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종종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서는 비평이 필요하다. '정치 멀리보기'는 분명한 관점과 과감한 전망을 바탕으로 정치적 사건을 전체 맥락에서 재구성하고자 하는 심층 기사이다. 3류 정치평론처럼 소설의 영역으로 가보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허황된 망상이 아니라 근거 있는 정치평론의 도를 추구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 70주년 기념사에서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일을 ‘건국일’로 명명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5일 기념사에서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발언했는데 이것이 ‘뉴라이트’라 불리는 보수 진영의 역사관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최근 들어 KBS 이인호 이사장 등이 일간지에 이와 관련한 글을 싣는 등 ‘건국’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 확대돼왔기 때문에 반발이 일고 있다.

경향신문은 17일 사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인식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경향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한 것에 대해 여권과 뉴라이트 진영에서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환치하려는 움직임과 맥이 통하는 것이라고 해설하면서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의 의미를 굳이 축소할 까닭은 없지만 정부 수립과 건국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향신문은 제헌헌법에 “기미 3·1 독립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명시돼있고 현행 헌법 전문에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돼있으며 이승만 전 대통령도 관보 1호에 ‘민국 30년’이란 연호를 사용했다는 점 등을 들어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임시정부의 법통과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를 축소하고 이승만 독재를 미화하려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상 헌법의 취지와 충돌하는 것이며 대통령이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발언을 내놓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경향신문의 지적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광복 70년 국민 대합창 '나는 대한민국' 행사를 마치고 행사장을 떠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이 공개적인 행사에서 헌법적 가치와 관련이 있는 논란에 스스로 뛰어드는 것은 당연히 부적절한 처신이다.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을 넘어 보수세력의 이러한 시도가 어떤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와 같은 중요한 메시지를 발표하면서 아무런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역사관을 ‘정사’로 만들려는 보수세력의 시도에 대한 가장 흔한 해석은 이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이승만 정부 이후 한국을 지배했던 주류 세력이 일제시대로부터 기득권을 강화해왔다는 게 이러한 해석의 근거다. 그간 야권을 중심으로 줄기차게 제기됐던 ‘친일 청산’ 등의 정치적 요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보수세력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의 역사적 성과를 축소하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해석에도 설득력은 있다. 그러나 충분한 것은 아니다. 한국 정치가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경험을 가진 민족감정에 의해 친일 청산이라는 요구가 언제든 제기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는 옳은 진단이다. 그러나 그러한 요구에 의해 보수세력이 근래에 특별히 위기를 맞았던 일은 사실상 없다. 시간이 계속 흐르면서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떨어져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국절 논란을 자초해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보수세력의 이 같은 움직임은 ‘현재’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는 중국의 정치·경제적 부상(浮上)과 일본의 보통국가화 추진으로 요동치고 있다. 이러한 우경화의 바람 속에서 지배세력이 너나할 것 없이 선택하고 있는 것이 역사 수정주의다. 이런 흐름은 지난 1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종전 7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담화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것은 잘못이며 전쟁의 비극을 반복해서는 안 되지만 당시의 판단에는 그럴만한 이유와 명분이 있었고, 벌써 70년을 지나온 과정 속에서 사죄와 반성을 표현해 과거 청산은 사실상 마무리 됐으며, ‘적극적 평화주의’의 기치 아래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게 그것이다.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5일 일본 도쿄도(東京都) 지요다구 일본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식사(式辭)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베 신조 총리의 이러한 입장은 일본 정치의 역사에서 패전 이후 몰락했던 극우세력이 다시 주도권을 잡게 됐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 자민당 내부의 헤게모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이전까지 친미적이고 경제적 발전에 초점을 맞췄던 자유당 계열의 파벌(자민당은 과거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해 만들어졌다)이 장악했었지만 이제는 ‘방류’(본류와 대비되는 말)로 불리며 자주노선을 중시한 민주당 계열 파벌이 주류로 떠올랐으며 아베 신조 2차 내각 이후에는 거의 모든 파벌이 아베 신조 총리의 노선에 복속되는 현상마저 벌어졌다.

이런 상황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력이 그간 백안시했던 일본 극우세력의 존재를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사실상 추인하면서 굳어졌다. 전후의 일본 극우세력은 자신들에게 굴욕을 준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런 저런 시도를 했지만 현재는 다르다. 극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과 대립하며 미국의 동아시아 ‘대리자’로서 역할을 자임하는데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적극적 평화주의’에 입각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미국의 군사적 이해관계를 강화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한동안 논란이 된 중국의 ‘동북공정’은 이와 반대되는 측면의 정치적 이유로 추진된 것에 가깝다. 중국판 역사수정주의로 볼 수 있는 동북공정은 중국이 미국에 대당하는 'G2'를 자임하면서 동아시아 주변 국가들 사이에서 지도적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사전작업에 가깝다. 중국이 동아시아 정치·경제·문화의 종주국임을 분명히 하면서 역내 헤게모니를 장악하겠다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친일외교’를 밀어 붙였던 이명박 정부가 중국의 동북공정을 문제 삼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더 이상 중국의 역사 수정주의에 대해서는 진지한 문제제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과거사’를 빌미로 중국과 연합해 일본과 거리를 두는 방안을 외교 정책의 기본틀로 잡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런 식의 ‘균형외교’는 보수세력의 입장에서는 일시적인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이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고 표현하듯 결국 한국의 보수정권은 외교안보적 측면에서 미국을 대리하는 일본과 관계를 개선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미국을 방문해 극진한 예우를 받고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이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상황이 빚어지는 가운데 언제까지나 ‘과거사’를 핑계로 일본과 거리를 두려는 전략이 통용될 수는 없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 인식을 강하게 비판하지 못한 것에는 이런 맥락이 있다. 같은 흐름으로 보자면 보수세력의 ‘건국절’을 둘러싼 이슈파이팅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오래된 프로젝트로 간주할 수 있다. 식민지배로 인한 국내의 반일감정은 한일관계 개선의 걸림돌 중 하나다. 이의 축소에 동원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을 만들어 놓고 언제든 이를 동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보수세력의 정치적 계획일 것이다. 동아시아 정세가 요동치는 이때 다시 ‘건국절’을 둘러싼 논란이 호출된 것은 이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외교안보적 선택이 반드시 역사의 수정으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그대로 두고서도 얼마든지 민감한 외교적 관계 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은 과거 서로 대립했으면서도 오늘날에는 통합을 이야기하는 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비록 오늘날 국내에서 네오나치 등 이념 갈등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지만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의 제스츄어를 통해 유럽 통합을 통한 국익의 확대를 모색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역사를 바꿔 오늘을 새롭게 만들자는 것은 새벽을 오게 하기 위해 닭의 목을 비트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보수 세력이 제기하는 역사 수정주의적 주장에 반발하는 사람들 역시 단순히 일본의 사죄나 반성을 촉구하는 것을 넘어서서 일본의 식민지배 청산을 체제의 변화로 만들어 내야 하며 이를 통해 동아시아 민중 모두에게 득이 되는 새로운 질서의 구축을 모색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좀 더 주력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당장의 국제정치적 이해득실을 위한 핑계를 주고 받자는 문제가 아니라 과거 제국주의 논리에 기반해 국민을 고통으로 내몰았던 기득권과 이에 편승한 세력이 만들어낸 오늘날의 불평등한 체제에 공동으로 맞서고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정치 멀리보기] 더 찾아보기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