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이명박 대통령의 '주가 발언'을 방송3사 모두 아침 뉴스에서 다뤘다. 하지만 KBS <뉴스9>와 SBS <8뉴스>에서는 해당 뉴스를 보도하지 않았다. 그날 아침뉴스에서 나타났던 미세한 시각차가 한나절을 지나 '보도'와 '비보도'로 멀어진 것이다(▷관련기사 : “주식사면 1년내 부자”…미네르‘박’의 예언?). KBS와 SBS 뉴스 편집데스크가 청와대에 '알아서 기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당일 현장상황을 다시 보자.

▲ 25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캡처.
대통령이 취재진이 있는 자리에서 "주식을 팔 때가 아니라 살 때입니다.지금 주식을 사면 1년 내에 부자가 됩니다"라고 발언했다. 그것도 미국 LA 동포간담회라는 공개적인 장소였다. 물론 이 대통령은 "그렇다고 사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원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라며 반농담으로 비켜섰다. 하지만 "IMF 시절 워싱턴에 있을 때 한국 가서 부동산 사고, 주식사고 해서 큰 부자가 된 사람을 봤다"며 성공사례를 적시했다. 그리고 "자기 이익이지만 어려울 때 사주는 것도 하나의 좋은 일"이라며 지금 주식을 사면 돈도 벌고 국가이익에 도움이 된다며 명분도 주었다. 또한 "주가가 최저일 때이며, 세계 여러 나라가 마찬가지로 1년 이내에 다 회복이 된다"며 한국 증시가 '바닥'에 왔으며, 세계증시를 보았을 때 과거에도 그래왔다는 근거와 전망을 제시했다. 돈벌어서 좋고 좋은 일 해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라는 얘기다.

MBC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이다. 미디어 중 가장 영향력이 높다고 평가되는 지상파3사 메인뉴스 중에 유일하게 MBC만이 대통령의 발언을 전달했다. 인터넷과 신문 등을 통해 대통령의 '주가 발언'을 접한 사람도 있겠지만, 방송 뉴스를 통해서만 소식을 듣고있는 많은 (MBC를 보지 않은) 국민들은 '고급정보'에서 소외 당했다. 더구나 '부자'가 될 수 있는 중요정보다. 하지만 KBS와 SBS는 메인뉴스에서 보도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일까?

메인 뉴스를 선택하는 '손' 즉 데스크에서 보도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사이 미디어에서 '경제위기','주가폭락'은 뜨거운 주제다. 당일 KBS <뉴스9>도 IMF·OECD “내년 한국 성장률 하향 조정”을 헤드라인으로 다루고 '한국 주가 반등' 소식도 전하는 등 시류를 반영하고 있다. 다만, KBS에겐 주류미디어 종사자도 접근하기 어려운 국내외 고급 정보를 보고받는 대통령의 '주가발언'은 큰 매력을 주지 못했다.

▲ 25일 KBS 뉴스9 화면 캡처.
이날 KBS 뉴스에서 눈여겨 볼 점은 '펀드 민원 급증…‘묻지마 판매’ 뒷북 제재'라는 꼭지 뉴스이다. 금감원이 투자위험을 충분히 알리지 않는 등 펀드 불안전 판매를 엄중 제재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세번 이상 적발되면 판매자는 자격을 영구 박탈당하고 회사는 영업정지까지 당할 수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주식투자의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이 대통령의 '주식 사면 부자 된다' 발언과 금감위의 '세번 이상 적발시 판매자 자격 영구 박탈 경고'라는 두 가지 사실이 이미지로 합쳐져 시청자에게 전달되면, KBS <뉴스9>는 이 대통령에겐 가장 비판적인 방송사 뉴스가 될 뻔했다. 최초로 대통령의 정례 라디오 방송도 하고 있는 KBS가 대통령의 직접적인 '주가 발언'을 뉴스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은 아이러니이다.

유일하게 MBC <뉴스데스크>가 대통령의 '주가 발언'을 메인 뉴스에서 보도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의 의미와 주식투자 위험에 대한 경고 메세지는 담아내지 못했다. 미디어가 '지금 주식사면 1년 안에 부자된다'는 발언을 '펀드 판매 창구 사원'이나 '주가 조작단 범죄자'의 이미지로 희화화시키고만 있는 것은 문제이다.

대통령의 말에도 "그렇다고 사라는 건 아닙니다"라는 발언도 담겨 있다. 맥락은 한국경제에 희망이 있고 본인이 앞장서 경제회생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 회생을 위해 미국경제 위기로 어려운 동포에게까지 한국의 주식을 사도록 '세일즈'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어려울 때 사주는 것도 하나의 좋은 일"이라는 발언의 취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쯤되면 자국내 국민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시선을 해석할 수 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외 순방을 통한 여러 경험에서 더욱 굳건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전기,상수도,가스요금 인상', '복지예산 축소' 등 사회적 안전망이 약화되더라도 참아야 하며, 철도노조 파업 같은 노동자의 요구행위는 사치인 것이다. 또한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를 통한 경기부양책' 등 경제회생을 위한 일련의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대통령의 심정엔 우스운 얘기다.

대통령의 '주가 발언'은 미네르바가 경고했던 '경제 살리기를 위한 국가주도의 애국주의 열풍'과 맞닿아 있다. 미네르바의 예고가 맞다면 앞으로 주류미디어는 경제위기를 다루면서 더욱 엄중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서민 희생을 통한 정부·여당의 '경제 회생 프로그램'의 나팔수가 될 것인지,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 정확한 경제위기의 원인과 진단 그리고 처방을 내놓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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