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지방선거 전후로 구미 지역의 두 국회의원, 김성조(갑)·김태환(을) 의원은 경북 지역 의원 가운데 가장 인기 없는 의원으로 꼽혔다. 당시 지방선거 결과 또한 두 의원의 참패로 끝난다. 구미 갑·을 양쪽에서 한나라당 당선자가 과반에 못 미칠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선거 이후 잠잠하던 김태환 의원의 인기가 특별히 더 하락하지 않은 데 반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의정보고서를 배포하던 김성조 의원의 인기는 더욱 추락했다는 점이다. 벌써 격세지감이지만, 2011년과 2012년 초는 한나라당의 대몰락이 예고되고 있었다. 구미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김성조·김태환 의원 모두 공천에서 탈락해도 시원찮은 상황이었다. 문제는 새누리당내에서 이들을 대체할 만한 주자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때 구미 갑 지역에서 김성조 의원의 대항마로 거론된 것이 심학봉 현 국회의원이었다. 지식경제부 관료인 그가 총선에 도전한다는 전망은 2011년 여름께에도 파다했었다. 곧바로 “심학봉 씨가 뜨고 있다더라”는 설이 퍼졌다. 실제로 구미 갑 지역 공천에 도전할 사람은 숱했으나, 마치 그가 김 의원에 대한 유력한 도전자로 이미 선택된 분위기였다. 그가 공직에서 사퇴하기도 전이었다.

▲ 무소속 심학봉 의원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납득하기 힘든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가장 큰 핸디캡은 구미와의 관계가 얕았던 것이다. 3년동안 구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것이 전부였다. 포항 출신이라 ‘영포 라인’, ‘친이계’라는 소문도 떠돌았다. 차관급도 아닌 국장급 공무원이 현역 의원의 유력한 대항마로 꼽히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2011년 6월 지식경제부의 경제자유구역 기획단장으로 발령난 것이 구미의 현안에 접근할 기회처럼 비쳐졌지만 실은 “좌천”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사표를 제출한 심학봉 씨는 즉시 구미 갑 지역구를 누비고 다녔다. 2011년 가을이었다. 총선이 5, 6개월쯤 남은 시점으로, 당연히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니었다. 그는 선거 명함이 아니라 평범한 본인 명함을 만들어 배포하고 다녔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침이면 구미시청이나 박정희체육관에 나들이를 떠나는 차량이 모였다. 그곳이 주로 심씨의 홍보 무대였다. 일단 무턱대고 제 명함을 내밀었다. 그러면 소문을 들은 사람 몇몇이 물었다. “총선 준비하신다고요?” 나도 노동자대회 참석차 상경하는 길에 그 풍경을 본 적이 있다. ‘저렇게까지 하고 다녀야 하냐’며 조금 넌더리가 나다가도 ‘하여간에 정치가 뭔지...’ 하며 동정하는 마음도 들었다.

극성스러운 운동이 효과를 거두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심학봉 당시 예비후보는 구미 갑 한나라당 빅2에 접어들었다. ‘100층짜리 박정희 컨벤션 센터 건립’으로 가히 전국적인 논란을 조성하기도 했다. 세간에서는 ‘포항 출신’이라는 약점을 최대한 만회하고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에게 잘 보이려는 책략이라고 해석했다. 숱한 후보들이 공천을 신청하거나 공천신청을 할 수 있다고 예고되었지만, 선거 때마다 습관처럼 나오는 사람들, 심지어 시장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번갈아 나오느라 2년에 한 번 선거를 치르던 사람들, 한나라당 공천에 불복해서 복당하기가 민망해진 사람들 사이에서 심씨가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이 30대 중소기업 CEO를 찾고 있다더라”는 첩보도 눈 녹듯 사라져갔다. 결국 새누리당은 김성조·심학봉 두 사람을 최종경선 후보로 선정했다.

소위 ‘체육관 경선’을 관철시키지 못한 것이 김성조 의원의 대실수였다. 두 사람이 승부를 가린 전화 여론조사에서 김 의원은 현역 프리미엄을 안고 심학봉 씨에게 앞섰다. 그러나 심씨는 새누리당이 부여하는 ‘이공계 출신 가산점’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물론 이 경선의 여파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가산점이 섞인 것은 선거법상의 당내 경선에 해당되지 않았다. 김 의원에게는 탈당해서 출마할 기회가 부여되었다. 하지만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구미를 다녀간 직후 김성조 의원은 출마를 포기했다. 친박연합 후보가 ‘포항 친이 후보 대 구미 친박 후보’라는 현수막까지 붙였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고, 야권 후보들은 지역의 야당 지지율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등 함량 미달이었다. 심학봉 후보는 60%의 득표율로 너끈히 당선되었다.

