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가 KBS와 MBC 두 공영방송에 부적격 인사를 대거 내리꽂았다. 13일 방통위는 제41차 위원회 회의를 열고 KBS 이사 11명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9명에 대한 인선을 마무리했다. 특히 이번에는 인선 기준과 원칙에 대한 협의는 전혀 없었고, 여야의 ‘정파 갈라먹기’만으로 공영방송 이사진이 결정됐다. 애초 시민사회와 방통위 내부에서도 ‘부적격 인사’로 지목된 극우 인사들이 모두 공영방송에 내려 앉게 됐다.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이 있는 만큼 KBS MBC 구성원들은 최악의 지배구조와 맞딱뜨리게 됐다.

방통위는 차기 KBS 이사로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장주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 회장 △전영일 민주언론시민연합 부이사장 △권태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전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대표이사) △강규형 명지대 교수△김경민 한양대 교수(KBS 객원해설위원) △변석찬 KBS비즈니스 고문(전 KBS라디오센터장) △이인호 현 KBS 이사장(전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이원일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차기환 현 방문진 이사(변호사) △조우석 전 중앙일보·문화일보 기자 등 11명을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김서중 교수부터 네 사람이 야당 몫이다.

방통위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 △유기철 전 대전MBC 사장(현 우송대 초빙교수) △이완기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전 미디어오늘 대표이사) △최강욱 현 방문진 이사(변호사) △유의선 이화여대 교수(구 방송위원회 출신)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이인철 변호사(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고영주 현 방문진 감사(변호사) △김원배 현 방문진 이사(전 목원대 총장) △김광동 현 방문진 이사(나라정책연구원 원장) 등 9명을 임명하기로 결정했다. 앞선 세 사람이 야당 몫이다. 감사로는 한균태 경희대 부총장(전 한국언론학회 회장)이 임명됐다.

▲13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에게 추천하기로 결정한 KBS 이사 11명 명단과 방통위가 임명하기로 결정한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명단. (자료=방송통신위원회.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애초 차기 공영방송 이사 선임은 지난달 말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과 야당 추천 상임위원 간 의견 차이로 방통위는 보름 가까이 파행을 겪었다. 국회 야당과 언론운동진영은 차기환 방문진 이사의 KBS 이사 추천(KBS-방문진 3연임), 이인호 KBS 이사장 연임, 고영주 방문진 감사의 이사 임명, 김광동 방문진 이사의 3연임, 김원배 이사의 연임 등에 반대해왔다.

김재홍 고삼석 두 상임위원은 지난달 27일 공영방송 초유의 ‘3연임’ 반대, 정파식 갈라먹기 반대, 방송의 공적 책임 구현 위한 적임자 선임 등 3대 원칙을 제시하며 의결을 보이콧했다. 그러나 최성준 위원장 포함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들은 관행대로 여야 몫(KBS 7대 4, 방문진 6대 3)을 나눠 선임하자며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상임위원들은 의결 직전까지 줄다리기식 협의를 거쳤고, 결국 무기명 비밀투표를 통해 의결했다. ‘투표’라는 형식을 빌었지만 결과적으로 KBS 이사회를 여야 7대 4, MBC 방문진을 6대 3으로 나눈 셈이다.

공영방송 이사를 기존 관행대로 여야 몫으로 나눠 결정한 결과, KBS에는 ‘부적격’ 인사들이 모두 낙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통위 추천 인사를 모두 수용하면 이인호 현 이사장의 연임은 확정된다. 이인호 이사장은 특정 프로그램과 뉴스에 개입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하면서 KBS PD협회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차기환 현 방문진 이사는 ‘극우 성향’으로 세월호 유가족을 폄훼하는 일간베스트 글을 퍼 날라 자격 논란이 일었지만 결국 초유의 ‘3연임’ 인사가 됐다. 조우석 전 중앙일보 기자를 두고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차기환 만큼 (역할을 할) 주목해야 할 인물”라고 평가했다.

MBC 방문진에도 당초 시민사회가 우려했던 문제적 인사가 고스란히 떨어졌다. 고영주 현 방문진 감사는 이사 자리를 꿰찼다. 그는 공안검사 출신으로 재직 시절 ‘부림사건’ 담당 검사였다. 그는 세월호 유족을 ‘떼쓰는 사람들’에 비유하며 파문을 일으켰으나 지난해 새누리당 추천으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위원으로 임명됐다. 연장자를 이사장으로 호선하는 기존 관행을 고려하면 고영주씨가 이사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광동 이사는 방문진에서만 ‘3연임’을 한 인사가 됐다.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으로 알려진 ‘친박’ 김원배 이사 또한 연임에 성공했다.

최성준 위원장은 ‘결국 여야 몫을 갈라서 추천‧선임한 것 아니냐’는 미디어스 질문에 “보시기 따라서 여러 가지 판단이 있을 수 있지만 위원들 사이에서 충분히 의견을 교환해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결이 미뤄진 이유’에 대해서는 “위원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그랬다”며 “늘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시간을 가지고 논의했다”고 말했다.

방송위원회 시절을 포함해 방통위가 공영방송 이사 선임 원칙과 기준을 정하지 않은 채 의결을 강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삼석 상임위원은 의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원칙과 비전을 가지고 선임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제안했으나, 나머지 세 분 위원들(최성준 허원제 이기주)은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김재홍 위원은 “방문진의 경우 여성이 한 분도 없고, KBS에는 둘 뿐”이라며 “사전협의를 하지 않고 불투명하게 인선한 결과다. 매우 죄송하게 생각하고 사과하고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 방송통신위원회 (사진=미디어스)

김재홍 고삼석 상임위원은 방통위 의결 직후 기자회견을 자청, 지난달 제시한 공영방송 이사 선임의 원칙과 기준을 관철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했다. 두 위원은 “최소한의 인선 기준과 원칙조차 사전 협의하지 않은 채 (선임이) 이루어져 매우 유감”이라며 “그 결과 전례없는 이사직 3연임과 함께 방송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제작 자율성을 침해하는 언행으로 물의를 빚은 인사도 공영방송의 이사로 다시 들어가게 된 점에 대하여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두 위원은 “이번에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중립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지만 그 미결의 과제는 어떻게든 성취해야 한다”며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 고공성 구현에 막중한 책임이 있는 이사회를 구성함에 있어서 지금과 같은 ‘원칙과 기준이 없는 인선’은 이번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 3년 뒤 인선 때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관계법령의 개정과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두 상임위원은 △정부의 후반기 주요 국정과제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을 포함시킬 것을 추진하고 △공영방송 3사 이사에 대해 ‘3연임’을 금지하는 입법화를 추진하고 △공영방송 이사의 ‘정치활동 금지’를 법에 명문화하며 △공영방송 이사(회) 평가제도 도입을 과제로 제안했다. 고삼석 위원은 “나머지 위원들이 4가지 제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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