개그 하는 방법을 연구해보셔야 할 것 같다. 어려운 주문이긴 하지만, 김구라씨는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방통심의위 관계자도 인정하지 않았던가. “김구라는 아이디어가 반짝인다”고. 그리고 특히 ‘검은색 정장’은 방통심의위가 ‘사과 방송’을 명령하는 ‘위험 의상’이므로 절대 금물라는 점,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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