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승절 기념행사가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 됐다. 박근혜 정권으로서는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라는 부분에서 상당한 부담을 안고 참석을 강행한 것이라 이후 상황에 관심이 쏠린다. 보수언론은 비교적 냉정한 분위기에서 향후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일부 언론을 통해서는 중국의 군사적 패권주의 문제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 한겨레 4일자 사설

한겨레는 이날 <중국, 군사력 과시보다 ‘평화 노력’을>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중국이 지속적이고 철저한 ‘평화 노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국제사회의 반발을 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주장 및 군사력 강화를 꾀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은 2013년에 일방적으로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해 한국·일본·미국 등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면서 “이런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일방적인 행동으로는 ‘신형 국제관계’를 만들어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또 “중국이 팽창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자신이 비판해온 과거 제국주의 나라들과 다를 바가 없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절 열병식 참가를 통해 생긴 동력이 동아시아 평화와 한반도 관련 사안의 해결에 활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경향신문 4일자 사설

경향신문 역시 한겨레와 비슷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중국, 군사굴기만으로 세계 지도국가 될 수 없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인민해방군 30만 명 감축 계획을 밝혔음에도 주변국의 시선에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며 동중국해의 방공식별구역 확장 선언과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 등을 들어 “중국은 과거에 빼앗긴 해양주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주변국들은 힘을 앞세운 패권주의로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안으로는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고, 경제적 정의와 높은 문화를 구현하면서 밖으로는 평화를 실천하는 나라만이 세계의 중심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서 “중국이 진정 굴기를 바탕으로 평화를 실천하기를 세계는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이러한 지적은 지금과 같은 국면에서 필요한 주요한 비판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은 자신의 힘을 대내외에 과시함으로써 동아시아의 명실상부한 ‘맹주’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를 갖고 진행됐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들은 이러한 의도를 잘 알기 때문에 중국의 행사를 초라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 초라함을 채우고 있는 것은 중국이 자체 제작했다고 주장하는 첨단무기들이다. 중국은 정치, 군사, 경제라는 삼박자를 맞추어 미국에 대당하는 또 하나의 패권국가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 중앙일보 4일자 1면 기사

중국의 군사적 팽창에 주목한 것은 보수언론인 중앙일보도 마찬가지였다. 중앙일보는 1면에 <‘둥펑-5B’ 과시하며 세계평화 강조한 시진핑>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둥펑-5B’는 최대 미국 본토에 이르는 사정거리를 갖고 있는 탄도미사일이다. 이 기사에서 중앙일보는 시진핑 주석이 ‘감군’을 선언했지만 둥펑-5B와 항공모함킬러 둥펑-21D 등이 열병식에 등장했다는 점에 주목하며 “중국은 굴기와 평화가 모순되지 않음을 호소하려 했다. 아직은 국제사회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고 썼다. 중앙일보는 또 4면 <인해전술서 첨단무기로, 군사력 더 키우겠다는 의미>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시진핑 주석의 ‘감군’ 선언을 정예화·디지털화와 같은 군 현대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책이라고 분석했다.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등 전 국가주석들도 대형 열병식 후 이러한 맥락에서 병력감축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 중앙일보 4일자 사설

물론 중앙일보의 이러한 관심은 중국의 팽창주의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주류 언론에서 평가의 중심은 이후의 외교일정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한국의 외교 공간 확대한 박 대통령 열병식 참관>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시 주석이 열병식 연설을 통해 인민해방군 병력 30만 명 감축 계획을 밝힌 것은 긍정적”이라면서 “중국의 군사적 팽창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를 완화하려는 노력의 일부로 평가한다”고 썼다.

중앙일보는 또 박근혜 대통령이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해 61년 전 김일성 북한 주석의 자리를 대신한 것에 대해 “한·중 관계와 북·중 관계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사였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의 의문을 감수하면서 전승절 열병식에 참가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 등에서 중국의 협력이 절실했기 때문이라고 썼다. 중앙일보는 박근혜 정권의 이러한 외교 노선을 “실리에 입각한 독자 외교의 조심스러운 첫발을 뗀 용기있는 선택”, “집에만 갇혀 있던 아기가 철이 들면서 바깥 출입을 시작한 셈”이라는 표현으로 평가하면서도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국 외교와 안보의 초석은 한·미 동맹이란 사실이다”라고도 썼다.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을 한미관계, 한일관계 개선의 동력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은 조선일보를 통해서도 제기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1면에 <천안문 성루에 선 박 대통령 ‘통일 외교’> 제목의 기사에서 “박 대통령으로선 이번 행사 참석으로 한·중 관계 진전을 얻었지만 한·미 동맹 강화와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강조했고 2면 기사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다른 정상들과는 달리 착석해서 열병식을 관람한 것에 대해 “중국군이 6·25 당시 북한을 지원했던 것 등과 관련해 국내외 일부의 ‘한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됐다”고 전했다.

▲ 조선일보 4일자 4면 기사

또, 조선일보는 <中과 ‘밀월’ 다진 朴대통령, 10월 訪美때 ‘동맹 강화’ 숙제로 남아>라는 기사를 배치했고 사설에서는 “박 대통령의 전승 행사 참석이 한·중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한·미 동맹을 비롯한 이 나라 외교의 곳곳에 적잖은 그늘과 부담을 안겼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중국 굴기의 들러리처럼 비치는 것은 자멸(自滅)을 재촉하는 것”이라면서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서 한·중 전략적 협력의 틀을 넓혀가고 일본 등 주변국과도 관계를 정상화하는 외교적 난제가 우리 앞에 닥쳤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동아일보 4일자 1면 기사

동아일보는 아예 1면 톱에 <美 불안-日 불안 씻어낼 설득외교 펴야>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하고 “박 대통령은 당장 10월 1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중국으로 기울지 않았음을 보여줘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3면에도 <“이젠 한미일 공조 중심축 강화… 訪中성과 내실 다져야”>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하고 <中 텐안먼에 선 박 대통령, ‘北 변화’ 국제공조 끌어내야>라는 사설을 통해 이후 한·미 정상회담, 한·중·일 정상회의 등을 통해 대북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하기도 했다. 전날 동아일보가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을 ‘외교적 실패’라고 주장한 것에 비하면 확실히 논조가 ‘톤 다운’ 되기는 했으나 어쨌건 한·미·일 관계 복원의 기회로 삼으라는 것은 보수언론 일반의 논조와 행보를 같이 하는 것이다.

문제와 관련한 보수언론의 지적이 크게 잘못됐다고까지는 볼 수 없다. 동아시아 평화체제로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 모두와의 관계 개선을 모색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식의 균형외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에 경도되는 것이든 한·미·일 동맹 구도에 갇히는 것이든 우리로서는 이후에 제한적인 스탠스가 강화되는 길을 피해야만 한다. 올해 하반기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가 이런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지만 보수언론이 미국과 일본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적 시각을 보여주며 언론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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