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아닌 CCTV로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답은 ‘가능하다’이다. 지난 25일 저녁 인디스페이스에서 진보네트워크센터 주최로 <Faceless : Chasing Data shadow>(감독: Manu Luksch, 제작년도: 2007년)라는 50분물의 SF영화가 상영됐는데, 이 영화는 실제 런던에 설치된 CCTV로만 찍었다고 한다. 이 소식에 어떤 영화가 나올지 궁금해서 영화관을 찾았다.

▲ 상영된 'Faceless : Chasing Data shadow'의 한 장면
CCTV의 영상으로 제대로 영화가 나올 수 있겠어(?)

고정되어 한 곳만 응시하는 CCTV로 영화를 만들었다기에 큰 기대 없이 관람했다. 그러나 영화는 평균이상의 영상미학을 제공했다. ‘뭐 줄거리나 있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는 ‘단일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전달해주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주인공 ‘나’를 비추는 수많은 CCTV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 곳에 서 있으되 CCTV는 나를 좌·우·상·하에서 바라보고 있었고 원·근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움직여 다른 곳으로 이동했지만 CCTV는 지하철, 버스, 직장 안, 길거리, 공원, 백화점 등 다양한 길목에서 끊임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러한 CCTV는 신선한 영상을 제공했고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영화에서는 “현재 런던에만 총 450만 여개의 CCTV가 설치돼 있으며, 런던은 지구상 감시용 카메라인 CCTV가 가장 많이 설치된 도시”라고 밝히고 있다. 결국 이러한 CCTV의 자산(?)이 새로운 영상미학을 만들어낸 셈이다.

우리나라의 CCTV 설치 현황과 문제점은?

우리나라에는 현재 인구 20명당 1개의 CCTV가 설치돼 있다고 한다. 런던만큼은 아니지만 꽤 높은 수치임에는 틀림없다. 그 설치 목적도 다양하다. 교통 상황을 볼 수 있는 CCTV가 도로 곳곳에 설치돼 있고 도난 및 범죄 예방을 위한 CCTV는 아파트의 필수요건이 되어버렸다. 쓰레기투기를 방지하기 위한 CCTV와 학교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CCTV, 그리고 지난 2006년 서울 마포대교에는 시위감시 및 자살방지를 위한 CCTV가 설치됐다.

서울 강남구에는 이미 372대의 CCTV가 설치돼 있으나 추가 설치한다는 것이 구청의 입장이다. <살인의 추억>으로 유명한 경기도 화성시는 ‘범죄 다발도시’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기 위해 CCTV 260대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군포시, 용인시 등도 CCTV를 크게 늘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CCTV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침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설치 목적에 맞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 지난 촛불집회 당시 경찰은 집회 참가자에 대한 기소의 증거자료로 CCTV영상을 이용했다. 광화문 골목골목마다 설치돼 있는 CCTV는 집회 참가자들의 얼굴을 줌인(Zoom in)하여 확인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CCTV는 교통 상황을 보기위한 용도로 설치된 것들이었다.

CCTV의 효과에 있어서도 많은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안경률 의원은 서울지방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방범용 CCTV의 설치는 크게 늘었지만 범죄예방에는 효과가 없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CCTV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CCTV로 영화제작이 가능한가일 것이다. 이날 상영된 <Faceless>는 영국의 개인정보보호법에 의거해 제작된 것으로 자신이 찍힌 ‘CCTV’와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고 찍힌 사람이 자신임을 증명하면 그 영상을 구할 수 있도록 돼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개인정보보호법이 없지만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에 정보주체의 열람청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물론 CCTV 영상제공에 대한 규정이 없긴 하지만 정보주체에게 권한이 있는 것은 명확하기에 영화제작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여기에 더해서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활동가는 “몇몇 공공기관에서는 현재 금지되고 있는 음성녹음 서비스 기능까지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에서 공공기관의 CCTV의 경우 음성녹음 기능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몇몇 기관에서는 이를 어기고 지속적으로 음성녹음이 가능한 CCTV를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CCTV를 이용하면 영국보다 더 리얼한 영상을 얻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따로 2차 음성녹음(더빙작업)을 하는 비용도 절감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얻을 수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Faceless>에 대해 영국 BBC는 ‘CCTV 카메라가 찍어내는 일상의 이미지’라며 ‘영화 제작비용을 줄이는 놀라운 방식’이라 평했다고 한다. CCTV 증가 속도와 음성녹음을 비롯한 줌인, 회전 등 기능이 추가되는 추세를 보면 아마도 우리나라에는 영국보다 더 리얼하고 스토리도 풍부한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영화를 두고 BBC는 뭐라고 평할까?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의문. 그런 사회에서 과연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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