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종종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서는 비평이 필요하다. '정치 멀리보기'는 분명한 관점과 과감한 전망을 바탕으로 정치적 사건을 전체 맥락에서 재구성하고자 하는 심층 기사이다. 3류 정치평론처럼 소설의 영역으로 가보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허황된 망상이 아니라 근거 있는 정치평론의 도를 추구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가 다시 테이블에 오르는 분위기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5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빅딜’을 제안한 것에 대해 “원래 취지가 좋고 또 야당 대표의 제안인 만큼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여러 가지 방안을 놓고 우리 실정에 맞는 안으로 조정하는 논의를 하자”고 밝혔다.

김무성 대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현 선거제도의 정당지지율과 의석점유율 비례성 편차와 극심한 지역주의 구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권역분류 기준, 의석 배분을 위한 기준 득표율 문제에다 전문가 영입을 위한 기존 비례대표제 의미가 퇴색하고 특히 의석수가 많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제도라서 실제 적용에는 곤란한 측면이 한두가지가 아니다”라며 “의원 정수를 300명 이상으로 늘리는 것도 국민 대다수가 우리 정치권을 어떻게 볼지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말해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안에 대한 사실상의 반대 의견을 밝혔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권역별 비례대표제-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 동시 도입을 거절하며 정개특위에서의 조정을 제안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 문재인 대표가 ‘빅딜’을 제안한 것에 대해서도 “국민공천제(오픈프라이머리)처럼 국민과 당원들에게 공천권을 돌려주는 공천 혁명은 정치개혁의 결정판이자 정치개혁의 원칙으로, 다른 제도와 맞바꿀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면서 “이런 걸 논의하기 위해서 정개특위를 만들었기 때문에 거기서 논의하자는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부정적인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김무성 대표는 “‘받을 수 없다’가 아니라 좋은 취지를 살려서 논의해보자는 것”이라며 이후 어떤 형식으로든 여야간 협상이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발언에 대해 일각에서는 김무성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강하게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타협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다른 제도를 덧붙이거나 일부 수정하면 논의가 가능한 타협안이 도출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언론 보도를 보면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한 새누리당 내의 거부감은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과반의석을 잃는 등 실질적인 손해를 보게 된다는 데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12년 19대 총선 결과를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가정해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 2대 1, 총원 300석 기준으로 시뮬레이션 한 결과를 보면 새누리당은 152석에서 141석으로 의석이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도 127석에서 117석으로 10석이 줄어들지만 당시 통합진보당의 의석수는 13석으로 34석으로 21석이 증가한다. 결국 여당의 의석 수가 줄어든 만큼 야권 전체 의석 수가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새누리당으로서는 손해라는 것이다.

지역구도로 봐도 새누리당이 손해라는 점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영남지역 의석 수는 현재 3석에서 19석으로 늘어난다. 특히 이 중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늘어난 의석이 14석이라는 것은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반면 새누리당의 경우 호남권에서 4석을 새로 얻는 것에 그친다. 이 결과로 보면 ‘지역구도 완화’의 수혜자는 거의 전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일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과거 통일민주당 시절의 고토(古土)를 일정 부분 수복하는 정치적 효과를 얻는 추가 이익까지 예상할 수 있다.

이 얘기를 다시 뒤집어보면 형식상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모양새를 따르더라도 새누리당이 손해를 보지 않거나 손해의 폭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경우 여야간 협상이 가능하리라는 전망을 내볼 수 있다. 그러나 ‘협상’을 하려면 ‘안’이 있어야 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오픈프라이머리라는 현재의 두 가지 안만 갖고는 협상이 붙지 않는다. 특히 의원정수 확대 문제가 같이 제기된 상황에서 ‘국민정서’라는 추가적인 쟁점까지 형성돼있기 때문에 협상은 더더욱 어려운 판국이다.

▲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서울경제신문 창간 55주년 기념식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권에서 문재인 대표의 ‘빅딜’과 별개의 제안들이 회자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일보는 6일 정의화 국회의장 직속 선거제도개혁국민자문위(이하 자문위)가 석패율제 없는 일본식(병립형)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 적절하다고 결론내렸다고 보도했다. 자문위가 언급하고 있는 일본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을 독립적으로 선출한다는 점에서 현행과 유사하지만 비례대표를 전국단위가 아닌 권역별 득표율에 따라 선출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독일식의 경우 지역구 득표 상황에 따라 초과의석이 발생할 수 있고 제대로 시행하려면 비례의석을 확대해야 해 사실상 의원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데, 일본식은 현행 의석 수를 유지하면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문위는 지역구 대 비례의석의 비율을 240석 대 60석으로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식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경우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제1당에 유리한 결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런 요소들을 종합할 때 향후 여야의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한 논의에는 일본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식도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표의 ‘빅딜’ 제안에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 등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오픈프라이머리의 경우도 협상의 여지가 남아있는 상태다.새정치민주연합의 주요 인사들은 오픈프라이머리의 근본적인 취지를 부정한다기 보다는 ‘김무성식 오픈프라이머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주장하는 오픈프라이머리는 정당이 모든 지역에서 같은 날 일률적으로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뒤집어 말하면 어떤 방식이든 다소 축소된 방식의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기로 하는 경우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입장에서는 합의 가능하다는 것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6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인권개선 시민사회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물론 권역별 비례대표제 및 오픈프라이머리의 도입이 정치개혁의 올바른 방향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도 변수다.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은 4일 보도자료를 통해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 절대적 선이라 할 수는 없다”면서 “사표를 줄이고 지역편중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석패율 제도가 권역별 비례대표제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제도라 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반면, 석패율제나 오픈프라이머리 모두가 현역 의원 등 기득권에 유리한 제도라는 점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의 종착점이 ‘다당제’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 볼 필요도 있다. 일반적으로 정치개혁의제와 관련해서는 양당제적 경향이 강화되는 것보다는 다당제적 경향이 강화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흐름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다당제라 하더라도 어떤 다당제냐가 중요하다. 정책과 지향에 의해 정견을 달리하는 정당들의 다당제라면 한국 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역적 이해관계에 보다 치우친 형태의 다당제라면 오히려 한국정치를 퇴행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물론 지금 예로 든 두 가지 길은 다소 극단적인 것이며 현실은 지역적 이해관계와 정책적 지향이 뒤섞인 형태의 다당제가 유력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의 제도를 도입하는 것만을 ‘정답’으로 정해놓고 사고하면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의 문제는 중요하지만 여전히 실제 정치의 내용을 좌우하는 것은 그 제도를 운용하는 주체들의 의지라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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