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종종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서는 비평이 필요하다. '정치 멀리보기'는 분명한 관점과 과감한 전망을 바탕으로 정치적 사건을 전체 맥락에서 재구성하고자 하는 심층 기사이다. 3류 정치평론처럼 소설의 영역으로 가보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허황된 망상이 아니라 근거 있는 정치평론의 도를 추구한다.

뜬금없는 임시공휴일 지정을 놓고 말들이 많다. 일부라도 이 날 쉴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데서 일종의 ‘선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이 선물의 의도를 도통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휴가 이후 첫 국무회의가 열린 4일 광복 70주년 기념 국민 사기 진작을 위해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임시공휴일 지정은 11일 국무회의에서 최종 의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14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 고궁, 미술관 등 공공시설이 무료 개방되고 고속도로 통행료도 면제된다. 연말에 실시하기로 예정돼있던 ‘코리아 그랜드 세일’ 행사도 14일에 앞당겨 시행된다. 한 마디로 ‘나가 놀으라’는 얘긴데, 일은 더 시키고 돈은 덜 주는 방법을 모색하시던 분들이 갑작스런 호의를 표시하니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단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특유의 말투로 “국민들의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소비심리가 회복할 수 있도록 광복 70주년을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사기진작의 전기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설명했다. ‘분위기 반전’, ‘소비심리 회복’, ‘사기진작’ 등의 키워드에 눈길이 간다.

▲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영상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장관 인사를 전격 단행해 정진영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를 신임 장관으로 내정했다. 아울러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에는 김현숙 새누리당 의원을 임명했다. 정진영 내정자의 정치적 의미는 ‘메르스 종식’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KDI 연구원 출신으로 연금 전문가였던 문형표 장관이 메르스 사태로 ‘무능’의 상징이 된 상황에서 이를 ‘유능한’ 의사 출신으로 교체함으로써 메르스 종식 선언과 사실상 유사한 효과를 누리겠다는 것이다.

장관이 ‘복지’(보수정부에서 복지는 곧 경제이다)에서 ‘보건’으로 이동했으니 그와 짝을 이루는 고용복지수석도 바뀌었다. 전임인 최원영 전 고용복지수석은 보건복지부 공무원 출신으로 사회복지분야 업무와 보건의료 및 연금정책 업무를 두루 거친 경력을 갖고 있었다. 새로 임명된 김현숙 의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으로 조세연구원과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쳤다. ‘보건’보다는 ‘복지’(다시 말하지만 보수정부에서 복지는 곧 경제이다)에 기울어진 인사로 볼 수 있는 셈이다. 보건-장관과 복지-수석의 등장인데, 바로 이러한 점에서 분위기를 일신해 메르스 종식 이후의 새로운 시작을 선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말하자면 ‘분위기 반전’이다.

한국은행 등 경제정책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기관들은 하반기 경제성장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3%에 못 미치는 2.8%로 하향 발표한 바 있다.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끼친 요소 중 하나가 메르스 여파이다. 메르스 여파는 내수시장에 악영향을 끼쳤고 특히 관광과 레저 분야에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아예 중국으로 건너가 메르스 사태로 더 이상 한국을 방문하지 않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걸그룹 멤버들과 함께 서울시 홍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고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등 여러 혜택을 주면 관광 및 레저 산업에는 나름의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나가 놀아도 괜찮다’는 심리적 효과가 각인되면 그간 소홀했던 중국인 관광객들도 다시 찾아오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내수경기가 진작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나름 정부의 계산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소비 심리 회복’이다.