그러나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인물’ 심학봉 의원의 당선 이후는 순탄치 않았다. 처음 그는 식당 여주인에게 ‘반말’한 사건으로 입길에 올랐다. 그의 ‘스타일’로 보아 넘길 수 없는 문제였다. 선거 기간 깍듯이 인사를 하고 다니며 동정심까지 유발했던 그는 당선하기 무섭게 반말을 쓰고 다녔다. 나도 경험자였다. 선거 전에는 마치 공천권자 모시듯 하더니 끝나고 나자 부하 직원처럼 대했다.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다.

그는 인터넷카페 ‘심봉사’라는 사조직을 만들어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기소되어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 일곱 달여만에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 사건으로 임기의 절반 가까이를 잡아먹었다. 구미시민 17만명이 단수사태에 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한 소송에서 ‘김앤장’이 피고측 수자원공사를 변호하는 사이, 심학봉 의원은 ‘김앤장’의 변호를 받으며 의원직 유지에 사활을 걸었다. 2심에서마저 당선무효형이 내려지며 재보궐선거 도전자만 하나둘씩 늘어갔다.

하지만 2013년 11월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예전 김성조 의원이 공천한 인물 상당수를 내보내 나쁘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었다. 언젠가부터 재선이 유력하다는 예측이 돌았다. 지난 7월 23일, 그는 지역민들에게 LG 투자유치에 성공했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 문자를 받은 사람 중 몇이나 그가 성 스캔들에 연루되었음을 알고 있었을까. 이후의 일은 특별히 설명하지 않겠다. 심 의원은 결국 탈당을 선택했고 이제 국회 윤리위원회의 처분을 앞두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7월 13일 오후 11시부터 1시간 가량동안 'A씨'와 심 의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A씨는 무슨 일인지 신고 내용을 꺾어버렸고, 그 이전에 그들은 다시 만났으며, 이런 사정들이 궁금하지도 않은지 경찰은 쉽게 수사를 무혐의로 종결했다.

이 와중에 웃기지도 않는 억지 논리도 빠지지 않았다. 다음은 한국유통신문 김도형 경북지부장이라는 사람의 기사다.

“난생 처음 겪는 사건에 대해 순진무구하리 만치 제대로 대처를 못하고 샌드백 마냥 얻어 터지는 국회의원의 현 모습에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질 정도다.”

“지난 달 13일에 발생한 사건을 여성은 24일에 성폭행 관련으로 신고했다고 한다. 사건 발생 뒤 10일 상간을 두고 고민 끝에 신고를 했을 테지만, 그 기간내에 모종의 음모가 있을 개연성도 없잖아 있어 보인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 정치인들은 다른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속성이 있고 상대방이 구설수에 오를 사안들이 있다면 언제나 자신들만의 수첩에 기록 남겨둔다.”

“이번 사건이 언론에 유출된 배경에는 차기 총선의 경쟁자들간의 모종의 딜이 있었을 개연성도 커 보인다.”

“견실한 정치인의 어두운 면을 포착해 2년 전부터 오늘의 일을 계획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았을까 고려해 볼 일이다.”

당초 피해를 호소한 여성이 경찰서가 아닌 성폭력상담기관에 신고했기 때문에 경찰 신고까지 시일이 늦춰진 점, 경찰이 심 의원의 지인이라는 모 언론인에게 신고 사실을 유출한 점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뇌내망상에 의거한 식언이다. 그런데 이 언론인이야말로 심 의원을 확인 사살하는 장본인임을 또 누가 알았으리오. 8월 7일 김 기자는 “새누리당 텃밭 경북 인물탐구(1)-무주공산 된 새누리당 구미갑지구, 치열한 공천 경쟁 예고”라는 제하의 기사를 걸며 곧바로 경마장식 보도에 돌입했고, 촉망받지만 아직 총선 후보로 거론되지 않은 모 경북도의원을 거명하고 매우 긍정적으로 소개했다. 심학봉 의원의 새누리당 탈당을 두고 김 기자 자신이 “구미 르네상스는 끝 났나?”, “지역사회는 너무나 냉정한 모습을 보여 소름이 끼칠 정도다”라고 적은 지 하루만의 일이었다.

뜬금없이 심학봉 의원의 선거법 무죄 판결을 기원해 화제를 모았던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구미 지역 인사도 이번 사건에서는 곧바로 등을 돌려버렸다. 박정희체육관에 모인 관광차들 사이에서 명함을 돌리던 심 의원의 예전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권력은 무상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날 심학봉 씨처럼 무리를 해 가며 총선에 도전할 이들은 올 가을 또다시 등장할 것이다. 경마중계식 언론보도도 차고 넘칠 것이다. 권력을 업거나 권력에 깔리는 사람은 달라지지만, 권력을 둘러싼 움직임과 습성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김수민 / 경북녹색당 사무처장
안티조선운동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돼 개혁당과 민주노동당에서 정당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말 민주노동당이 분리된 후 진보신당에 몸을 담았다가 2009년 탈당해 출마를 결심하고 고향인 구미로 내려가 무소속으로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시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대형폐기물 민간위탁을 막는 조례를 재개정하고 구미 단수 사태에 대해 시민단체들과 수자원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 부분 승소하는 등 모범적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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