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 스포일러 포함

텍스트를 심오하게 다루고자 한다면 개봉 시기가 어느 정도 된 다음, 그러니까 일주일 혹은 열흘이 지난 다음에 영화를 분석하는 것이 리뷰 혹은 분석 글을 읽는 독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오늘 다루고자 하는 안옥윤과 미츠코에 대한 분석 역시 마찬가지이다. 개봉 전 혹은 개봉하자마자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전지현의 1인 2역에 대한 분석 글을 섣불리 다루었다가는 일반인보다 개봉예정작을 빨리 접했다는 ‘자랑질 코스프레’라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을 테니 말이다.

친일파 강인국(이경영 분)이 자신의 부인을 살해하는 가운데서 미츠코와 안옥윤 쌍둥이 자매의 운명은 정반대의 길로 갈라진다. 미츠코는 조선인으로 태어났음에도 조선식 이름이 없다. 황국신민의 길을 걷는 아버지의 밑에서 자란 미츠코는 조국을 지배한 일본에 대한 거부감은 일찌감치 거세당한 채 일본식 마인드와 정서, 교육을 주입당하고는 일제강점기 ‘신귀족’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예비 남편이 일본인이라는 점도 미츠코에게는 거리낄 것이 없다. 조선인 출신인 ‘진골’이 결혼할 2세에게는 ‘성골’로 둔갑될 신분 상승의 계단이 되기에 말이다.

하지만 언니 미츠코와 헤어진 안옥윤은 언니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독립투사의 길을 걸음으로 ‘친일’이라는 새로운 신분 상승의 트렌드를 걷어차는, 마치 물줄기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와 같은 행보를 걷는다. 미츠코가 친일파 아버지와 예비 남편이라는 그늘 아래에서 입신양명을 꿈꾼다면, 안옥윤은 미츠코와는 정반대로 언니에게 늘푸른나무가 되어줄 시스템인 대일본제국의 균열과 붕괴를 획책하는 길을 걷는다.

<암살>은 여성이 주체인 영화로 볼 수 있다.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이 안옥윤의 목숨을 노리다가 안옥윤의 편으로 편입되어 친일파를 응징하는 노선을 보더라도 <암살>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여성의 가치관에 편입이 되면 되었지, 기존 영화 서사처럼 여성이 남성의 가치관에 복속되지 않는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와 <차이나타운>처럼 <암살> 역시 남성의 시선에서 벗어나 여성 주인공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영화로 바라볼 수 있다.

다시 안옥윤과 미츠코의 길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다. 미츠코는 그녀가 평생 몸담고 있던 가부장의 굴레로부터 죽음이라는 ‘배신’을 당하고 만다. 즉, 미츠코 자신이 가장 안전하리라고 생각하던 혹은 복락된 가치관이라고 생각하던 대일본제국 혹은 가부장이라는 시스템이 미츠코를 배신한 셈이다. 일본 편에 빌붙는 것이 살아가는 데 있어 현명한 판단이라는 당대의 실용주의적 가치관이 미츠코의 아버지에 의해 철저히 무너지는 지점이 미츠코의 죽음이 담긴 시퀀스다.

안옥윤의 가치관은 연어와 같다고 비유한 바 있다. 일제라는 시스템을 붕괴시키고자 하는 이상주의자의 길을 걷는 안옥윤의 선택은 현실주의자 언니 미츠코가 걷는 길과는 반대로 험난한 현실의 벽, 독립 운동을 하는 길이다. 하지만 안옥윤의 선택은 미츠코보다 현명했다. 안정과 복락을 누리고자 하던 현실주의자 미츠코가 어이없이 목숨을 빼앗긴 반면에 이상주의자인 안옥윤은 목적하던 바를 이루고 마침내 일제로부터 해방되는 날을 맞게 된다. 이상주의자가 현실주의자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린 격이라고 볼 수 있다.

강인국이라는 가부장의 굴레로부터, 혹은 일제란 복낙의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던 안옥윤의 판단이 옳았던 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독재자 임모탄 조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파라다이스를 갈구하던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 분)의 궤적과 합일한다고도 볼 수 있다. <암살>과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속 두 히로인은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 혹은 가부장적 가치관이 21세기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남성 중심적인 시스템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여성의 가치관에 남성 주인공이 매력을 느끼게 만듦으로 남성을 여성의 가치관에 편입시킬 줄 아는 현명한 안옥윤과 퓨리오사에게 박수를 보낸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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