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문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3살짜리 아이의 시신이 찍힌 한 장의 사진이 세계를 뒤흔드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일란 쿠르디라는 이름의 이 어린이는 시리아 정부군과 이슬람국가(IS)가 격전을 벌이고 있는 코바니에서 탈출해 유럽으로 향하는 길을 떠났다 봉변을 당했다. 터키를 거쳐 그리스로 향하는 도중 가족이 타고 있던 고무보트가 뒤집혀 일가족이 모두 사망한 것이다.

해변에 밀려온 아일란 쿠르디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죄책감과 안타까움을 선사했다. 그것이 누구의 책임이든 어른들의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3살짜리 아이가 이러한 비극을 당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안타까운 비극의 원인이 된 비정한 현실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아일란 쿠르디의 이름을 딴 펀드가 조성되고 상당한 규모의 기금이 순식간에 모이는 기적과 같은 일도 벌어졌다.

한 장의 사진이 불러온 거대한 여론의 진동은 영국 정부가 그간의 난민 수용 정책을 바꾸는 현실의 변화로 이어졌다. 영국 정부는 시리아 국경지대에 위치한 유엔난민기구(UNHCR) 난민캠프에서 생활하고 있는 난민들을 자국에 수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4일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난민을 의무적으로 분산 수용한다는 원칙에 합의한 것도 의미있는 변화다. 그간 프랑스 정부는 가장 많은 난민들의 목적지가 되고 있는 독일이 제안한 ‘난민쿼터제’의 수용에 난색을 표해왔다. 앞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놓고 EU회원국들의 복잡한 협의 과정이 진행되겠지만 현재보다 나은 난민정책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여론이 상당 부분 반영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 헝가리 정부가 2일(현지시간) 불법 이민자들의 독일행 '난민열차' 탑승을 저지하자 부다페스트의 켈레티 역이 난민촌으로 바뀌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유럽의 최근 상황을 돌아봤을 때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간 유럽 각국은 이민자 문제를 두고 사회적 갈등을 겪어왔다. 프랑스의 국민전선(FN)이 대표적이다.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는 지난달 말 프랑스 정부의 이민정책에 대해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이민자 수용을 모두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마린 르펜 대표는 불법이민자에 대한 의료서비스나 사회보장지원 등에 대해서도 무조건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프랑스 사회는 과거부터 이민자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 1950년대 이후 알제리 독립전쟁의 여파가 계속되면서 프랑스 내 이민자들이 사회적 탄압을 받고 이에 대항하는 알제리인들의 테러와 시위가 악순환을 이뤘던 아픈 역사가 대표적이다. 최근 샤를리 엡도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해 테러를 당했던 것 역시 프랑스 내 이민자 문제에 대한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프랑스가 아니더라도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그간의 역사적 경험 때문에 이민자 문제에 대한 뿌리깊은 사회적 갈등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맥락에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인한 피해가 더해지자 이민자들에 대한 악감정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사건이 이어졌고 이를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정치세력이 등장하는 등 갈등의 양상은 더 확대돼왔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총기 난사 사건은 이런 갈등이 어떤 파국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비극이었다. 브레이비크는 유럽의 경제적 위기로 인해 자신이 여러 고통을 겪게 된 것의 원인을 이민자들의 탓으로 돌렸다. 그의 생각에 노르웨이 노동당 정부는 이민자에 대한 관대한 정책으로 현실적 고통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었다. 따라서 브레이비크의 분노는 노동당 정부 그 자체에 대한 것으로 옮겨졌으며 이는 결국 그가 노르웨이 노동당의 청소년 캠프에 난입, 총기를 난사해 76명의 목숨을 빼앗는 결과로 이어졌다.

유로존 성립 이후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한 유럽 국가로 여겨지고 있는 독일에서도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실린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같은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선거에서 무시할 수 없는 돌풍을 일으키는가 하면, 페기다(PEGIDA, 유럽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 주최의 집회에 상당한 규모의 인원이 모이고 이들이 주동한 테러가 벌어지는 상황 등은 나치 이후 극우주의에 남다른 경계심을 보여왔던 독일사회의 균형 상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할 수 있다.

이런 세태 속에서는 난민에 대한 우호적 여론의 끝이 어디로 이어질지 예측이 어렵다. 지금 당장에야 ‘한 장의 사진’에 의한 인류애가 힘을 갖고 작동할 수 있을지 모르나, 본격적으로 유럽 각국이 보다 완화된 이민자 정책을 펴고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증가하면 또 어떤 비극적인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냉정하게 보자면 이번 사태에 대한 ‘반동 형성’으로 이민자들에 대한 적대적 행위들이 증가할 가능성까지 내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오직 ‘한 장의 사진’으로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반 이민자 정서'에 대한 범유럽적 대응이 필요하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반 이민 선동에 대해 ‘불관용’ 입장을 재차 반복하는 것처럼, 인류애를 위협하는 어떤 극우적 시도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유럽 전체의 하나된 입장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도주의는 어느 정치세력이든 내세울 수 있는 것이지만 이것이 첨예한 이해관계가 맞부딪치는 영역에서 논의될 때에는 제각각의 형편에 따라 편의적으로 취급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를 들면 프랑스 정부가 이미 상당한 정도의 정치적 지지를 획득하고 있는 국민전선에 대하여 지금보다 단호한 입장을 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때문에 중동 등 ‘주변부 국가’에서 시작된 난민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갈등의 발단을 민족 또는 종교 간 문제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문제에서 찾는 정치세력의 복구가 절실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시리아 내전이나 이라크 전 이후 IS의 성장, 중동 국가들의 재스민 혁명 등은 민족, 종교, 정치세력 간의 갈등으로 촉발된 경우가 다수지만 서구 기득권의 이해관계가 뒤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IS는 알카에다로 대표되는 이슬람극단주의 테러조직들 간의 경쟁구도에서 잔혹성을 내세워 각광받다 이라크전을 기회로 주류로 떠올랐다. 주지하다시피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조직들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대결 구도 속에서 자신들의 기틀을 닦아 왔다. 중동 국가들의 재스민 혁명 이후 미국과 프랑스의 ‘새로운 무기시장’에 관한 경쟁구도가 화제가 된 일도 있었다. 그 상황의 주인공이 누구이든 세계적 혼란이 벌어질 때 이득을 챙기는 것은 기득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이 기득권에 포함되지 않는 유럽 민중들의 광범위한 연대의식이 복원되는 것이다. 자신에 가해진 고통을 이민자나 특정 민족, 종교에 돌리는 게 아니라 이 고통을 이용해 언제나 이득을 챙기려는 기득권에 대한 민중적 분노로 바꿔낼 수 있는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사람들의 분노를 세상을 악하게 만드는 데가 아니라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데 써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한때 유럽은 이러한 정치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모든 것이 무너진 상태다. 우리는 ‘한 장의 사진’으로 비극을 목도하고 있지만 진정한 위기의 시작이 여기에서부터 왔다는 것을 다시 깨달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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