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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죠시 매니페스토’엔 대체 어떤 ‘매니페스토’가 있었는가[코믹 소사이어티] 서브컬쳐 매니아의 두 가지 자기선언
성상민 / 만화평론가 | 승인 2015.08.16 09:26

한국에서 ‘서브컬쳐’(또는 매니아 문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다른 국가들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에서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어린이의 전유물이었고, 심지어는 어린이들마저도 서브컬쳐를 즐기는 것에는 많은 애로사항이 뒤따랐다. 밖으로 놀러 나간 사이 엄마가 방에 있던 만화책을 종이박스에 담아 버렸다는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서브컬쳐에 대한 편견은 표현의 자유가 없던 시기와 겹쳐 큰 압박으로 작용했고 그 후유증은 2015년 현재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브컬쳐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나아졌지만, 남들에게 쉽게 드러낼 수 없는 (또는 없다고 생각하는) 취향을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들만을 위한 공간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열광하고 좋아하는 서브컬쳐를 즐긴다. 그렇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 모르는 영역에서 어떤 서브컬쳐는 자생적으로, 또는 해외에서 들어온 코드를 자신들이 재해석하며 뿌리를 내렸다.

그러한 뒤편의 영역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에 있는 영역은 바로 동인(同人) 문화가 아닐까. 특히 그 중에서도 동성의 캐릭터를 서로 잇는 BL(Boys Love, 남성 캐릭터들 사이의 사랑을 좋아하는 취향 혹은 작품), 백합(百合, 여성 캐릭터들 사이의 사랑을 좋아하는 취향 혹은 작품) 계열의 동인 문화가 그러하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주인공이 담임 선생님에게 아이돌 H.O.T.의 멤버들을 가지고 만든 BL 소설을 들키는 에피소드는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런 문화나 코드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문화는 외부에 자신들의 문화가 드러나는 것을 꺼려하거나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다. 특히 BL이나 백합 같은 코드를 즐기는 동인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동인 행사가 언론을 통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며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일부 BL 커뮤니티에서 미성년자의 가입을 막겠다는 이유로 주민등록증 스캔을 요구하거나 또는 자신의 얼굴, 손등 같은 신체 일부를 제출하는 폐쇄적인 조건을 내거는 것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민감함에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언론사의 경우 동인 활동에 대해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서브컬쳐의 편견을 투사해 동인들을 매도하는 보도를 한 사례가 있었고, BL 커뮤니티의 경우 미성년자가 당신들의 커뮤니티에서 불건전한 작품을 보고 즐긴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거나 심지어는 경찰로부터 수사를 받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지점들을 이해한다고 해도 현재의 동인 문화에 폐쇄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진챙총, 글과 전시로써 무언가를 선언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군가는 BL 문화를 즐기는 동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취향을 숨기지 말고 당당히 드러낼 것을 주문했다. 그는 처음에 글로 자신의 주장을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BL 동인들이 “일반 대중들로부터 핍박과 차별을 받을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있으며 “19금 동인지를 제작한다거나 이러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걸 남들에게 들켜 패가망신 할 확률보다는, 임대차보호법을 숙지하지 못해 패가망신할 확률이 훨씬 높다”고 외쳤다. (2015년 2월 5일, <겁쟁이 페단 : 살아 남아라 후죠시>, 에이코믹스) 하지만 글로는 뭔가 부족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는 지금 약간 수그러들었지만 한창 전시가 개막할 때 인터넷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던 한 편의 전시를 개최했다. 그의 닉네임은 ‘진챙총’이고, 그가 만든 전시의 이름은 <후죠시 매니페스토>였다.

‘후죠시’는 일본어 ‘腐女子’의 독음으로 직역하자면 ‘썩은 여자’를 의미한다. 대체 무슨 뜻인가 하겠지만, 이는 일본에서 BL 문화를 즐기는 동인 여성들이 자기 스스로를 칭하는 속어이다. 그리고 뒤에 붙은 단어이자 선거철마다 많이 보았던 용어인 ‘매니페스토’(manifesto)는 ‘선언’을 뜻하는 영단어이다. 그의 글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전시는 제목에서부터 BL을 즐기는 동인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선언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전시가 진행 중인 영등포의 대안예술공간 ‘커먼센터’에서 내건 전시 소개문에서도 “동인지 문화는 이제껏 꽤 폐쇄적인 형태로 향유되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 역시 진챙총이 올해 초 자신의 글에서 밝혔던 동인들의 폐쇄성을 깨뜨리겠다는 선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전시는 대체 무엇을 선언하고 있는 것인가.

