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범죄의 재구성> 이후 <전우치>, <타짜>, <도둑들>까지 최동훈 감독의 영화들은 모두 한국 영화의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새로이 개봉한 <암살>을 두고 평론가들을 비롯한 다수의 사람들이 <암살>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를 내렸다. 누군가는 그의 전작에 비해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진다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는 찬사를 늘어놓기도 하였다. 편향적으로 많은 영화관수를 점령한 가운데 이미 700만 고지를 넘어선 영화 <암살>.

영화 <암살>은 영화적 완성도나 재미면에서는 그의 이전 영화에 비해 압도적인 진전이 없거나 후퇴를 했을지 몰라도, 2015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세대로서 시대적 책임감을 복기함에 있어 그의 이전 작품들이 넘볼 수 없는 성취를 보였다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암살>은 최동훈의 또 다른 성취이자 발전이다.

아비를 죽여야만 하는 자식들

영화 <암살>의 두 주인공 안옥윤(전지현 분)과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은 아비가 존재하되 아비를 부정하는 존재들이다.

안옥윤은 상처입고 도망친 염석진을 도와 함께 상해로 피신하던 강인국의 아내가 강인국 수하의 피습을 받고 죽어가는 중, 도망친 유모의 품에서 자라 독립군이 되었다. 안옥윤이 어머니라 믿었던 유모는 간도사변 당시 일본군의 총에 맞아 숨졌다. 그리고 일본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저격수로 지목된 안옥윤은 조선주둔 사령관 가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의 저격에 나선다. 하지만 암살 준비 과정에서 마주친 자신과 얼굴이 같은 강인국의 딸 마츠코, 안옥윤이 죽이려고 했던 사람은 생부 강인국이었다.

쌍둥이 언니와 아버지를 조우하게 된 안옥윤은 당연히 갈등한다. 하지만 혈육의 정으로 인한 그녀의 고뇌를 종식시켜 준 것은 그녀의 아비였다. '친일'의 길에 자신의 아내가 거추장스러워지자 단 한번의 주저함도 없이 죽여버리라고 했던 그는, 안옥윤이 자신이 잃어버린 딸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그녀가 독립군의 저격수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처단에 나선다. 하지만 처단의 대상이 된 이는 우연히도 같은 시간 그곳을 찾은, 자신이 기른 딸 마츠코였다. 아버지에게 함께 찾아가면 아버지가 다 해결해줄 거라고 안옥윤을 설득하러 온 마츠코는 그렇게 믿고 있는 아비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그렇게 눈앞에서 자신의 쌍둥이 언니를 잃고, 어머니마저 아버지가 죽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안옥윤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아버지와 가와구치를 죽이기 위해 마츠코가 된다. 언니의 결혼식이었던 거사 당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아버지에게 총을 겨눈 안옥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녀는 주저한다. 아버지의 존재가 백발백중인 그녀의 총구를 막는다. 아버지는 가문과 국가를 들먹이며 목숨을 구걸하고 딸은 핏줄로 인해 고뇌한다.

딸에게 목숨을 구하면서 뒤로 숨긴 손으로 총을 찾던 아비의 얍삽한 행위와, 그 앞에서 혈육의 정으로 총구가 흔들리던 안옥윤의 주저를 끝장낸 것은 그녀를 사랑하게 된 하와이 피스톨이었다.

그런데 그는 누구인가. 지나가듯 그는 국가를 팔아먹고 남작 작위를 받은 조선의 일곱 대신들, 그리고 그 아비들을 서로 죽이겠다고 살부계를 조직한 아들들의 이야기를 안옥윤에게 들려준다. 그 살부계의 후일담은 그가 안옥윤의 아비를 대신 죽이고 이어진다. 서로의 아비를 죽이고자 했던 이들, 그들 중 누군가는 실패하고 미치고, 하와이 피스톨처럼 청부살해업자로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살부(殺父)'를 논해야 하는 대한민국

공교롭게도 <암살>의 남녀 주인공에게 '아비'는 그들을 죽여야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존재들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아비들, 그 아비들과 다른 입장에 놓인 아들과 딸. 그들은 아비를 부정하고 지우지 않고서는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을 만들 수 없다. 그리고 거기서 아비들은 강인국처럼, 사실은 일신상의 안위를 위하면서도 국가와 가문과 민족을 들먹이며 '나라'를 그리고 가족을 버리고 살(殺)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식에 의한 아비의 살(殺)은 아비의 원죄로 인한 종속 요인에 불과한 것이다.

또 다른 주인공 염석진. 독립 운동으로 시작하여 밀정으로 일본 경찰로, 그리고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의 경찰로 끊임없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그 인물은 영화가 그리고 있는 또 다른 아비상이다. 그는 안옥윤과 속사포(조진웅 분), 황덕삼(최덕문 분)을 독립군 암살 조직으로 불러낸, 그들이 믿고 따른 '아비'와 같은 존재였다. 결국 속사포는 마지막 순간, 그 아비의 목소리로 인해 그 아비와 같은 자의 총에 맞고 숨을 거둔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긍정적으로 그려졌지만, 이제 와 그 숨겨진 그림자가 드러나고 있는 백범 김구 선생과 같은 아버지도 우리 역사의 또 다른 비극적 부(父)의 존재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의 장준환, <해무>의 심성보, 그리고 최근 <차이나타운>의 한준희 감독 등은 비록 시대와 특성을 달리하지만, 기성세대로 상징되는 '아비' 혹은 '어미'의 살부 살모 스토리를 내세워 한국 현실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최동훈 감독의 <암살> 역시 그런 한국 근현대사에서 해결되지 못한 '살부'의 역사를 화두로 삼고 있다. 이렇게 감독들이 의도적 혹은 의식적으로 '살부' 코드를 내세운 것은, 2015년 한국 사회가 여전히 '아비'의 세상에 자유롭지 않다는 인식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아비를 죽일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 난 자식들, 살부 코드는 신화의 전형적인 성장 코드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아버지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상으로 떠나간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들은 영원히 아버지의 세계에 발목이 묶어 버리고 마니까. 그래서 신화 속 아들들은 우연을 가장하여 혹은 사고로 아비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아들들은 비로소 아비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상을 향해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이덕일을 비롯한 일부 사학자들은 대한민국을 '노론'의 나라로 정의 내린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노론'에 의해 정복당한 이후 '노론'으로 상징되는 지배계층의 변화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조선에서는 양반 지배 계층으로, 식민지 조선에서는 친일파로,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다시 염석진처럼 정부 관료와 그들이 뒤를 밀어주는 자본가로 끊임없이 자신을 변신시키며 여전한 '아비'의 세상을 득세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동훈 감독의 <암살> 속 살부는 그저 몇십 년 전 독립군들의 혈육상잔의 눈물겨운 투쟁이 아니다. 영화 마지막 실패하고만 반민특위 재판처럼, 청산되지 않은 일제 잔재의 복기이다. 중년의 감독이 여전히 '살부'를 논하는 대한민국, 청산되지 않은 일제 잔재가 잔존하다 못해 지배적인 대한민국, <암살>이 영화적 재미 이상의 유의미를 남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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