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아리랑’ 서범석 Ⓒ신시컴퍼니
나라가 망했을 때 기득권자들은 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세력에 협력하기 쉽다. 서범석이 연기하는 뮤지컬 <아리랑>의 주인공 송수익은 양반이었다. 조선이 일본에 합병될 때 그는 잃어버린 기득권을 다시 찾기 위해 일본에 협력하기 쉬웠다. 하지만 그는 나라의 독립을 다시 찾기 위해 의병을 모으고 일본과 맞서 싸우는, 양반이라는 기득권자의 자리에서 물러나서 나라의 독립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애국자다.

하지만 송수익만 애국자일까. 송수익을 연기하는 서범석을 비롯하여 뮤지컬을 진두지휘하는 연출가 고선웅, 그리고 출연하는 배우들 모두가 애국자라는 생각을 해본다. 라이선스 뮤지컬이 판을 치는 한국 뮤지컬계에 창작뮤지컬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을 보며 든 생각이다.

인터뷰 중 배우 서범석은 고성웅 연출가를 ‘의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잘 풀리면 다른 영역으로 옮기고 무대를 떠나는 풍토에서도 무대 정신을 끝까지 놓지 않는 ‘문화 의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선웅이라는 문화 의병을 따라 창작뮤지컬의 발전을 도모하는 서범석이 있기에 한국 창작뮤지컬계는 아직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 <아리랑>을 기획할 때 맨 먼저 캐스팅을 염두에 두었던 배우가 서범석 배우라고 들었다.

“연출을 맡은 고선웅 형이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형이 준비하는 뮤지컬이 조정래 선생님의 아리랑이라는 건 미처 모르고 있었다. 나운규 선생님이 만든 아리랑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지인 중 한 명이 나운규 선생님이 두건을 쓰고 있는 사진 한 장을 전송해왔다. 왜 보내주었느냐고 물어보니 형이랑 닮아서 보내주었다고 하더라. 자세히 보니 너무나도 저랑 닮았다는 걸 느꼈다. 이 사진을 고선웅 형에게 전송했다. 그런데 그게 나운규 선생님의 아리랑인 줄로만 알았지 조정래 선생님의 아리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다른 작품 캐스팅 제의가 들어와서 그 작품 계약서에 도장 찍기 하루 전날 뮤지컬제작사 대표님과 고선웅 형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대본도 읽지 않고 아리랑을 수락했다. 그동안 창작뮤지컬에 많이 출연해왔는데, 창작뮤지컬을 하면 힘들고 외롭다. 라이선스 뮤지컬에 비해 찾는 관객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창작뮤지컬이 잘 되어야하는데’하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아리랑 제의를 받은 거다.”

▲ 뮤지컬 ‘아리랑’ Ⓒ신시컴퍼니
- 고선웅 연출가는 제작발표회 당시 <아리랑>의 정서를 ‘애이불비’로 표현했다.

“울음을 참지 못하고 슬픔을 표현하면 일차원적인 슬픔으로 남기 쉽다. 하지만 일차원적 슬픔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 안에 묻어있는 슬픔을 보여주어야 한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지만 아닌 척 하는 우리 선조들이 품은 슬픔이 애이불비의 정서다.

제가 연기하는 송수익은 슬픔을 초월한 인물이다. 고선웅 형은 이를 고급스럽게 표현하고 싶었다. 극 중 송수익이 연기해야 하는 슬픈 장면이 몇 있다. 슬픈 장면에서 송수익이 울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참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럴 때 송수익의 안타까움이 표현된다.”

- 슬픈 정서만 있는 게 다가 아니라 “안중근 형님은 얼마나 아팠을까”하는 대사에서는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사실 연습실에서는 더 많이 웃을 정도로 재미있는 대사다. 그런데 무대에서는 속으로 웃는 대사가 되었다. 이 외에도 재미있는 대사가 몇몇 있지만 작품의 동선이 빠르게 지나가다 보니 관객이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품의 기가 세서 웃지 못하는 것도 있다.”

▲ 뮤지컬 ‘아리랑’ Ⓒ신시컴퍼니
- 다른 창작뮤지컬에 비해 <아리랑>은 어떤가.

“공연을 한 번 끝낼 때마다 멍이 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뮤지컬 배우는 목 관리를 위해 이비인후과에 자주 간다. 이비인후과에 가면 몸 여기저기에 집게를 꽂고 몸 전반 상태를 체크하는 의료 기계가 있다. 공연을 마친 다음날 이비인후과에 가서 이 검사를 받아보니 ‘싸우고 오셨냐?’는 질문을 받았다.

몸이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큰 나머지 스파링을 하고 난 다음처럼 스트레스 지수가 높았기 때문이다. 연습할 때마다 100%가 아닌 120%로 연습해서 생긴 결과다. 120%만큼 연습하다 보니 120%만큼 무대에서 에너지를 뿜지 않으면 하지 않은 것 같은 공연이 아리랑이다.”

- <두 도시 야이기>처럼 역사를 다룬 뮤지컬에도 많이 출연했지만 역사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에도 출연했다. 기존 드라마와 역사 드라마가 차이점이 있다면.

“사극보다 일상적인 드라마가 어렵다. 혹자는 드라마와 무대 연기가 같다고 할지 모르지만, 무대에서 출발한 배우들은 발성이 최우선이다. 마이크의 힘을 빌리지 않고 무대 뒤까지 정확하게 발음이 들려야 한다.

그렇게 발성 연습을 하면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커진다. 드라마에서 발음할 때의 데시벨이 무대에서의 데시벨과 달라서 현대물을 할 때는 무대적인 발성을 해서는 안 된다. 자연스럽고 속삭이듯 발성해야 한다. 하지만 사극이나 시대극을 할 때는 무대에서 발성하던 배우를 방송만 하던 배우가 쫓아오기 힘들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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