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대교를 건너 거제 시내를 지나 옥포만 도로를 따라 거대한 면적에 펼쳐져 있는 경이로움과 감탄 그 자체인 대우조선소, 밤이면 그 웅장함과 화려한 조명으로 인해 신비스럽기 그지없는 이 조선소를 처음 대했을 때의 기억은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초현대식 거대한 선박이 즐비한 이 조선소에 어둡고 참담하기까지 한 또 다른 이면이 있다는 걸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2013년 9월 설레임과 부푼 꿈을 안고 이곳이 나의 마지막 직장이어야 한다는 각오로 들어섰던 선박 내부 작업 현장은 참으로 충격 그 자체였다. 들어서자마자 온갖 철구조물로 얽혀 있는 내부로 들어서는데 숨이 턱 막혔다. 미로 같은 좁은 통로를 따라 한참을 지나 우리가 일할 어느 지점에 이르자 고막이 찢어질 듯한 소음과 앞이 온통 뿌옇게 보일 정도의 먼지와 연기가 덮쳤다. 방진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한순간도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교육이란 것도 없었다. 먼지가 수북히 쌓여 있는 전선 케이블을 바인드 테입으로 단단히 고박시키는 일을 현장에서 바로 배워 하게 되었고, 이것이 나의 조선소 전기공으로서의 첫걸음이었다. 온몸은 순식간에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고 착용한 보안경과 방진마스크로 인해 바로 앞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두어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 스스로 적응하고 익숙해 졌을 뿐 기본적인 작업환경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 위험 요소가 도처에 널려 있어 하루가 멀다하고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있는데 죽은 자들은 모두 나와 같은 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이다, 며칠 전에도 사고로 몇 분이 운명을 달리 했다. 그런 날은 온종일 우울해 일이 잡히지 않는다.

▲ 복직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강병재(52) 대우조선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 의장은 현재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N안벽의 높이 50m 크레인에 올라 146일째 고공 농성중이다. (사진=연합뉴스)

더더욱 잔업에 특근을 밥먹듯이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힘겨운 현실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 울타리 한 작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감수해야 하는 차별과 부당한 대접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최저시급을 벗어나지 못하는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 그리고 부당한 차별과 억압, 이런 조선소 비정규직 우리 하청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실상 그 길은 멀고도 험난하기만 한 것이 냉정한 현실이었다.

혈기왕성한 이십대 청년부터 산전수전 다 겪은 오십대까지, 5만여 명이 모여 있는 조선소에서 노동자의 기본권이라는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이토록 힘들고 험난할 줄이야! 억압받고 차별받는 대우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상징인 하노위(하청노동자 조직위원회) 강병재 의장은 그래서 결국, 모든 고통과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저 까마득히 높은 곳, 70m 크레인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러나 140일이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대우조선해양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강병재 의장은 2011년에도 88일간 고공농성을 했었다. 88일만에 사측은 2009년 사내하청노조를 만들려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했던 해고가 부당했음을 인정하고 2012년 말까지 복직시키기로 확약서를 썼었다. 하지만 세계 최대 규모와 기술력을 자랑하는 대우조선소는, 4년 전에 한 노동자와 서면으로 한 약속을 외면함으로써 한 노동자를, 한 가정의 가장을 사지로 몰아가고 있다.

며칠 전 그의 집을 다시 찾아갔을 때 그가 꿈에 그리고 있을 고3 외동딸이 문을 빼꼼이 열고 놀란 토끼처럼 무슨 일이냐는 듯 나를 바라다보았다. 강병재 의장의 딸은 혼자 밥을 끓여먹으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 벌써 얼굴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어서, 그동안 지냈던 일, 고민거리, 이런저런 얘기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고 갔건만 딸은 여전히 내가 불편스러운 모양이다. 잘 먹고는 다니는지, 잠은 잘 자는지 가슴이 아려온다. 내게도 이 아이 같은 딸이 있으니 더 가슴이 메인다. 사내하청 노동자로 살며 늘 풍족하지 못한 삶이라 나 또한 항상 아이에게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갖고 살아가는데, 두 번씩이나 어린 딸을 혼자 두고 목숨을 걸고 고공농성에 돌입한 강병재 의장의 마음은 어떨까.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이제 거대 기업 대우조선해양은 강병재 의장과 딸의 생이별을 당장 중단시켜야만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말로만이 아닌 진심으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를 가족으로 대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하소연 할 데 없고, 오로지 저 하늘 높이 올라가 소리쳐 외칠 수밖에 없는 하청노동자의 이 절망적인 상황이 바뀌어지는 그날까지, 그래서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비정규직 없는 거제를 만드는 그날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런 우리 하청노동자들과 강병재 의장을 응원하기 하고, 대우조선해양에 항의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희망버스 승객분들이 9월 12일, 3시 거제로 온다고 한다. 거제가 생기고 난 후, 대우조선해양이 생기고 난 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경우는 처음일 듯 싶다. 그날 만큼은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신음으로 가득찬 거제가 하루쯤은 밝아지기를 소망해본다.

그 분들을 따라 우리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 역시 항상 달리는 희망버스의 맨 앞자리에 앉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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