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조중동 아닌 신문 기자들은 불쌍한 존재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사실과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갑작스레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구절을 덧붙입니다. ‘한.경.서(한겨레와 경향신문과 서울신문) 소속 기자들은 아닐 수도 있지만.’

얼마 전 서울에 있는 한 신문사 지부장과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신문사들은 왜 노조 활동이 별로 없지요?” “아, 예. 기자들이 노조 활동을 잘 하려고 하지 않아서요.”

“그래도, 대부분이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니요, 대부분이 그래요. 모두들 다른 데로 옮겨갈 생각만 하고 있으니…….” 저는 이 대목에서 조금 충격을 받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충격은 따로 준비돼 있었습니다.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그것입니다. “옮겨갈 때 옮겨가더라도 있을 때는 노조 활동을 나름대로 해야지 않나요?”

“그것이 그렇지 않은 까닭이, 이를테면 조중동 같은 데서 사람을 고를 때, 노조 활동 경력이 있으면 싫어한다 이 말이죠.” 머리가 깨졌습니다. ‘거의 노예 수준이구나.’

▲ 낡고 초라한 경남도민일보 사옥. 사실 그것도 13층 가운데 3 4 5 6층만 경남도민일보 몫입니다. 그래도 경남도민일보가 불쌍하지 않은 까닭은 줏대를 잃지 않은 구성원이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김훤주

조중동만 조중동스러운 데서 머물지 않고, 조중동 아닌 것들까지도 조중동스러운, 이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 바로 한 순간에 다 이해가 됐습니다.

조중동 기자들은 조중동 소속이라서 조중동스러운 관점에서 기사를 써댑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조중동 아닌 기자들도 조중동스러운 기사를 써대는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노조 활동도 장차 옮겨갈 조중동 눈치 보느라 못하는데, 기사는 어련하겠습니까! 신문사 정경이 떠오릅니다. 기자들 대부분이 바깥으로 해바라기를 합니다. 신문사 발전이나 논조나 이런저런 일들은 관심사가 아닙니다. 스쳐 지나가는 정거장밖에 안 되는 곳이니까요.

그러다가 어느 날 슬그머니 조중동에서 뽑은 경력 기자 명단에 이 신문사 소속 기자 이름이 몇몇 오릅니다. <미디어 오늘> 같은 매체에서 이를 다룹니다. 남은 기자들은 허탈해 합니다. 어떤 이는 부러워할는지도 모르겠군요.

이런 일은 우리 <경남도민일보>도 겪습니다. ‘기자 양성 학원’이라는 비양도 듣습니다. 그러나 서울 조중동 아닌 신문과 다른 점은, <경남도민일보>를 떠나 다른 매체로 옮길 생각이 없고, 그래서 <경남도민일보> 발전에 관심을 크게 두는 구성원이 다수라는 점입니다.

불쌍하다거나 불쌍하지 않다는 규정은 아주 주관적입니다. 아무리 헐벗고 굶주린다고 해도 모두 불쌍한 존재가 되지는 않습니다. 아주 작고 매우 가난한 매체에 종사한다고 해도 모두 불쌍한 인간이 되는 것 또한 아닙니다.

사람 몸이 아니라 의식 또는 생각이 작고 가난해지거나 헐벗고 굶주릴 때 그 존재는 불쌍해집니다. 존재가 생각과 행동에서 줏대를 잃어버리거나 정체성을 놓칠 때 불쌍해집니다.

이를테면 그 존재가 어떤 한 신문사 기자라고 한다면, 스스로를 그 신문사 기자라 여기기보다는 예비 조중동 기자나 미래 조중동 기자라고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할 때가 바로 그런 때입니다.

이런 경우 쓰라고 있는 완전 토종말 하나. ‘얼간이’가 그것입니다. 얼+간+이입니다. ‘얼’은 ‘넋’을 뜻하고 ‘간’은 ‘간다’는 뜻이고 ‘이’는 ‘사람’입니다. 있어야 마땅한 얼이 없으니 얼간이는 근본 불쌍한 존재입니다. 기자가 얼간 세상에서 뭐가 제대로 될 리 있겠습니까?

저는 1963년 8월 경남 창녕에서 났습니다. 함양과 창녕과 부산과 대구와 서울을 돌며 자랐고 1986년 경남 마산과 창원에 발 붙였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는 1999년 들어왔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한 뒤에는 노동조합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일삼아 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발바닥만큼은 뜨거웠던, '직업적' 실업자 시절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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