그렇다면 ‘사기 진작’은 뭘까? 어찌됐건 나가 놀면 기분이 좋은 건 확실하지 않냐는 뜻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복잡한 맥락을 볼 필요도 있다. 재계에서 그간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은 8·15 광복 기념 특별사면대상에 어느 ‘회장님’이 간택되느냐의 문제였다. 재계는 그간 끈질기게 기업인에 대한 사면을 요구해왔지만 박근혜 정권은 이를 쉽게 용인하지 않아왔다. 하지만 올 하반기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적 화합을 위해 광복절 특사를 시행하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꼭 사면을 위해서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재계는 박근혜 정권에 그간 협조적인 태도를 고수해왔다. 창조경제혁신센터 건립이라는 정권의 숙원사업에 적극적으로 함께한 것에 더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라는 정부의 요구에도 최소한의 ‘성의 표시’를 했다. 이제 정권이 호의를 표시할 차례인데, 기업인에 대한 사면은 그 첫 단계다. 그런데 국민여론은 영 좋지 않다. 기업인들이 제 주머니를 불리기 위해 불법을 저지른 것을 뭐하러 사면해주냐는 것이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3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해 심각한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롯데그룹이 경영권을 둘러싸고 골육상쟁의 막장드라마를 찍으면서 기업인에 대한 여론은 더 좋지 않아졌다. ‘친박 좌장’이라 불리는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지난 3일 최고위원회에서 “경제 살리기에 앞장서야 할 재벌그룹이 이전투구하는 모습을 연일 지켜보는 국민들은 이에 참담함을 넘어서 분노하고 있다”면서 “볼썽사나운 롯데가의 돈 전쟁은 국민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됐다”고 강력 비판했다.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도 일이 될까 말까한 상황에 왜 초를 치느냐는 반응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입장에서는 앞서도 언급했지만 재계에 대한 어느 정도의 호의 표시를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어차피 사면을 해야 할 일이라면 여론의 관심이라도 돌려야 한다. 일단 국민들을 나가 놀게 만든 다음 정신이 없는 틈을 타서 특별사면을 처리하겠다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임시공휴일 지정에 언론인들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토요일과 월요일 신문 지면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 효과는 더욱 좋다.

‘사기 진작’은 외교적 문제에 있어서도 필요한 측면이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씨는 일본의 모 인터넷 포털사이트와의 특별대담에서 “신사참배 문제를 비판하는 건 내정간섭이다”, “나쁜 사람이라고 묘소에 찾아가지 않는 것은 패륜이다”, “위안부 문제 사과 요구는 부당하다. 천황이 네 차례나 사과했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이는 하나같이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는 전통적인 ‘반일정서’에 불을 붙이는 발언이며 대통령에게도 부담을 주는 행위이고, 외교 문제에 있어서도 하등 도움이 될 것이 없는 주장으로 볼 수 있다.

한일 간 외교의 중대 관심사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8월 15일 종전 70주년 기념사를 통해 얼마나 전향적인 역사 인식을 내놓느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일 방한한 오카다 하츠야 일본 민주당 대표와 접견한 자리에서 특유의 어법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담화에는 역대 담화에 있었던 역사인식을 확실히 재확인함으로써 양국 관계가 미래로 향하는데 큰 기반이 되기를 기대한다”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근령씨의 발언으로 한국의 입장에 얼마나 무게가 실릴 지는 미지수다.

아베 신조 총리가 여전히 강한 신념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종전 70주년 기념사에 ‘전향적 입장’이 실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전향적 입장이 없으면 ‘반성없는 아베’라며 모든 언론이 비판에 가세할 것이다. 비판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을 모색하면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부담만 쌓인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 등을 두고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손을 잡은 일본을 향해 무슨 ‘액션’을 할 수도 없다. 오히려 억지로라도 한일관계 개선을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다.

이러니 그냥 웃고 넘어가자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14, 15, 16 3일 간 즐겁게 쉬는 동안에 화가 난 우리 국민들의 마음도 다소 누그러질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한탄과 후회와 절망과 복수심으로 보내기 보다는 기쁨과 행복과 흥이 어우러지는 축제와 같은 분위기로 보내는 게 여러모로 훨씬 나을 것이다.

임시공휴일 지정이 공무원들에게만 적용되고 노조조차 없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장삼이사들에게는 큰 효력이 없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서도 나름대로는 준비가 돼있다. 4일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계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침체된 내수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고, 메르스 여파로 움츠려든 우리 사회가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가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것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그간 중소기업계는 대기업에 비해 열악한 경영사정으로 인해 공휴일 증가에 따른 인건비 부담 가중과 공장가동 차질 등을 우려한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최근 우리 경제가 직면한 내수부진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비를 촉진할 수 있는 정부의 실효성 있는 정책 추진과 함께 경제주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했다”고도 밝혔다. 정부 시책에 적극 따르겠다는 얘기다. 다수 기업들이 사규와 근로계약에 법정공휴일에 대한 규정을 삽입하고 있기 때문에 쉬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설명도 나온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임시공휴일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비정규직 등 불안정노동자에 대해서는 정부 관계자도 “안타깝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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