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PD가 아니고 프리랜서…”
“그게 뭐가 중요해. 이 일(방송)을 좋아하고 지금 하고 있으면 되는 거지! 네가 열심히 해줘서 지금 우리 프로그램도 있는 거야, 녹화 때마다 열심히 해주잖아”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 중인 정형돈과 프리랜서 조연출의 일화가 화제가 됐었다. 방송일을 함에 있어서 고용형태보다는 일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따뜻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미담'은 예외적인 경우일 뿐, 정반대의 일이 훨씬 더 잦은 곳이 방송계의 현실이다. MBN본사 외주제작 관리 PD가 독립제작사 PD를 폭행한 사건은 대표적이다. 식사 자리에서 폭행을 당해 ‘안면골절상’을 입어 119요원들까지 왔었지만 피해자 독립PD는 병원이 아닌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시사회를 마쳐야 했다. 갑을관계가 파생시킨 ‘엽기적 사건’이다.

이 같은 사건은 MBN만의 문제가 아니라, 방송사 내부에서 관행처럼 존재하고 있다. 한 개인의 일탈로 폭력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방송사 내부의 ‘갑을관계’를 ‘동등한 협력관계’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유사한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단 지적이 높다.

▲ MBN폭행사건과 관련해 최선영 PD가 MBN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한국독립PD협회)

최선영 독립PD(서울디지털대학교 초빙교수)는 방송계의 현실과 MBN 폭행사건을 낳은 토대를 말하며, ‘구조적’ 갑을관계에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논란이 된 프로그램은 MBN <헤이데이>였는데, 신규 프로그램이다 보니 갑의 입장에서는 잘 런칭하고 싶었겠지만 을의 입장에서는 지적사항을 빨리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그램 문제가 술자리로 이어진 것부터가 일방적인 힘의 균형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통상적으로 시사 과정까지는 외주제작사와 방송사 간에 계약서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구두계약’인 상황에서 제작사 입장에서는 모든 지적이 부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피해자 역시 굴욕적으로 재시사 및 합의를 수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제 독립PD들, 협찬 구하러 다니는 것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

최선영PD는 맞고도 일한 독립PD에 대해, 본인때문에 최종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못하면 제작사에 고스란히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앞섰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종편 개국 후,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 터무니없는 ‘계약’들이 성사되고 있다고 설명한 그는 “종편4사는 개국 당시 화려하게 시작하기 위해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등 다양한 장르를 런칭했었다”며 “그런데, 투여된 제작비에 비해 시청률은 오르지 않다 보니 2~3개월 후 프로그램을 일방 종영하는 등 불합리한 사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한 종편의 경우에는 아예 외주제작사들과 계약할 때 ‘목표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2주 안에 폐지할 수 있다’는 합의서를 함께 쓰기도 했다. 문제 그 목표시청률이 예전에는 2%였다가 이제는 기대치가 점점 높아져 4~5%까지 올라갔다는 점이다. 그러니 경쟁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안에서 외주제작사들 끼리의 경쟁도 있지만 종편 사 내부의 경쟁 또한 심하다고 한다. 서로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강박이 커지다보니 문제는 커질 수밖에 없다. MBN의 경우, 외주제작사들이 많이 선호하는 편이긴 하다. 제작비를 어음이 아닌 현금으로 지급하고,지상파 대비 120% 수준으로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제작사들은 MBN을 많이 선호하고, 이로 인한 경쟁이 더 심화됐던 것 같다”

종편 출범 이후 발생한 제작 환경의 악화 속에서 독립PD들의 노동현황이 얼마나 열악한지는 제대로 된 실태조사 하나 없다. 최선영 PD는 “같은 외주제작사 소속이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프리랜서로 고용형태가 다양하다”며 “제작사에서 재파견되거나 1인 사업자로 등록돼 일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형태 뿐만 아니다. 문제는 복합적이다. “외주제작에 대한 정책을 다루는 기관은 방통위이고 독립제작사를 관리하는 부처는 문화부”이다 보니 제작 환경과 제작물에 대한 근본적인 커뮤니케이션 혼선이 있다. 예컨대, ‘외주제작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을 둘러싸고도 근원적인 '갑질'이 존재한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는 외주제작사에서 기획을 해온 포맷이라고 들었다. 제작사가 가지고 온 포맷은 초안이니까 아무래도 완벽하진 않았을 것이다. 포맷개발을 더 해야 하는 과정에서 JTBC에서는 (제작PD가 아닌)관리PD가 같이 붙어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프로그램 초반에는 재미도 없고 어수선했지만, 수정을 거쳐 완성도가 높아지고 시청률도 많이 올랐다. 제작사에서 기획부터 통으로 들고 와서 본사 관리PD가 밀착해 만들어가는 시스템인데, 모호한 것이 ‘포맷 저작권’이다. PPL 등도 마찬가지이다. 종편이 원래 사업계획서를 승인할 때 중요한 요건이 지상파의 독과점 구조를 해체시키고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서에는 외주제작사와의 상생협력도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지금 지켜지고 있는지는 점검되지 못하고 있다.”

