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폐공장 안, 건장한 조폭들이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채 신음하고 있다. 그곳에 나타난 젊은 의사. 혹시 제도권 의술이 외면한 조폭들을 위해 용기 있게 나선 인권의사일까? 천만에 그는 용팔이로 불리는 야매 의사였다. 병원 응급실에 갔다가는 곧바로 경찰에 잡혀갈 수밖에 없는 조폭들을 상대로 많은 돈을 받고 치료를 하는 배드닥터인 것이다.

방송 전부터 잡음이 꽤나 컸던 SBS 새 수목드라마 용팔이. 주원과 김태희라는 어쨌든 강력한 캐스팅만으로도 세간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무엇보다 용팔이라는 캐릭터의 신선함이 충격적일 정도였다. 돈을 위해서 조폭들을 치료하는 야매 의사 용팔이지만 실제로 병원에서는 외과과장도 손을 든 환자마저 거뜬히 살려내는 신의 김태현.

그러나 김태현이 단지 그런 의사였다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을 리가 없다. 낮에는 레지던트 김태현으로, 밤에는 용한 돌팔이 용팔이로 살아가는 김태현에게는 오로지 돈만 밝혀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 투석을 해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하나뿐인 여동생이 바로 김태현의 이유다. 여동생 치료를 위해 이미 많은 사채를 써야 했던 김태현은 결국 조폭들을 치료하고, VIP 환자들에게 돈이나 뜯어내는 속물의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소 비현실적인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는 것은 우리 의료현실을 묘하게 비트는 설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 속에 용팔이는 없을지 몰라도 환자에게 손 내미는 김태현에 대한 풍자적 공감은 충분하다.

일단 다 떠나서 죽어가는 환자도 살리는 의료 히어로 용팔이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삶이 힘들어질수록 대중은 히어로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아픈 동생을 위해 범죄도 마다 않는 착하고 슬픈 오빠라면 매혹됨에 망설임이 있을 수 없다. 그렇게 매력이 터지는 캐릭터인데 심지어 멋진 배우 주원이라면 거의 반칙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용팔이와 착한 오빠 태현의 두 가지 얼굴을 주원은 어려움 전혀 없이 오가며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그것뿐이 아니다. 용팔이는 액션도 참 잘하는 의사다. 의사라는 캐릭터가 흔히 가질 수 없거나 혹은 차마 갖지 않는 무기까지 장착한 것이다. 좀 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욕심 많은 캐릭터이다.

그러나 어쩔 도리 없는 욕심이었다. 조폭들을 몰래 치료하는 야매의사는 그 밤직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낮의 정체를 숨겨야 하기에 어쩌면 조폭 이상의 위험부담을 가질 수밖에는 없다. 따라서 1회 엔딩에서 조폭두목과 함께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설정은 분명 과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용팔이가 얼마나 위험한 길 위에 서있는지를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새 드라마 용팔이 1회의 대부분은 주원이 끌어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주원의 상대역 한여진은 슬리핑 뷰티이기 때문이다. 결국 용팔이가 한여진을 깨우겠지만 이 드라마가 안정세에 들어설 때까지는 오롯이 주원이 모든 전개를 책임져야 한다. 제작진의 영리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배우 주원의 역량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용팔이 캐릭터, 주원의 매력이 크게 다가올수록 한여진 다시 말해서 김태희에 대한 우려는 크다고 할 수 있다. 김태희는 예쁘지만 연기는 그렇지 못했다.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지만 김태희라는 높은 프리미엄의 이름값을 해낼 정도의 개선은 아니었다. 그래서 첫 회 방송의 충격적인 재미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대해서 아주 낙관하기는 어렵다.

갑자기 김태희에게 소름 돋는 열연을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연기마다 따라붙었던 논란만 없게 해주더라도 용팔이는 요즘 대체적으로 저조한 드라마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쾌거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용팔이는 눈에 확 띄는 재미있는 드라마인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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