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1에서 이어집니다.

- 드라마 이후 거리에서 사람들이 배해선 씨를 알아보는가?

“유심히 저를 보기는 하는데 ‘설마...’하는 반응이다. 평소에는 잘 웃는 스타일이다. 싸늘한 드라마 속 이미지와는 달라서 대놓고 ‘황 간호사 맞죠?’하는 분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알아보는 분들이 있다.

머리를 풀면 저를 못 알아본다. 그런데 공연 연습을 위해서는 머리를 묶을 때가 많다. 머리를 묶고 다니면 ‘야, (황 간호사가) 맞는 거 같아’하는 반응이 나온다. 공연을 위해 경주 불국사로 내려간 적이 있다. 불국사에는 단체 관광객이 많다. 그때 저를 알아보시는 분도 많았다.”

- 20대와 30대, 40대를 관통하며 십 년 단위로 연기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었나?

“젊을 때에는 스스로를 치열하게 몰아붙였다. 저 자신은 몰랐는데 완벽주의자처럼 연기했다고 주변 사람들이 그러더라. 저 자신이 한창 부족하다는 걸 아니까 무대에서 절대로 실수하면 안 되고, 연습할 때에도 완벽해야 하고, 주변 사람을 만날 때에도 완벽하려고 노력하는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하려고 노력했다.”

▲ 배우 배해선 ⓒ박정환
-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추구한 나이대가 이십 대였나?

“삼십 대 초반까지 그랬다. 이십 대에는 부모님이, 특히 아버지가 배우를 하는 걸 무척 반대했다.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잠자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게 보냈다. 연기를 반대하는 아버지 몰래 집에 들어가 도둑잠을 자며, 아버지가 일어나기 전에 깨서 도망 나오다시피 하며 연기했다.

당시에는 연기 외의 다른 직업을 바꾸고 싶어도 겁이 났다. 거꾸러져서 못할 때까지 연기를 해보자는 신념으로 독기를 품고 연기했다. 다른 배우들은 저보다 재능이 많아 보이는 반면에, 저는 연기에 대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연기한 것도 있다.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서 남보다 덜 자고, 연습장에 일찍 나와서 늦게 들어갔다.

연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연기에 몰두하고 노력한 점도 있다. 만약 연습실에서 음 하나, 대사 하나가 풀리지 않으면 집에 가서 잠을 줄여가며 몇 천 번을 연습했다. 피곤하지만 지치는 줄 몰랐다. 절박했고 제가 하는 연기가 너무 좋았다. 남들과 똑같이 하면서 연기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생각하다, 그러면 안 된다고 저를 몰아붙이며 지낸 게 이십 대에서 삼십 대 초반까지다. 마지막 순간에 무대에서 쓰러져 하늘나라로 가고 싶었던 게 제 꿈이었다.

연기의 정상을 향해 달린 게 아니라, 저 자신이 달릴 수 있는 연기라는 평지의 끝까지 달리고 싶었던 거다. 열심히 연기하다 보니 좋은 작품이란 기회가 찾아오고, 연기의 전환점이 될 때마다 신시컴퍼니 박명성, 돌꽃컴퍼니 윤석화, 에이콤인터내셔널 윤호진, 박정자 선생님 등 너무 좋은 분들을 만났다.

뮤지컬 배우로 각인될 수 있는 시기를 선물해주신 분들이다. <맘마미아>를 통해 사랑받고 <아이다>를 통해 기억에 남는 배우가 될 수 있었다. 사실 뮤지컬로 데뷔한 게 아니다. 연극으로 무대 데뷔를 했다. 연극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을 때 연극을 할 수 있었다는 것도 복이다.”

▲ 배우 배해선 ⓒ박정환
- 연기 전환점을 삼십 대 초반으로 구분했다면, 삼십 대 중반부터는 다른 연기 철학을 가졌다는 이야기인데.

“삼십 대 초반까지는 주변 사람들이 ‘제발 쉬어라’라고 권유할 정도였다. 하루도 쉬지 않았고, 심지어는 연습실에서 다른 배우들이 쉬는 시간에도 계속 연습했으니까. ‘지치는 게 뭐야?’ 할 정도로 저를 지나치게 밀어붙였다.

그러다가 삼십 대 초반을 넘기면서 ‘연기라는 꿈을 충분히 누려왔지만 내가 갖고 있는 카드가 내 카드가 아니라 다른 카드가 내 카드면 어떡할래?’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십 대까지만 해도 내가 가져야 할 카드가 연기가 아니라 다른 카드라고 한다면, 제 인생이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 것 같다.

이십 대에는 일 년 계획과 5년 계획, 십 년 계획 등 앞으로 해나갈 일들을 빼곡하게 계획하고 살아왔다면 삼십 대 초반을 넘어서서부터는 빼곡한 계획과 타이트한 연습에서 벗어나서 저 자신을 많이 풀어주었다. 삼십 대 중반에서 지금까지는 제 인생도 재미있지만 다른 사람의 인생도 재미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이 제 눈에 보이기 시작해서 가능했던 변화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