협찬 이야기가 나오면서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콘텐츠 제작비 문제로 넘어갔다. 광고시장의 위축된 상황에서 콘텐츠 경쟁으로 인한 성과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종편4사의 출범은 콘텐츠 시장을 확장 시키기도 했지만, 부당 경쟁을 심화시켰고 외주제작 환경의 악화로 번져가고 있다.

▲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방송사 외주제작 프리랜서 노동인권실태 긴급 증언대회>에서 ‘방송사 외주제작 구조개선 및 노동 인권 보장방안’ 발제를 맡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김동원 강사(정치학 박사)는 MBN 폭행사건과 관련해 "달라진 콘텐츠 시장 상황과 오랫동안 누적돼 온 외주제작 환경의 사각지대가 결합해 발생한 필연적 사건"이라고 규정했다ⓒ미디어스

최선영 PD는 “2005~2006년까지는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공영성이 강조되면서 ‘협찬’이라던지 그로 인한 오더가 개입되기 어려웠다”며 “외주제작사의 입장에서는 ‘광고’, ‘협찬’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그것 때문에 프로그램 제작이 좌우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그 시기를 지나면서 ‘협찬’이 프로그램에 개입되기 시작했다. 한 방송사에서는 1300만 원 짜리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했었는데 ‘700만원 협찬을 받아올 수 있는 외주제작사로 바꾸겠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어떻게 제작비의 절반을 협찬으로 받아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냐”며 “그러다보니 외주제작 독립PD들이 제작이 아닌 협찬을 구하러 다니는 기이한 형태가 나타났고, 지금은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독립PD들이 협찬을 구하러 다니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됐다.

종편을 비롯한 방송사들의 협찬 문제는 MBN 미디어렙 영업일지가 공개되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그는 MBN의 영업일지에 대해 △재방송 편성을 두고 광고주와의 거래, △상품 및 행사에 대한 보도로 홍보효과, △기자를 통한 광고 수주, △종편사업자들의 광고주 협박 등이 벌어지고 있다고 추정했다. 최선영 PD는 MBN미디어렙 영업일지 내용 가운데 ‘범용제안서’라는 단어에 눈길이 갔다고 이야기했다.

“MBN미디어렙 영업일지를 보다보면 ‘천기누설, 황금알, 엄지의 제왕 범용 제안서 전달’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그것은 MBN에서 광고주에게 ‘외주제작하는 프로그램들이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는데 어디에 꽂아 넣으실래요?’라고 물어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만큼 MBN 내 협찬이 가능한 유사 프로그램들이 제작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방송이 아닌 광고 프로그램 아니겠나. 또, 영업일지에 (백수오 사태)‘내츄럴엔도텍’도 나와 있더라. 시장 자체를 교란한 것이 되는 게 아니냐. 재밌는 것은 한국인삼공사가 일동생활건강, 서천식품 등 복수의 광고주로 나와있다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한 식품 시장을 부흥시키는 전략인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 식품에 대한 업체들을 중심으로 종편 프로그램과 홈쇼핑과 연계해 끊임없이 노출도를 높여준다. ‘종편에서 좋다고 하던데, 홈쇼핑에서 보니 좋은 것 같다’라는 각인효과가 생기게 하는 것이다. 종편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아로니아를 먹으면 눈을 뜨게 하는 효과를 줄 것 같고 그렇지 않나. 진짜 빅브라더가 따로 없구나 싶었다. 마치 영화< 트루먼쇼> 같았다. 그 영화의 오프닝을 보면 굿모닝 인사가 다 PPL로 구성돼 있다. 그걸 트루먼과 시청자만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최선영 PD는 “MBN미디어렙 영업일지를 보면, MBN <다큐M>의 경우 ‘기간, 상황, 금액 고려했을 때 결과물은 성실히 잘 만들어졌음’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도 있는데, ‘아, 성실히 개처럼 부려먹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선영 PD는 국회에서 개최된 <방송사 외주제작 프리랜서 노동인권실태 긴급 증언대회>에서 증언에 나선 종합편집실 하종길 감독(가명)의 사례와 MBN 미디어렙 영업일지를 연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증언에 따르면 방송사에서 이미 방영된 편집본에 대해 재편집을 요구한다고 했다”며 “재방송의 경우, 광고주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협찬이 부각되는 방향으로 편집이 될 수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MBN 영업일지에 재방송 2회당 3000만 원 씩 받은 것으로 기재돼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 같은 재방송 판매를 보고 타 종편들은 MBN의 창조경제라는 평가까지 하고 있다”며 종편의 악질 영업 가운데서도 MBN이 특화시킨 영역이라고 설명했다.(▷관련기사 : 방송사엔 아직 ‘말대꾸’하다 뺨 맞는 독립PD가 있다)

