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가권력을 다룬 영화를 보았다. 폭력진압에서 아이를 잃은 아버지이자 경찰을 죽인 범인으로 지목된 자(박재호)의 법정 싸움을 그려낸 <소수의견>이다. 정보를 은폐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변호사를 압박하던 검사는 영화의 마지막에 영화를 관통해오던 질문을 던진다. “내가 어디 전화라도 한 통 받았는 줄 알아? 국가는 누군가의 희생과 누군가의 봉사로 유지되는 거다. 박재호는 희생을 했고 나는 봉사를 했어. 근데 넌 뭘 했지?”라고. 영화를 보고 난 뒤, 국가를 위해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누군가가 끊임없이 존재하고 국가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겠다는 누군가도 존재하는데 나는 뭘 하고 있는지 뜨금 했다.

그런데 최근에 또 국가를 위해 기꺼이 봉사하겠다는 기관이 있으니 바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다. 최근 방심위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은 제3자 신고가 가능한 ‘반의사불벌죄’인데, 심의규정은 ‘친고죄’로 규정돼있다며 인터넷상 명예훼손 심의규정을 제3자의 신청만으로도 가능한 ‘반의사불벌죄’ 방식으로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어려운 법률 용어를 빼고 해석하자면 “앞으로 인터넷상 명예훼손을 피해자가 신청하지 않아도 방심위가 심의해주겠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천 또는 몇 만 건씩 쏟아지는 명예훼손성 게시글에서 방심위가 피해자의 직접 신고 없이 명예훼손 심의를 해줄 대상은 안타깝게도 몇 천 또는 몇 만에 해당하는 개인이 될 확률은 높지 않다. 우선 그렇게 많은 명예훼손성 게시글 중에서 나를 비방하는 글을 나를 대신해 다른 누군가가 일일이 확인해줄리 만무하고, 또한 확인했다하더라고 그 누군가가 알아서 판단할 기준과 근거도 모호해서 대신 신고까지 해줄리는 더더욱 만무하다. 반대로, 단언컨대 방심위가 직접 신고 없이 명예훼손 심의를 할 대상이 대통령이나 청와대, 그리고 특정 정치인과 같은 공인이 될 확률은 매우 높다.

직접 신고가 어려운 사회적 약자를 배려했다는 방심위의 주장과 달리 사회적 약자에 대한 명예훼손성 정보는 현행 규정으로도 제3자에 의한 심의 신청이 가능하도록 되어있어 사실상 법 개정으로 인한 실익이 불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이번 심의규정 개정의 의도가 대통령 등 특정 정치인에 대한 비판 게시물을 차단하려는 수단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달 17일 열린 <인터넷 명예훼손 심의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는 모습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인터넷 상에서 국가권력 비판 여론에 대한 차단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포털사이트 실검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단어들이 행방불명된 지 오래이고, 특정 사이트의 대화창에는 박근혜라는 단어는 입력조차도 되지 않는다. 이미 자본에 의해 국가권력 비판 여론에 대한 접근이 일차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것이 인터넷 강국이자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제 방심위가 국가권력을 위해 기꺼이 인터넷상 명예훼손성 게시글을 알아서 심의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공인의 비판 차단을 위해 남용될 위험이 크다는 반대 여론이 일자 박효종 위원장은 나름의 공인 배제 원칙을 방심위 내부 규칙으로 만들겠다며 법 개정의 순수한 의도를 밝혔다. 남용될 소지가 큰 법을 만들고 그 안에서 규칙을 정해 남용을 막아보겠다는 소리인데, 위원회 내부규칙은 언제든 자체적으로 개정이 가능하고 견제장치도 전무하다. 즉 심의규정이 개정안의 악용 소지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은 물음표인 상태이다. 그리고 관련법이 악용된다면 인터넷 상에서 국가권력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특정 국가권력을 위해 봉사할 뿐 실익은 없으며 그에 반해 공익은 크게 저해할 수 있다는 점. 이토록 순수한 의도를 가진 방심위가 알아서 국가권력을 위해 봉사하는 기구로 전락할까 우려되는 점. 이것이 내가 방심위의 심의규정 개정을 반대하는 이유이다.

임연미 _ 공공미디어 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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