전시는 공식적으로 8월 7일에 개막했지만, 오프닝은 그 전날에 있었고 커먼센터의 공식 계정과 전시에 다녀온 이들이 SNS를 통해 현장의 모습을 올리면서 이미 논란이 끓고 있던 상황이었다. 전시에 비판적인 이들은 작가가 저작권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전시에 걸린 작품들은 진챙총 본인의 작품이 아니라 허락도 없이 다른 이들의 작품을 그대로 가져와 전시했던 것이다. 논란이 끓어오를 때 하필이면 커먼센터의 홈페이지는 트래픽이 초과되며 사이트 접속이 불가능했고, 작가 진챙총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삭제하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되었다. 그 정점은 아마도 전시 개막 당일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이 전시장에 출동한 것이었으리라. 과연 대체 무엇을 전시하고 있기에 이토록 뜨겁게 논란이 일었을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전시 개막 이틀째인 8월 9일 지인과 함께 문제의 전시를 보러 영등포에 갔다. 대부분의 대안예술공간이 그렇듯 커먼센터는 꽤 낡고 한적한 빌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영등포역에서 가깝고 대로변에 있긴 했지만 영등포역 번화가와 달리 한적한 느낌이 커먼센터 근처를 에워싸고 있었다. 전시장의 문을 여니 드디어 논란의 전시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전시된 형식은 평범했다. 흰, 그러나 원래 공간의 흔적을 드러내듯 이리저리 우둘투둘한 질감이 느껴지는 벽에 현수막용 천에 인쇄된 그림들이 빼곡히 걸려있었다. 천에는 마치 이불 같은 느낌으로 일정한 간격의 바느질이 박혀있었다.

   
 

분명 전시에 걸린 그림은 진챙총 본인이 직접 그린 그림은 아니었다. 아니, 그 사실을 대놓고 밝히고 있었다. 전시장 가운데에는 전시에 대한 팸플릿이 놓여있었고, 그 팸플릿에 자신이 이 전시에 사용한 그림의 출처와 원래 작가를 일일이 다 밝혀 놓았던 것이다. 매우 친절하게도 이 그림은 어떤 작품에 대한 2차 창작이며, 어떤 커플링이 담겨 있는지도 서술하고 있었다. 헌데 그림을 보다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그림을 그대로 인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왜곡이 가해진 기분이었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고서야 그 왜곡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림에는 픽셀 단위별로 가로 세로에 선이 그어져 있던 것이다. 같은 날 열린 포럼에서 미술평론가 임근준의 발제를 통해 밝혀진 이 스캔라인의 정체는 그림을 일일이 스크린으로 띄워 특수 카메라로 촬영한 뒤 다시 그것을 출력하면서 생긴 것이었다.

전시는 과연 무엇을 선언하고 있는가

이렇게 총 33점 (팸플릿에서는 34점이라 적혀 있었지만 실제 확인 결과 한 점이 없었다.) 의 그림을 오랜 시간을 들여가며 감상하고 나서 참 많은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이 전시를 저작권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는 없었다. 타인의 저작물을 그대로 가져오는 전시의 경우 현재까지도 논란의 영역에 있는 부분이지만 이젠 그러한 방식의 전시는 너무나도 흔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부류의 전시에 대해 계속 윤리적, 도의적인 문제제기가 일어나지만 이젠 단순히 그 기법 자체만으로 전시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정작 전시가 담고 있는 내용에 있었다. 분명 작가는 전시 이전에 자기가 남긴 글을 통해 BL 동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취향을 폐쇄적으로 숨기지 말고 당당하게 드러낼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주장은 이번 전시에서도 여전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이러한 주장에 비해 아이러니하게도 협소한 구색을 갖추고 있다. 당장 전시에 걸린 그림부터 BL 동인 전반을 담기 보다는 어떠한 ‘취향’이 발견된다. 전시 되지 않은 한 점을 포함한 총 34점의 ‘작품’은 주로 <쿠로코의 농구>, <도검난무>, 그리고 <Free!>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들 작품들이 한-일 양국의 동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라고 넘어가기엔 작품에 묘사된 캐릭터나 커플링 역시 한 쪽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과연 이 그림들은 이 전시가 노리는 주 대상인 ‘후죠시’들의 상황을 얼마나 담고 있는 것인가.

   
▲ 영등포 커먼센터의 <후죠시 매니페스토> 전시의 일부. 전시를 통해 걸린 다른 작가들의 그림들은 직물에 인쇄되어 일정한 간격으로 바느질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림 자체에는 픽셀 단위로 가로세로 선들이 박혀 있다.

