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팔이' 제작발표회 때 정웅인은 “벌써부터 라이브방송이 되고 있다”라는 말로 위험을 예고한 바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4회의 방송 사고는 너무도 충격적이다. 후반부에 같은 장면이 두 번 반복되는 사고가 드러났다. 이런 편집사고는 이미 방송 중에 후반부 편집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많은 기대를 모았던 드라마 '용팔이'의 불안한 미래를 보는 듯 했다. 어차피 한국드라마는 초반 몇 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쪽대본에 의지해 촬영하고, 그나마도 후반부로 가면 생방체제로 돌입한다는 것은 새로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용팔이'는 시작부터 생방송처럼 방송하면서 편집을 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제 막 시작된 드라마에 편집사고는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너무도 실망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4회의 방송 사고는 용서해주고 싶은, 아니 용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4회가 다룬 내용이 격렬하게 우리사회 지도층의 본질을 저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원과 채정안이 대화하던 도중 스테파니 리가 다급하게 들어와 피신을 요청한다. 영문도 모른 채 주원은 병실로 달려가 피난 매뉴얼을 따라 김태희를 준비된 차량으로 이동시킨다. 그러나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주원은 김태희를 태운 차량키를 볼모로 코드 레드의 내용을 캐묻는다. 코드 레드는 병원에 심각한 위험이 있음을 의미하고, 병원은 그 위급한 상황에서 일반환자들에 앞서 VIP들을 먼저 피신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하지 않았지, 세월호 참사를 그대로 병원으로 옮겨 놓았다. 어디 세월호만의 문제인가. 병원이 아니라 국가 전체에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에도 아마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우리에게는 존재한다. 실제로 6.25 때 경험한 바도 있지 않은가.

사실 '용팔이'는 멜로드라마다.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묵직한 풍자를 예상치 못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멜로드라마에 엄청난 풍자가 습격한 것이다. 다소 어색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이 '용팔이'라는 캐릭터에는 많은 풍자적 요소가 많았다. 김태현이 '용팔이'가 되어야만 했던 이유부터가 돈에 의해 왜곡된 사회질서에 대한 시니컬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또한 김태현이 12층 소속이 되자 동생의 장기이식 순위가 높아진 것도 사실 여부를 떠나 비뚤어진 의료현실에 대한 강력한 펀치를 날린 것이었다.

멜로를 습격한, 멜로보다 더 무거운 풍자에 우선 박수를 치고 싶다. 잔뜩 멜로를 기대하던 이들에게는 이게 웬일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겪고 있는 안전위기 상황은 멜로드라마 아니라 어디라도 자꾸 풍자하고, 비판해서 잊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세월호도 거의 잊혀 가고, 심지어 불과 얼마 전까지 공포에 떨었던 메르스마저 아주 먼 일로 치부되는 현실 속에서 요즘 가장 뜨거운 드라마에서 다뤄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어쨌든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겪은 후에 드디어 김태희가 눈을 떴다. 그리고 주원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는 더 이상 무한반복됐던 사고영상이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며 연기할 것이라는 신호일 것이다. 멜로도 시작되고, 한신병원을 잠식하고 있는 온갖 비리들과의 전쟁도 시작될 것이라는 의미다. 더욱 흥미진진해질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아직은 검증되지 못한 김태희의 발연기 경계령이 내려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공존하는 복잡한 심정을 맞는다.

'용팔이'는 주원뿐만 아니라 정웅인, 채정안 등 해줘야 할 배우들이 적절하게 존재감을 나누며 안정적인 출발을 보였다. 이제는 김태희만 해준다면 올해 최고 드라마로서 방점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깨어난 김태희가 화룡점정이 되어줄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잠들어 있는 편이 도움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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