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장의 포화 때문이라도 뮤지컬 장르의 다변화가 필요한 게 요즘 한국 뮤지컬계다. 어지간한 뮤지컬은 한국 무대에 올라왔고 그만큼 뮤지컬 관객의 눈도 높아졌지만, 몇 년 전부터는 해외에서 B급으로 취급되는 뮤지컬이 마치 A급인 양 과대 포장되어 한국으로 들어오는 부작용도 있었다.

하지만 부작용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동안 한국 뮤지컬계는 장르의 다변화도 꾀했다. 소재에 있어 뮤지컬에 적합하리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질적인 장르를 성공적으로 뮤지컬에 이식한 ‘셜록홈즈’를 비롯하여, 배우가 직접 악기를 다루는 액팅 뮤지컬 ‘모비딕’, 실험성 짙은 ‘더 데빌’ 등 다양한 소재와 장르로 외연을 확장해온 것도 사실이다.

오늘 소개하는 ‘인 더 하이츠’도 기존 클래시컬한 뮤지컬과는 다른 음악성을 추구하는, 음악 장르의 다변화를 꾀한 뮤지컬이다. 랩과 힙합, 레게 스타일의 넘버가 기존에 우리가 들어온 클래시컬한 넘버와는 차별화되며 젊은 관객의 귓가를 흥겹게 만든다. 음악적인 장르에 있어 새로운 장르로 관객의 청취적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이야기다.

▲ 뮤지컬 ‘인 더 하이츠’ 서경수-루나, 성규-루나, 첸-김보경 ⓒSM C&C
제작사가 어딘지를 모르고 뮤지컬을 찾으면 <인 더 하이츠>는 마치 엠뮤지컬이 만든 뮤지컬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온다. 엠뮤지컬은 아이돌 캐스팅으로 유명한 뮤지컬 제작사다. 지난해 <싱잉 인 더 레인>으로 혹독한 데뷔 신고식을 치른 SM C&C는 작년의 패배를 의식해서인지 엑소 첸을 비롯하여 샤이니 키, 복면가왕에서 유명세를 탄 f(x) 루나와 인피니트의 성규와 동우라는 ‘아이돌 군단’을 포진시킨다.

그 덕에 엑소 첸의 공연은 ‘올해 최고 하늘의 별따기’ 공연으로 등극한다. 사실 엑소 첸이 뮤지컬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는, 뮤지컬 최고의 하늘의 별따기가 김준수의 <데스노트>인 줄로만 알았는데 <데스노트>는 양반이었다. 엑소 첸의 공연을 보려면 친구들과 지인을 총동원해서 예매 시간에 ‘광클릭’을 해도 백이면 구십구가 예매에 실패하는, 올해 ‘하늘의 별따기 왕중왕’ 뮤지컬이 되었으니 말이다.

아이돌이 포진해 있으니 <인 더 하이츠>는 아이돌 팬을 위한 뮤지컬로 등극하게 된다. 그럼에도 아이돌로는 극복할 수 없는 ‘서사의 한계’가 도사리고 있다. 뮤지컬에서 넘버의 중독성이나 배우의 연기도 중요하지만 서사의 논리성, 개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동안 수많은 창작뮤지컬이 새롭게 나왔지만 재연이 힘들었던 게 무엇 때문이겠는가. 바로 서사의 논리성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 뮤지컬 ‘인 더 하이츠’ 장동우-오소연, 정원영-제이민, 키-제이민 ⓒSM C&C
<인 더 하이츠> 1막 후반부에서 엑소 첸 혹은 인피니트 성규가 연기하는 베니라는 캐릭터는 실업자로 전락한다. 베니의 고용주가 딸 니나의 학비를 위해 회사를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매각할 것을 결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베니는 니나를 거부하는 게 옳다. 베니는 클럽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니나를 거부한다. 그 전에는 호감을 갖고 있던 이성이라고 해도, 당시 베니의 감정선으로 보면 니나는 엄연히 자신을 해고한 고용주의 딸이기에 니나를 멀리하는 베니의 심정이 십분 이해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베니는 니나와 사랑을 증명하는 키스를 나눈다. 문제는 뮤지컬에서 베니가 니나를 거부했다가 사랑의 감정으로 이어지는 브릿지, 연결고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홀린 마냥 베니는 자신이 해고당했다는 억울함보다는 러브홀릭으로 서사의 논리성을 훌쩍 뛰어넘는다.

니나에 대한 사랑의 감정선을 풍부하게 살리기 위함이었다면 베니의 억울함이 사랑으로 바뀌는 논리적인 연결고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1막 마지막의 전개는 주인공과 앙상블의 화려한 흥겨움 뒤에 이어져야 했을 논리적 연결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2막에서 성규는 우스나비와의 댄스 배틀에서 털기춤으로 인피니트 팬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뮤지컬의 이러한 논리적 결여로 인한 아쉬움은 상쇄되지 않는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