▲ (사진=언론노조)

“갑을관계…지상파에서 먼저 자정선언을 해줬으면 좋겠다”

한국독립PD협회에서는 MBN폭행사건과 관련해 방송사와 제작사 간 동등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MBN법’ 제정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최선영 PD는 △방송프로그램 런칭 후 편성기간의 안정화, △광고와 방송프로그램의 분리, △종편에 맞춤 외주제작 정책, △오픈 시사 등 가이드라인 제정 등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방송 편성기간을 시청률에 의해 자르는 것이 아니라 3개월 단위로 유지돼야 한다. 스튜디오 프로그램의 경우, 세트제작도 하기 때문에 초기비용이 많이 든다. 그런데, 종편에서는 시청률이 안 나오면 잘라 버리는데 제작사 입장에서는 벼랑 끝 삶이다. 문제는 또 있다. 종편에서는 평균비용을 책정해 그에 따라 비용을 부담하는데 사실 첫 회는 평균에 상회하는 제작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 것들을 종합해 그에 합당한 제작기간이라는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 한 종편사의 경우, ‘중대한 과실이 제작사에 있는 경우 종영할 수 있다’는 부분도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 그렇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 있지 않다. 작품의 품질과 상관없이 정말 무소불위 권력으로 잘라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종료할 때에도 최소한의 기간을 줘야 한다”

최선영 PD는 방송프로그램의 편성과 제작이 협찬·광고와 명백하게 분리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종편에서 광고국이 편성권을 쥐고 광고주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하는 것을 없애야 한다”며 “종편의 교양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 공영성까지 기대할 수는 없겠으나 최소한의 선을 지켜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선영 PD는 “외주제작의 첫 출발은 정부정책에 의해 지상파가 점유하고 있는 것을 외주로 돌리는 것이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지상파에는 외주제작비율을 통한 접근이 유효했다”고 설명하면서 “하지만 종편은 개국 이후 뉴스 등을 제외하고는 90% 정도를 외주제작에 의존하고 있다. 이렇듯 종편은 출발부터 지상파와는 다르기 때문에 외주제작 편성 비율이라고 하는 규제는 의미가 없다”며 “정책의 출발부터 달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종편의 교양 프로그램 등 외주제작에 있어서 ‘콘텐츠’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제작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협력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를 담은 외주정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 언론노조, 민언련, 언론연대, 언소주, 동아투위, 80해직언론인협의회, 새언론포럼, 자유언론실천재단은 8일 방통위 위치한 과천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돈받고 뉴스 파는 종편', 방통위는 철저히 조사하라"고 촉구했다ⓒ미디어스

최선영 PD는 “MBN폭행사건처럼 방송사와 제작사 간 일을 하면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그런 경우, 갑을관계에 따라 해당 방송사 내 윤리위에 해결을 기댈 수밖에 없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방통위를 비롯한 외부의 감시가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협찬에 따른 방송프로그램 제작을 막을 수 없다. 제2의 백수오 사태는 이미 노정돼 있다고 보는 게 맞다”고 우려했다.

최선영 PD는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 관계를 협력관계로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독립PD들이 저항정신을 가져야 한다”면서도 “지상파에서 먼저 나서주지 않으면 어렵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독립제작자들이 저항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닌 것에 대해서 아니라도 말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지지해줄 수 있는 작은 행동. 생존이라는 이야기들을 흔하게 하는데, 목숨만 연명하는 생존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개인적으로 저항 한번 대차게 했다가 프로그램 잘렸지만 지금까지 그 일에 후회 없다. PD로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을 했으니까. 그때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반값에 그 프로그램을 가져가려했던 제작사들을 똑똑히 기억한다. 돈만 벌려고 하는 순응구조, 자기 착취가 이런 관행을 정착시킨 것이 아닌가 반문할 필요도 있다.…(중략)…KBS <다큐3일> 좋은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많은 부분들은 VJ들이 찍는다. 하지만 그에 따른 영광은 KBS에만 돌아간다. KBS에서 얼마 전 <프로듀사>(김수현·공효진·차태현·아이유 주연)이 방영됐다. 해당 드라마를 보면, <1박2일>을 제작하는데 차태현과 백승찬만 일하는 줄 알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그 프로그램 역시 90% 이상이 KBS 외부인력이 동원돼 제작되고 있다. 결국, 동등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도적으로 지상파들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지상파에서 먼저 외주제작 관행의 잘못된 점에 대해 자정적 선언을 해줬으면 한다”

▲ MBN미디어렙 영업일지 관련 기자회견에 등장한 '입금하신대로 만들어드립니다' 피켓ⓒ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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