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간호사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 겁도 나고, 자신도 없었다” 이 말을 한 이가 다른 배우도 아닌, <용팔이>에서 ‘신 스틸러’로 실시간 검색어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배해선이라고 하면 믿겠는가? 대중에게는 낯선 얼굴일지 모르지만, 1995년부터 20년 동안 뮤지컬과 연극을 넘나들며 활동한 ‘뮤지컬계 뮤즈’가 바로 배해선. 무대 경력이 20년이나 됨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없었다’는 멘트는 지나친 겸손이 아닌가 해서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

무대에서 활동하던 배우가 TV에서 신 스틸러로 단번에 주목받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사례에 속한다. 지금은 TV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배우도 데뷔 초창기 때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배우들이 수두룩하기에 그렇다.

배해선은 달랐다. 나오자마자 신데렐라로 등극한 아주 이례적인 배우라서 그렇다. 하지만 그가 실시간 검색어로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하기까지에는, 이십 대 당시 하루에 잠을 두세 시간 자며 연기에 몰입한 연기 경력 이십 년의 내공이 뒷받침된 것이라는 걸, 이번 인터뷰 두 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배우 배해선 ⓒ박정환
- 제작진이 황 간호사 역을 물색할 때, 왜 낯익은 배우가 아닌 새로운 얼굴의 배우를 찾으려고 했을까?

“제작진 중 한 분이 제가 출연한 연극 <그을린 사랑>을 보았다고 한다. 제가 하는 연기를 보고는 ‘저 배우를 나중에 자신이 하는 작품에서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배역이 생기면 제안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용팔이> 배우를 캐스팅할 때 황 간호사 배역을 누구에게 맡기면 좋을까 하고 고민해 보니, 잠깐밖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극의 분위기를 잡아줄 줄 아는 배우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한다. 많은 여배우가 황 간호사 역을 탐냈다고 하더라. 무대에서 활동한 배우 중 브라운관이나 영화에 나오지 않은 신선한 배우를 물색하던 중에 제 이름이 거론되었다.”

- 황 간호사가 센 역할이라 제의가 들어왔을 때 고사할 생각은 없었는가.

“처음에는 황 간호사 배역이 그렇게까지 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황 간호사가 센세이션을 일으킬 줄 알았다면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을 때 더 많이 망설였을 것이다. 황 간호사가 사이코패스라는 것, 가늠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수위가 셀 줄은 몰랐다.(웃음)

기존 했던 연기를 드라마에서 하면 좋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촬영했다. 하지만 황 간호사 역할을 연기하는 걸 ‘기회’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친구는 물론 가족에게조차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촬영했다. 드라마에서 연기하는 건 처음이라 주위 사람들이 제가 <용팔이>에 출연한다는 걸 모르고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황 간호사라는 캐릭터의 밀도를 많이 살려주신 것 같다.”

- 수백 번 인터뷰를 진행해보았지만, 드라마에 첫 출연했을 때 뮤지컬 배우가 이토록 강렬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배해선 씨가 유일무이하다.

▲ 배우 배해선 ⓒ박정환
“한창 촬영 중이라 2회 방송을 못 보았다. 대중의 반응이 어떤지조차 모르고 촬영하고 있었을 때 지인들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로 제 이름이 순위에 떠오르는 걸 보고 캡처해 보내주었다. ‘배해선 누구야?’ ‘황 간호사 신 스틸러’ 식으로 궁금해 하는 반응이 많이 올라왔다.

누가 저를 극단적으로 칭찬하는 걸 잘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이렇게 연기를 바꿔 볼까?’하는 생각이 들지 않게 배역에만 몰입하는 스타일이다. 그동안 무대에서 여주인공 역을 많이 연기해왔다. 황 간호사를 할 때는 여주인공이었던 스타일을 놓고 싶었다.

김태희 씨 옆에 있으면 아름다운 건 포기해야 한다. 겉모습으로만 보아서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사람이지만, 김태희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자신의 모습이 솔직하게 드러날 수 있는 양날의 칼 같은 캐릭터로 접근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캐릭터에 접근했다.

고상하고 냉정한 여자지만 어글리한 내면을 가진 황 간호사를 연기할 때, 지인들은 ‘너무 안 예쁘게 나왔어’라는 반응을 보였다. 어떤 분은 ‘연기도 기분 나쁘지만 생긴 것도 기분 나쁘게 생겼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는 그게 욕으로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도 생각해주는구나’하고 반색했다.

황 간호사로 몰입해서 보여드렸기 때문에 시청자가 섬뜩하다고 느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서다. 첫 드라마라 제가 바라는 만큼 연기를 할 수 없었음에도 촬영하는 매순간 집중했던 게 시청자들에게 와 닿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 인터뷰 2에서 이어집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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