물론 진챙총은 자신의 지난 글들에서 자신의 동인적 취향을 계속 드러내었고, 전시 소개문에서 이 전시가 담고 있는 내용에는 “후죠시 진챙총이 선언하고자 망상하는 것”이 있다고 밝혔으니 아 전시는 자신의 취향을 오프라인으로 드러내는 것을 통해 자신과 같은 BL 동인들에게 주장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점에서는 자기모순이다. 그는 익명의 닉네임으로 자신의 논지를 주장했고, 이는 자신의 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전시라 치기엔 정작 그 역시 일종의 음지에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러한 표현 방법은 그녀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BL 동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다. 단지 표현하는 장소가 동인 행사가 아니라 예술공간일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전시는 무엇을 선언하고 있는 것인가? 전시의 소개문이나 다른 동인들의 그림을 전시한 방식은 분명 무언가를 선언하려 노력한 흔적이 느껴진다. 그림을 단순히 인쇄하는 것이 아니라 천에다 인쇄한 뒤 다시 일정한 간격으로 바느질을 하고, 그림 자체에도 스캔라인을 넣은 것은 단순히 그림을 그림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촉구하는 듯하다. 이러한 효과를 통해 전시장의 그림들은 어떤 점에서는 꼭 캐릭터를 인쇄한 이불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컴퓨터 모니터를 가까이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가지 못한다. 무언가를 주장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전시는 스스로 협소해짐으로써 별다른 충격이나 파급을 주지 못한 채 그대로 침잠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선언하지만 선언하지 못하는 전시, 선언하지 않지만 선언하는 전시

이렇게 ‘선언’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정작 많은 부분에서 비어 있던 전시는 조금씩 논란이 식어가며 점점 해프닝으로 전락하고 있다. 행사 전날 급하게 장소를 변경하고, 작가마저도 참석을 취소한 채 작가 없이 작가의 전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리가 된 포럼에서 평론가 임근준은 발제문을 통해 “후죠시 아트의 탄생을 기대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그가 같은 글에서 밝힌 것처럼 이 전시는 일종의 ‘파산 선언’이 되고 말았다. 그는 또한 발제문에서 이윤성, 김화현 등의 작업을 언급하며 미술 분야에서 서브컬쳐나 동인적인 코드를 활용한 작품이 나왔음에도 전혀 동인들이 주목을 하지 않는 상황과 동인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을 더 발전시키거나 오프라인에서 자신의 취향을 당당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의도를 밝힐 작가 본인이 어딘가로 숨은 상황에서 이러한 질문들은 갈 곳을 잃은 상황이었다.

   
▲ <후죠시 매니페스토>와 같은 공간에서 열린 전시 <지우맨의 탄생>. 앞의 전시와 달리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선언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시야 말로 자신의 취향과 욕망을 선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매니페스토’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전시는 같은 날에 개막한 장지우 작가의 <지우맨의 탄생> 전시였다. 그는 영상물과 설치 작업을 통해 자신의 실제 모습과 취향을 동시에 형상화했다. 전시가 열리는 커먼센터의 4층에 올라가 맨 처음 보이는 방에서는 작가가 만든 자가 특촬물인 <지우맨 에피소드 1>이 상영된다. 방 안에서 작업을 하는 작가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히어로 ‘지우맨’을 만나 ‘지우맨’으로 변신할 수 있게 되고 그 순간 동네를 습격한 괴물을 무찌른다. 그 옆의 공간인 <장지우의 방>에서는 마지 실제 작가의 방을 보는 것처럼 후줄근하게 바닥에 늘어진 이불과 방에 덕지덕지 붙여진 각종 아이돌과 영화, 애니메이션의 포스터가 눈에 띈다. 하지만 히어로 만화가 잔뜩 꽃혀진 책장 사이의 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관람객들은 방금 전에 보았던 지우맨의 비밀기지 안으로 초대받는다.

BL 취향 보다는 예전보다 덜했고, <어벤져스>를 위시한 히어로물이 흥행하면서 예전보다는 덜해졌지만 여전히 특촬물을 좋아하면 ‘애들’이냐는 소리를 듣는 상황에서 장지우 작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자신의 취향이 특촬물임을 보여준다. 평범하게 작가로 살던 자신이 지우맨으로 변신하고, 평범하던 방 뒤편에 지우맨의 비밀기지가 존재하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내면 아래 있는 욕망을 드러낸다.

전시는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선언하고 있지 않지만, 작가는 자신이 특촬물의 매니아임을 보여주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욕망과 취향이 무엇인지를 전시 관람객들에게 선언하였다. <후죠시 매니페스토>에 필요했던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취향도, ‘후죠시’ 모두의 취향도 모두 제대로 선언하지 못한 전시는 결국 논란 이상도 이하도 가지 못한채 서서히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중이다.

성상민 / 만화평론가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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