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계와 보수언론의 ‘사이비언론’ 척결 요구에 총대를 멨다. 정부가 내놓은 복안은 ‘인터넷언론 등록조건 강화’다. ‘사이비언론이 언론 생태계를 망친다’는 프레임이 전방위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직접 나서 수천개의 언론사를 정리하려는 모습이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는 지난 21일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시행령 2조에 있는 인터넷신문 등록요건을 현행 ‘취재 인력 2명 이상을 포함한 취재 및 편집 인력 3명 이상’에서 ‘취재 인력 3명 이상을 포함한 취재 및 편집 인력 5명 이상’으로 바꾸고, 인터넷신문 사업자에게 취재 및 편집 담당자의 상시고용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국민연금·건강보험·산재보험 중 한 가지 이상의 가입내역 확인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바로가기: 문체부의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

문체부는 “콘텐츠 확산력이 큰 인터넷신문의 특성상 사실확인 기능 및 저널리즘 품질 제고를 위한 제작여건(취재, 편집 등)이 제고될 필요가 있다”고 시행령 개정안을 제안한 이유를 밝혔다. 시행령은 의견 청취를 거친 뒤 시행된다. 다만 문체부는 1년 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 조선일보 2015년 8월22일자 사설

보수언론은 시행령을 반긴다. 조선일보는 21일자 사설에서 “인터넷 신문들이 선정적이거나 확인되지 않은 기사를 쏟아내 언론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며 “왜곡·과장 보도는 물론 광고와 협찬비 명목으로 기업을 갈취하고, 청소년에게 해를 끼치는 선정적 광고를 버젓이 싣는 곳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보수, 주류언론의 닷컴이 어뷰징을 선도(?)하고 있는 현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점에서 유체이탈 화법이다.

조선일보는 등록요건 강화를 환영하며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당국이 인터넷신문·방송의 운영 실태를 정기적으로 조사해 법규 위반이 드러나면 가차없이 등록을 취소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한술 더 떠 기업을 협박하는 언론은 즉각 등록을 취소해야 하고, 한 번 등록 취소된 사업자가 일정 기간 다시 인터넷언론에 종사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1인미디어 등 소수로 움직이는 대안언론은 졸지에 등록이 취소될 처지가 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인터넷신문 1776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1~4인을 고용한 인터넷신문사는 687개사로 38.68%에 이른다. 문체부에 등록된 인터넷신문사(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 200여개 포함)가 2014년 기준 5950개인데,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언론사 간판을 내려야 하거나 유예기간 1년 안에 인력을 충원해야 할 언론사는 2300여개로 추정할 수 있다.

언론의 수는 저널리즘의 질과는 관련이 없다. 언론의 난립, 특히 유령언론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것은 인터넷 공간의 특성 상 당연한 결과다. 문체부의 등록요건 강화 추진은 인터넷의 특성을 무시하고, 주류언론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통제 전략으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체부는 올해 들어 주요언론사의 편집국장이나 보도국장을 직접 만나 정부 정책을 설명하는 구시대적 제도를 부활해 운영 중이기도 하다.

▲ 미국 드라마 <뉴스룸>의 한 장면. 기사는 독자가 평가한다. 언론은 신뢰도가 생명이기 때문에 취재과정에서 실수가 있다면 즉각 정정하고 독자와 취재원에게 사과한다. 이게 정상적인 언론이다. 정부 기업 포털 보수언론이 말하는 사이비언론은 특별한 사정(기자의 실명이 나갈 경우, 목숨이 위협당하는 등)이 아닌데도 실시간급상승어를 따라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디지털뉴스팀 이름으로 내보내는 언론이다. 그렇다면 사이비언론은 과연 누굴까. 이것 역시 독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사이비언론은 공론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특히 이번 조치가 포털사이트의 뉴스서비스 정책 변화와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혐의는 짙어진다. 앞서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는 포털 제휴 언론을 평가하는 데 업계의 의견을 반영하기로 했고, 다음카카오는 포털뉴스 최상위 댓글을 작성할 수 있는 권한을 광고주와 정부에 내주기로 했다. 이번 조치는 포털을 평정한 뒤, 정부가 후속조치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의 규제 강화 정책은 기성언론의 기득권 강화로 이어진다. 사이비언론 문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등 광고주가 기성언론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사이비언론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 등 광고주는 광고와 기사를 바꾸고 음성적으로 광고와 협찬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공생해왔다. 일례로 미디어스는 특정 지방자치단체의 후원이 특정언론, 그것도 주류언론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보도한 바 있다. ▶바로가기: 미디어스 <지자체와 언론, ‘음지’의 거래> 시리즈

정부와 보수언론, 그리고 재계가 공동기획한 사이비언론 척결 작전은 사전에 포섭한 일부 인터넷신문의 동의를 얻어 단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다음 단계는 포털의 진입장벽을 지금보다 높이는 작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독자들이 지역의 중소언론, 그리고 대안언론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드는 반면 정부-언론-광고주의 여론지배력은 확대되고 유착관계를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두환 정권 시절 유행한 구시대적 언론통제, 여론조작 전략이 21세기에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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